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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fore the Rain 작품론 - 한국시문화회관 - 문예도서관 - 문예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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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예술에 대한 지식, 정보, 중요한 자료들을 편집자들이 집필해 놓은 공간입니다.

  Before the Rain 작품론 
  김민구 

  <Before the Rain>은 마케도니아 출신의 밀코 만체브스키 감독이 1994년도에 만든 영화로써 유고슬라비아의 분열 이후 종교와 문화의 극렬한 대립 속에서 겪게 되는 폭력과 비극의 이야기를 세 개의 소규모 파트로 나뉘어 서로 약간의 공통성만 가진 채 별개의 플롯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구조로 발표되었다. 단어, 얼굴, 사진이라는 3개 파트의 제목을 보면 이것이 추상영화가 아닌가 의문이 드는데, 그보다는 세르비아와 이슬람의 사상으로 분열된 유고연방에서 상실되어가는 사랑의 순수성을 담아내었다는 것에 더 가깝다.
  첫 번째 장이라고 할 수 있는 ‘단어(words)’는 어느 아이들이 나뭇가지를 엮어 원의 형태를 만드는 것으로 시작된다. 마치 그리스도의 면류관처럼 둥글고 날카롭게 나뭇가지로 엮인 그것은 곧 원형으로 불타오르고,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총알(실탄)을 던져 넣어 터뜨림으로써 총성이 울리게 만든다. 탄환에 들어있던 화약의 폭발로 인해 원이었던 나뭇가지는 마구 부서져 파편으로 주변에 널브러진다. 탄환보다 희생자의 귓가에 더 먼저 와닿는 총성이란 그저 아이들에겐 신나는 유희로 비쳐질 정도로 영화 속 배경은 아이들의 순수성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원은 둥근 곡선 하나로 이루어져 있다. 반복이며 순환의 형상이고 끝나지 않거나 풀리지 않는 결속을 의미한다. 한때 하나였던 나라의 사람들은 종교분쟁과 여러 내전의 상황이 불러온 총성에 의해 손쉽게 결속을 끊고 서로를 적으로 돌리게 되는 것이다. 기도하던 사람들은 갑작스런 총성에 잠시 놀라다가 다시 예배를 진행한다. 그날 밤, 묵언서약을 시작한 정교회의 사제 키릴 신부는 알바니아 출신의 소녀인 자미라를 수도원의 자기 방에 숨겨주다가 연정을 느낀다. 자미라를 찾는 이들이 수도원으로 찾아오자 키릴 신부는 무장한 세르비아계 사람들을 피해 달아나다 붙잡히고, 추격해 온 자미라의 가족들은 이교도와 같이 있는 그녀를 맹렬히 비난한다. 철저한 배타심 속에서 자미라는 자기 변호의 기회마저 박탈당한 채 남동생이 쏜 총탄에 쓰러지고, 키릴 신부의 슬픈 시선을 받으며 숨을 거두는 것으로 끝난다. 이성과 사리가 철저하게 배제된 채 사람들은 맹목적으로 자신들의 위치를 고수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세르비아계 안에서 자미라는 무리를 떠난 배신자이면서 이교도와 사랑을 나누었으므로 누군가의 손녀이고 동생이 아닌 그저 ‘창녀’로써 바라보아진다. 땅에 쓰러진 그녀가 숨을 거두고 키릴 신부가 머리를 쓰다듬는 장면은 비참한 현실 속에서 화합과 순수를 증명할 수 있는 미약한 기회임에 다름 아니다. 
  두 번째 장인 ‘얼굴(faces)'은 키릴 신부의 삼촌이자 마케도니아 출신의 사진작가 알렉산더 커코프가 등장한다. 그는 전쟁터의 참상을 고발하는 영국의 종군사진작가로서 내전 아래에서의 삭막한 인간의 모습들을 생생하게 촬영하여 퓰리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알렉스의 사진들을 현상하여 관리하는 여자 앤은 알렉산더에게 호감을 갖고 그를 지지하는데, 그러면서 자신의 남편인 닉과는 점점 거리가 소원해져 결국 식당에서 이혼을 요구한다. 전쟁의 참상을 경험한 탓에 정신적 요양을 할 목적으로 알렉산더는 자신의 고향 마케도니아로 떠나고 앤은 남편 닉과의 관계를 청산하기 위해 마지막 식사를 갖는데,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웬 남자가 권총을 난사하고 사람들은 모두 아래로 엎드린다. 총성이 멎은 후 총을 쏜 사람은 그대로 식당 밖으로 나가고 앤은 총탄을 얼굴에 맞아 숨진 닉을 발견하고 울음을 참으려 하지만 고통스러운 신음만 나올 뿐이다. 
  세 번째 장인 ‘사진(pictures)'은 마케도니아로 떠난 알렉산더의 이야기이다. 마케도니아의 친지들은 그를 환대하며 같이 식사도 하고 사진도 찍지만, 내전의 어두운 그림자는 이곳까지 닿아 있어, 동네 사람들은 다들 소총으로 무장한 채 대립하고 있다. 알렉산더는 한때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인 한나를 만나려 하는데, 그의 친지들은 그녀가 알바니아인이라는 걸 이유로 아예 잊어버릴 것을 종용한다. 그러나 알렉산더는 한나가 사는 곳으로 가 그녀의 아버지와 그녀를 대면한다. 한나의 아버지는 자신의 손자라며 알리라는 남자를 부르는데, 그는 아까 첫 번째 장 ’얼굴‘ 후반부에서 자미라를 사살한, 자미라의 남동생이다. 여기에서 알렉산더의 옛 애인 한나의 딸이 자미라라는 것이 밝혀진다. 알리는 알렉산더의 손에 입을 맞춰 인사하라는 조부의 말에 직접 그의 목을 베겠다고 대답한다. 알렉산더는 머물고 있는 사촌의 집으로 돌아와 앤에게 자신이 찍은 사진과 함께 편지를 쓴다. 전장에서 친하게 지내던 군인에게 요즘 재미가 없다고 말했더니, 그 친구가 죄수 하나를 끌어내어 즉결 총살에 처했으며, 자신은 그 모습을 촬영했으니 카메라가 사람을 죽인 것이라는 말을 적는다. 다음날 깨어나 보니 사촌은 총상으로 사망했고, 사람들은 보복으로 알바니아 사람들을 소탕할 것이라 다짐한다. 돌아와 잠든 알렉산더는 문득 앞에 앤이 와 있는 것을 발견하는데, 앤은 그에게 자신의 딸을 구해줄 것을 부탁한다. 알렉산더는 죽은 사촌 친구의 천막에서 딸 자미라를 발견하고 같이 문을 나서지만 결국 총에 맞아 숨을 거두고 자미라는 도망치는 것으로 영화가 끝난다. 
  유고슬라비아가 해체된 이후, 타문화·타종교와의 접촉이나 화해는 전쟁과 같은 유혈충돌도 불사할 만큼 중대한 죄악으로 서로에게 비쳐진다. 세르비아와 알바니아 간에 견고하게 세워진 맹목적 민족주의의 아성 앞에서는 친지간의 우정마저도 연발하는 총성에 말살되는 것이다. 전쟁의 참상과 미처 예기치 못한 자신의 불찰로 인해 한 사람의 죽음을 바로 앞에서 목격하고 그것을 이용해 극적인 사진 촬영에 성공하여 전후 트라우마와 같은 환멸을 갖게 된 알렉산더는 자신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고향 마케도니아로 향한다. 정신적인 안식을 위해 찾아간 고향에서 옛 연인의 딸을 지키려다 결국 고향 땅에서 죽게 되는 운명, 두 민족 사이에 선 한 명의 순수한 生으로서의 마감은 무척 아이러니하다 하겠지마는, 모든 요소들로부터 방해받지 않는 안식이란 무리로부터 도망쳐 완전히 혼자이거나 혹은 삶에 더 이상 머무르지 않을 때라야만 얻게 된다는 것은 자신들의 사상이 옳음을 맹신하는 이데올로기 앞에서 순식간에 돌변하거나 적대화될 수 있는 내전민들의 초상이라 할 수 있겠다. 무리에서 떨어져 나간 배신자는 혈육의 손에 의해서도 손쉽게 살해당한다. 폭력으로 이룩된 법도 앞에선 화합과 용서란 영원히 거명되지 못할 이상향에 불과한 것이다. 
  <Before the Rain>은 일반적인 영화의 기-승-전-결 구조가 아닌, 따로따로 분리되어 이해할 수 있는 옴니버스 형식을 띠고 있다. 1-2-3이 아니라 2-1-3일수도, 3-2-1일수도 있는 것이다. 잘 만들어진 영화에서 순서를 무시한 옴니버스의 플롯은 영화 자체를 통찰하는 하나의 테마와 주제를 더욱 심도 깊게 관객에게 전달해주는 역할로 작용한다. 이러한 플롯은 미약하나마 첫 번째 장이었던 ‘얼굴’에서 아이들이 만들고서 스스로 끊어버린 원의 결속과도 연결된다. 과거가 시간이 지나면 현재가 되고, 현재가 시간이 지나면 미래가 된다는 일반적인 시간론이 아니라 현재의 일이 이루어진 계기는 과거와 미래 모두를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감독의 전언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이청준 선생의 <時間의 門>이 문득 떠오른다. <時間의 門>에서 주인공은 고등학교 선배였던 사진작가의 유고전시회에 참석하면서 그 작가의 생각을 무척 철학적으로 회상한다. 그 사진작가는 촬영 후 바로 현상하지 않고 묵혀두었다가 생각이 날 때 작업을 했기 때문에 시간상으로는 맞지 않았다. 이유를 물으니 그는 사진 속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을 대비하며 자신을 ‘미래를 찍는 사진사’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다. 일반적인 시간의 경계를 허물 때 우리는 역사를 통찰할 수 있다. 시제(時祭)의 벽을 넘어 내전과 비극, 그에 맞서는 미약한 사랑의 이야기를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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