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줄거리 - 김민구
1. 코리언 쏠져 / 전성태
한국에서 대학 교수를 하던 ‘그(창대)’는 글을 쓰기 위해 몽골로 가 아파트를 임대한다. 집주인인 바트 씨 부부는 빌려줄 방을 가리키며 전형적인 러시아 아파트라고 소개한다. 가장 북쪽에 와 있다는 생각을 한 ‘그’는 시원(始原)이라는 어감과 비슷하게 이곳을 시베리아의 방이라고 불러야겠다고 다짐한다. 아파트 바로 앞엔 화력발전소가 세워져 있어 그곳에서 연료로 때는 유연탄 연기가 자욱하다. ‘그’는 바트 씨 부부에게 계약을 하겠다고 말하자 바트는 월 백오십을 부르지만 그의 아내 돌마가 백팔십을 자르듯이 말한다. 부부는 아파트에서 지켜야 할 사항을 말하고 돌아서는데, 특히 낯선 사람의 방문 시에 절대 문을 열어주지 말 것을 강조한다. 그들이 돌아가고 창대는 필요한 물건의 목록을 정리하고 식사를 끝낸 후 바쁜 시간을 핑계 대며 정작 시쓰기에 게을리했던 자기 자신을 돌아본다. 창대는 창밖을 내다보며 발전소 앞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관찰한다. 인부들과 몽골의 군인들이 같이 일하고 있었다. 1970년대의 한국과 같은 풍경 속을 걸으며 그는 아파트 주변을 돌아다닌다. 그러면서 늘 수중에 열쇠가 있는지를 확인한다. 디지털 도어록을 한국의 집에 설치하기 전에 열쇠를 잃어버려 기술자를 부르곤 했던 과거를 떠올리면서 그는 재래시장으로 들어선다. 그가 시장에서 망원경을 하나 구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알아채지도 못할 만큼 빠르게 소매치기를 당해 열쇠와 달러 몇 장을 제외한 모든 물건을 털리고 만다. 주머니 재봉선 아래에 난 기다란 칼자국을 보고 절망하던 창대는 법이 소용 없는 이곳을 한탄하며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눕는다. 지금쯤 한국에 두고 온 아이는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 다시 일어나 인터넷 카페로 들어간다. 딸아이의 블로그에 접속해서 안부글을 남기던 그는 카페 문 앞에서 자신을 노골적으로 쳐다보고 있는 청년들을 의식한다. 자신이 마치 사냥감이라도 된 것처럼 잔뜩 주눅이 든 창대는 옆에 있던 아가씨에게 바트 씨 부부에게 전화를 걸어달라고 부탁한다. 조금 후 문밖이 소란스러워지자 한없이 무력감을 느끼던 창대는 자신에게 저들보다 강한 점이 무엇인지를 생각한다. 군대에서 딴 태권도 자격증은 아무 소용없다. 저들의 군대보다 한국의 군대가 더 강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그는 저들에게 “나는 한국의 군인이었다!”라고 소리치고 싶었으나 금세 힘이 빠지고 만다. 그러다 바트 씨가 도착해서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다. 바트 씨 부부는 내일 러시아로 떠난다고 말하고, 창대는 계속 집에 있을 것을 다짐한다. 열흘이 지나도 바트 씨 부부는 돌아오지 않는데, 어느 날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검침원에게 문 밖으로 나가 설명해주려다 그만 열쇠를 갖고 오지 않은 채로 문이 잠기고 만다. 열쇠기술자는 이 동네에 없으며, 문을 열기 위한 어떠한 상식적인 방법도 없는 상태에서 검침원은 마치 비웃기라도 하듯 무관심하다. 창대는 윗층에 산다던 돌마의 오빠를 생각해내고 그를 찾아가지만 그들에게도 열쇠가 없다는 사실에 무력감을 느낀다. 그러다 창대는 창문을 통해 집으로 들어가겠다고 외치고, 비장한 각오를 하듯이 자랑스럽게 ‘나는 한국의 군인이었소!’라고 말한다. ‘코리언 쏠져?’라고 되묻던 검침원은 그에게 ‘렛츠 고!’라며 고개를 끄덕이고, 몽골 군인들에게 가 밧줄을 빌린다. 이 일의 무모함을 망각한 창대는 자신감을 내보인다. 몽골 군인들은 코리언 쏠져와 자신들이 친구라며 그를 응원한다. 전역한 지 20년이 넘은 창대는 자신이 무척 초라해보인다. 하지만 한국에서 군인이 시인보다 생명력이 더 강하다고 생각하며 집으로 무사히 들어가 환호성을 받는다. ‘코리언 쏠져 파이팅!’이라는 우렁찬 소리를 들으며 그는 허공으로 남은 밧줄을 내던진다.
2. 황진이 / 최인호
<황진이>는 작가가 직접 황진이에게 독백을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대의 목에는 뱀이 있으며, 이웃집 머슴녀석이 그대를 연모하다 죽어 뱀이 되어 목을 감으며 그대의 잠자리로 가 뜨거운 욕정을 나누었다는 아름다운 문장이다. 그 뱀은 벌거벗은 황진이의 몸을 타고 흘러가고 있는데, 어찌하여 그토록 익숙하게 몸을 내주었느냐며 작가가 독백한다. 그리고 황진이가 산다는 송도로 한 나그네가 찾아든다. 송도는 지나는 골목마다 주막이 그득하고, 객들은 대부분 이곳에서 노잣돈 다 털리고서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소문으로 유명했다. 나그네는 한 주막에 들러 진달래술을 얻어먹으며 황진이의 거처를 묻는데, 한양에서 왔다는 말에 주모는 술상을 차려와 나그네를 대접한다. 황진이의 집을 알게 된 나그네는 떠나려 하자, 술값을 내야 한다는 주모의 말에 껄껄 웃으며 엽전을 건네고 주모가 알려준 집 대문 앞에 서서 호기 있게 “이리 오너라!”를 외친다. 얼마 후 집 안의 여종이 나와 문을 열어주며 주인이 안 계시고 주인마님은 잠에 드셨다고 알리는데, 나그네는 하룻밤을 묵어가겠으니 뜻을 대신 주인마님께 전해달라고 한다. 여종이 사라지자 나그네는 담배를 피우며 기다린다. 매화나무 위에 걸린 흰 달과, 월광에 그득히 젖은 매화꽃이 흩날리는 것을 바라본다. 눈부신 달빛 번지는 하늘에 새 한 마리가 비늘처럼 솟구치듯 흘러가고, 날아간 궤적을 좇기도 전에 먼 산으로 새는 사라진다. 종이 다시 나와 하룻밤 묵어가는 것을 허락하자, 나그네는 행랑채로 들어가 방 안을 살핀다. 종에게 불을 지펴달라 부탁하지만 종은 주인마님 시중들러 가야 한다고 거절하고, 나그네가 직접 아궁이에 솔가지를 지펴 불을 일군다. 연기가 달빛을 가리고 달빛과 연기가 해감처럼 서로 몸을 휘감을 때 사내는 방으로 들어가 지나온 길을 돌아본다. 사실 나그네는 황 진사의 서녀인 황진이가 인격과 서예가 특출할뿐더러 눈이 높다는 소문을 듣고 시험하러 찾아온 터였던 것이다. 외국의 사신이 여국유천하절색이라 감탄하였다는 풍문도 들려왔다. 황진이의 시를 읊조리던 나그네는 칼을 뽑듯 피리를 들어 불기 시작한다. 피리의 가느다란 음계는 서서히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몸에서 잡념이 빠져나가는 걸 느끼자 나그네의 몸은 한없이 가벼워진다. 시간이 정지한 듯 피리를 불자 달빛도 서서히 흘러내린다. 피리소리가 흘러흘러 황진이의 처소까지 번져가자, 황진이는 자신이 벌거벗겨지는 환상을 겪는다. 나신을 가리려 두 손을 모으지만 피리 소리 같은 바람은 사이로 파고들고, 체념한 황진이는 팔을 늘어뜨리고 모든 것을 허락한다. 나신 위로 비늘이 돋아나며 꽃이 피듯 자신의 몸이 변화하는 것을 느끼다가 순간 꿈을 깬다. 창밖은 고요한 밤으로 뒤덮여 깊은 적막만이 느껴질 뿐이다. 황진이는 달빛 사이로 삿갓집 정자에 앉아 피리를 부는 사내를 발견하고 금세 누구인지를 알아낸다. 언제부터인가 들려온 피리의 음률 하나하나가 비늘이 되어 자신에게 다가왔다는 생각을 하며 그녀는 종 애월이를 불러 피리를 부는 나그네가 누구인지를 묻고, 그의 행색이 남루하였다는 대답을 듣자 빙긋 웃으며 조용히 술상을 봐 올리라고 말한다. 저런 피리를 불 줄 아는 사람은 조선에서 오직 한 사람이며, 피리 그치기를 기다려 찾아뵈어 자신이 술을 권하겠다고 말하라 이른다. 계집종은 물러가다 문득 생각난 듯이, 밤이 샐 때까지 피리소리가 이어지면 어찌 하느냐고 묻자, 황진이는 매화꽃 한 송이를 뜯어 꿈속에서 비늘 날리듯 입김으로 불어 날린다. 계집종을 쳐다보다가 문득 한숨처럼 대답한다. “내가 가야금을 뜯기 시작하면 필히 저 피리 소리는 그칠 것이니, 그때를 봐서 내 뜻을 이르도록 해라”라며 나직이 말한다.
3. 황진이 2 / 최인호
성 안에 들어간 황진이는 천마산에서 득도한 지족선사라는 고승이 곧 살아있는 부처가 되어 중생을 구도할 것이라는 소문을 듣는다. 그날 황진이는 몸이 아파 계집종을 앞세우고 길을 나선 참이다. 명치끝이 아파오던 그녀는 행장을 차리고 성으로 들어선다. 그때 성의 누각 아래 거렁뱅이 무리가 앉거나 누워 동냥을 청하는 광경을 목격한다. 봉사임에 분명한 거지 하나가 황진이의 손을 잡으며 한 푼을 청하자 황진이는 왜 이런 곳에 있느냐며 묻는다. 거지는 부처님 오시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대답한다. 천마산의 지족선사 이야기인데, 그러자 모여있던 거지 무리들이 모두들 천마산 쪽을 향해 절을 드린다. 황진이가 이럴 게 아니라 직접 찾아뵙는 것이 어떻느냐 말하자 장님은 부처에 이르는 길이 어디 가깝다고 가까운 길이겠냐며 그저 기다릴 뿐이라고 말한다. 황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도 그 지족선사가 삼십여 년을 수도하며 어찌 끝없는 인간의 욕망으로부터 완전히 해탈할 수 있었는지를 궁금히 여긴다. 죽음의 순간처럼 절박하되 아름다운 그 절정의 느낌에서 뜨거워지는 몸을 생각하며 황진이는 하룻밤을 보내도 다시 찾아오는 뜨거운 성욕에 대해 사유한다. 대체 무엇으로 그 성욕을 해결했다는 것인지 되뇌며 뜨거운 정욕이 몸 안에서 일어나는 걸 느낀다. 그러던 황진이는 새벽에 천마산으로 길을 나선다. 지족선사를 시험해보려는 것이다. 황진이는 천마산의 비탈길을 오르며 지족선사를 만나리라는 기대와 이유 없이 타오르는 정념을 동시에 품으며 산중턱에 이르렀다가 갑작스런 소나기를 만난다. 돌아갈 수 없는 황진이는 계속 비를 맞으며 한 폭의 묵화를 그리는 산풍경을 지난다. 산정에 도달하자 거짓말처럼 하늘이 개며 뜨거운 햇살이 산을 비춘다. 그때 암자 몇 채가 있는 절에 도착한 황진이는 한 젊은 스님에게 죽은 남편의 명복을 빌러 왔다며 하룻밤을 청하지만 지족선사의 수행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거절당한다. 황진이는 부처님도 세 번 찾아온 여인이 비구니가 되어 다시 오자 받아들였던 고사를 내세우며 하룻밤을 약속받는다. 황진이에게 방을 허락한 스님은 지족선사에게 바리때를 들고 가는데, 지족선사는 그에게 비를 맞고 찾아오는 여인을 보았다며 어찌 했느냐 묻고, 스님은 외딴 암자를 주었다고 대답하자 지족은 잘했다며 웃는다. 밤이 깊자 황진이는 암자에서 나와 천천히 골짜기로 내려가 옷을 벗는다. 마치 꽃이 잎을 하나씩 내리듯 아름다운 나신이 펼쳐진다. 고인 물은 그녀의 몸을 받아들이며 서늘하게 그녀를 휘감는다. 그 무렵 지족은 뜨거운 성욕이 자신의 맥박을 방해하는 걸 느끼며 참으려 애를 쓴다. 밖으로 퍼져나가지 못한 느낌이 비수와 같은 번뇌가 되어 몸속에서 발버둥친다. 그는 호흡을 끊으며 무위의 경지로 들어선다. 그때 절제하지 못한 욕망이 그를 무위에서 건져올려 가슴에 불을 지핀다. 놀라 진정되지 않는 자신을 생각하며 그는 욕망의 왕 마라와 싸웠던 석가모니를 떠올린다. 석가모니는 자신을 유혹하던 아름다운 마라의 딸들에게 이미 자신은 정욕을 끊었으며 바람처럼 자유로운 나를 어찌 잡아두겠느냐고 대답하여 그들을 물리쳤던 것이다. 황진이의 방문을 지족선사는 마라가 부처에게 그랬듯 최후의 심판이라고 생각하고, 암자를 벗어나 달빛을 건너 황진이가 있는 곳으로 다가간다. 황진이는 목욕을 하면서 귀를 기울여 온 산과 냇물과 바람과 짐승들의 흔적들과 함께 환상의 정사를 벌인다. 그때 그녀는 웬 사내가 달빛 아래 서 있음을 발견한다. 지족이라는 걸 알아챈 그녀는 시험해보겠다는 의지를 더욱 세우며 일부러 자신의 몸을 노출한다. 지족은 욕망을 잠재우고 중도를 기원하는데, 그는 자신의 양물을 잘라내야만 비로소 탈출할 수 있다고 여긴다. 돌을 움켜쥐고 자르려는 순간, 그는 부처의 목소리를 듣는다. 잘라야 할 것은 마음에 있지 육체의 일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투명한 물속에 자신을 투영시켜 자신을 한 방울의 물로, 하나의 일념으로 변화시킨다. 그리고 물방울은 황진이를 담고 있던 물과 합쳐져 여인의 육체를 핥기 시작한다. 한없이 성욕을 받아들이며 절정의 순간에 오른 그 때, 황진이와 지족의 환상이 깨지며 황진이는 거기 서 있는 사람이 누구냐며 소리친다. 그러나 이미 그녀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때 황진이는 자신 곁을 날아다니던 반딧불이를 낚아채고, 반딧불이의 욕망처럼 지족도 자신의 손아귀에 잡혀 뛰쳐나갈 수 없을거라고 생각한다. 돌아온 황진이는 다시 기생일을 하는데, 그러던 중 그만 몸에 힘이 빠져나가 기절하여 결국 다시 의원을 찾으러 성으로 들어선다. 아직도 성에는 거지 무리들이 구걸하고 있다. 황진이가 바라보자 옛날 그 거지인지라 부처님이 아직 안 오셨냐고 묻자 아직 안 왔다는 대답을 듣고 한 닢을 주며 복 많이 받으라는 말을 남긴다. 그때 계집종이 황진이에게 저길 보라고 손가락을 가리킨다. 웬 봉두난발의 미친 사람이 지팡이를 짚고 서 있고 그 주위에 아이들이 몰려들어 돌을 던지고 있는 광경이다. 황진이는 그곳으로 다가가 아이에게 두레박을 빼앗아 든다. 깊은 우물 속에 두레박을 던져 찬 물을 길어올려 사내에게 주자, 둘은 눈을 마주치고 미친 사람(아마도 지족)은 물을 받아든다. 그리고 황진이는 계집종에게 계속 떠날 것을 한숨처럼 내뱉는다.
4. 배웅 / 김훈
저녁반 택시 운전사인 김장수는 오후 4시에 영업을 시작한다. 차내 라디오에선 계속 농민단체의 시위 때문에 도심 교통이 마비되어 있다는 소식을 내보낸다. 기름을 보충하고 김장수는 한 여성과 그녀의 아들을 태우는데, 꽉 막힌 거리에서 아들을 데리고 탄 여자는 애 아빠가 위독하다며 옆길로 가줄 수 없느냐고 부탁하지만 이미 길이 다 막혀있어 어쩔 수 없는 상태다. 김장수는 승객에게 지하철을 권하는데, 그때 여자는 남편이 사망했다는 전화를 받고 값을 치른 후 내린다. 김장수는 저녁 8시까지 옥인동에서 택시를 운전한다. 그는 저녁으로 삼각김밥을 먹으며 식사를 해결하고 있는 전경들을 바라본다. 저녁밥을 먹은 전경들이 다시 대오를 갖추어 거리로 나갔고 김장수는 깜박 잠이 들었다가 깨어난다. 결국 그는 영업매출이 사납금에 미달하여 모자란 금액을 월급에서 차등하도록 서명한다. 일산까지 손님을 태우고 갔을 때 그는 오년 전 자신의 회사에서 근무하던 윤애의 전화를 받는다. 김장수는 오 년 전까지 바다식품회사의 하청업체 사장이었다. 회사의 직원은 총 7명이었고 특히 윤애는 김장수와 같이 차를 운전하며 재료를 구매하고 대금과 계약서를 책임지는 비서 일을 했었다. 오지의 여인숙에서 같이 몸을 섞기도 했다. 사랑이나 불륜, 치정, 욕망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당연한 일이라고 서로 생각했다. 그가 경영하던 하청업체는 외환위기 이후 하락세를 걷다 결국 문을 닫았고 직원들은 모두 흩어져 새 직종에 종사하고 있었다. 저녁반의 택시는 오후 네시부터 새벽 네시까지 운행인데, 택시의 종착점은 장소가 아니라 시간이었다. 퇴근시간대에 최대한 손님들을 많이 확보해서 사납금을 돌파해야만 했다. 밤 11시가 지나면 술에 취한 승객들이 횡설수설하며 거리로 나와 택시를 불렀다. 전화를 걸어온 윤애는 김장수의 안부를 물으며 라오스에서 딸을 낳아 남희라는 이름을 지어줬다고 말한다. 서로 만나 호텔 이층 커피숍에서 근황을 주고받는데, 윤애는 장수가 그냥 있기만 해도 좋다고 말한다. 그들은 점심을 먹으러 일식집에 가서 식사를 하고, 귀국해야 하는 윤애를 공항까지 데려다주겠다고 약속한다. 붉은 석양이 썰물처럼 빠지고 아득하게 드러난 갯벌을 지나며 윤애는 말이 없었다. 김장수는 택시 기사 정복을 입고 운전을 계속했다. 마치 죽은 자를 상여에 실어 저세상으로 데려다주는 느낌이었다. 공항에 다 와서 김장수는 윤애에게 안경을 좀 벗으라고 말하고, 눈이 좀 상했다며 맨얼굴로 윤애는 웃는다. 경북산간오지를 함께 돌아다니던 얼굴이다. 그녀와 헤어지고 저녁 일곱시가 되어 인천공항엔 비행기들이 서서히 착륙했다. 김장수는 당산동으로 가는 승객을 태우고 영종대교를 건넜다. 피서객들이 서울로 올라오고 을지로에서 수도관 사고가 났다고 라디오 앵커가 말했다. 새벽 네시까지 아득한 시간이 남아있다는 것을 김장수는 생각하며 이야기가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