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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과 의 공통점 및 차이점 분석 - 한국시문화회관 - 문예도서관 - 문예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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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숏컷>과 <매그놀리아>의 공통점 및 차이점을 분석하기 (2000자)
김민구 

  <숏컷(1993)>과 <매그놀리아(1999)>의 공통점 

  일반적으로 우리가 보아온 영화들은 소수의 주동인물과 그 외의 주변 사람들이 서로 얽히는 상황을 극적으로 담아내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하지만 <숏컷>과 <매그놀리아>는 이러한 일반적인 장면배치의 전형을 뛰어넘어 다수의 인물들을 모두 고르게 등장시킴으로써 관객이 각자 다른 이야기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게끔 만든다. 등장하는 사람들은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각자 다른 상황 속에 놓여 있지만, 그들은 대부분 ‘불륜’이나 ‘비윤리적’인 행위들을 서슴지 않는다. 가령 수영장 청소부의 아내이자 여러 아이들을 두고 있는 루이스는 남편과 아이들 앞에서 자신의 직업인 폰섹스 상담을 버젓이 진행한다. 또 몇 사람들과 낚시를 간 스튜어트 케인은 도착한 계곡에서 벌거벗겨진 채 죽어 있는 여자를 발견하고도 신고가 아닌 낚시를 시작할 것을 선택한다. 또 리무진을 운전하지만 늘 술에 절어 있는 얼은 자신의 아내가 어린 남자아이를 차로 치었다는 말에 경찰이 보지 않았으면 상관없다며 시큰둥하다. <숏컷>은 전체적으로 마땅히 지켜야 할 윤리가 결여된 인물들의 행태를 보여준다. 자신에게 닥치지 않는 이상 아무리 절박한 상황이라도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자세를 고수하는 것이 바로 이들이다. 그렇다면 <매그놀리아>는 또 어떤가. 유명한 프로듀서이지만 벌써 말기까지 진행된 암으로 삶이 얼마 안 남은 얼이나, 그가 죽음을 당면한 때에서야 비로소 진정한 사랑을 느끼며 그를 잃을 것이라는 상실감에 거의 미쳐가는 린다가 있다. 딸을 성추행한 불투명한 과거를 지닌 채 방송 진행자로 살아오다 역시 암에 걸려 죽어가는 지미도 있고, 그때의 기억 때문에 마약에 찌들어 사는 딸 클라우디아도 있으며, 얼의 아들이지만 자신의 어머니를 버린 아버지를 외면하고 살아온 프랭크도 있다. 두 영화는 여러 명의 사람들과 그에 얽힌 이야기들을 병렬적 구조로 나열한다. 현실의 세상에서도 사람들은 지나온 생들을 초면인 사람들과 공유하지 않는다. 그들의 생에선 그들 자신이 주인공이므로 세상엔 사람의 수대로 생의 개수가 있는 법이다. 그리고 생의 개수만큼 다른 얼굴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 얼굴들은 자신의 과오를 잘못을 깨닫기 전엔 결코 멈추지 않는다. <매그놀리아>에서 14살의 아들이 죽어가는 어머니를 보살피는 동안에도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며 부인에게 가지 않았던 얼이 그랬고 살해당한 여자아이가 물에 잠겨 있는데도 개의치 않고 낚시를 하던 <숏컷>의 스튜어트 케인이 그랬다.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모든 사실이 밝혀질 때, 자신이 더 이상 자신으로 남아있을 수 없을 때 모든 걸 털어놓고 속죄한다. 이렇듯 두 영화는 장면들의 구조와 배우들의 행동에서 서로 공통점을 갖는다. 

  <숏컷>과 <매그놀리아>의 차이점 

  <숏컷> 속의 등장인물들은 전체적으로 자신들의 행동에 무관심하다. 행동은 그저 자신의 기호에 맞게 진행하면 되는 것이지 그로부터 비롯되는 반향이나 죄의식에는 신경을 쓸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아이들 앞에서 폰섹스를 하며 온갖 외설적인 목소리를 내뱉거나, 아내가 저지른 사고에도 별 감흥이 없는 사람들이 그렇다. 그러다가 LA에 찾아온 강도 높은 지진을 겪고 나서 다시 그들은 평상시로 돌아간다.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으로 돌아가는 그들의 행동은 마치 주인이 바뀐 사진들을 발견하고 다시 되찾으면서도 별 감흥 없이 웃는 장면에서부터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들은 아마 죽을 때까지 저 무감각함이 치유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에 비해 <매그놀리아>에 나오는 인물들은 자신의 잘못들을 뉘우치는 장면들이 몇 보인다. 생의 상처를 입은 자들은 서로에게 집착하며 그것은 때때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발현된다. 돈이 많고 건강했을 때는 애정이 없었다가 문득 죽게 되니 진정한 사랑을 느끼기도 하고, 자신의 어머니를 버린 채 바람을 피우던 아버지가 죽음을 당면한 채 침대에 누워 있자 다가가 욕을 하면서도 결국은 죽지 말 것을 울먹이는 아들이 있다. 딸을 성추행한 과거를 단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외면해오다 그래도 화해를 하러 찾아가는 아버지가 있고, 한때 퀴즈왕이었던 자신을 한물갔다고 해고하는 사장에 분노를 느껴 회사를 털다가 다시 돈을 가져다놓는 사람도 있다. <매그놀리아>의 인물들은 화해를 하거나 혹은 새로운 짝을 만나 진정한 사랑을 키운다. <숏컷>의 인물들이 자신을 끝끝내 바꿔놓거나 속죄하지 못했다면 <매그놀리아>의 인물들은 화해와 만남을 통해 비교적 희망적인 결말을 예고하는 것이다. <매그놀리아>속에서 이루어지는 상처의 공유화와 새로운 희망은 개구리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개구리비’의 장면에서 더욱 깊은 인상으로 남는다. 
  하지만 어떻게 이 두 영화가 선악(善惡)으로 구분되어질 수 있겠는가. 사실 이들을 마치 도덕교과서적인 잣대로 구분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숏컷>에서 사람들의 지극히 평범한 표면 아래에 감추어진 균열이나 비윤리적인 현대인의 내면들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면, <매그놀리아>에서는 마지막이 다가왔을 때 비로소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고 그에 대해 속죄하는 성격이 강하게 나타났다는 것이 주된 차이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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