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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레터 감상문 - 한국시문화회관 - 문예도서관 - 문예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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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브레터 감상문> - 김민구 

  본래 내가 해야 할 과제는 <러브레터>와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을 보고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는 것이었지만, <러브레터>의 영상파일은 구했으나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은 구하지 못했다. 두 영화 전부 작년엔가 한 번씩 보았었는데 내가 기억하기론 둘 모두 용량을 늘리느라 삭제했던 듯싶다. 간간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면들을 되돌아보면서 나는 <러브레터>와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모두 자신과 똑같은 사람, 즉 도플갱어(doppelganger)를 소재로 하여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걸 기억해낼 수 있었다. 최근에 본 것은 <러브레터> 하나뿐이기에 어쩔 수 없이 감상문은 이 작품만으로 문장을 이루어야 할 것 같다. 
  <러브레터>는 1995년에 이와이 슌지 감독이 제작한 로맨스 영화로서 2년 전 연인을 잃었으나 그를 잊지 못하는 한 여성이 죽은 연인의 졸업앨범 뒤에 첨부된 주소를 발견하고 편지를 보냈다가 우연히 연인과 같은 이름의 여성으로부터 답장을 받게 되고, 서신을 주고받으면서 죽은 애인의 옛 모습에 대해 더 가까이 다가가는 이야기를 갖고 있다.
  시립도서관에서 일하는 와타나베 히로코는 2년 전 후지이 이즈코라는 이름의 애인을 조난사고로 잃는다. 그녀는 이즈코의 친구와 연인이 되었음에도 그를 잊지 못하던 어느 날, 이즈코 추모 행사에 참석하게 되고 그의 집에서 졸업앨범을 발견한다. 앨범 맨 뒷장에는 주소가 있었고 히로코는 죽은 사람이 답장해오지 않을 것임을 앎에도 그 주소로 편지를 보낸다. 그 후 보낸 주소로부터 후지이 이즈코라는, 죽은 애인의 이름과 같은 여성이 답장을 보내오고 히로코와 이즈코는 서로 서신을 주고받는 사이가 된다. 그러던 차 히로코는 이즈코가 자신의 옛 연인 이즈코와 같은 중학교를 나왔으며 동급생이었다는 답장을 받고 과거 학창시절의 이야기를 묻는다. 영화는 히로코와 이즈코의 상황을 연달아 보여주면서 전개되는데, 영화 시작부터 죽은 사람으로 등장하는 이즈코와 한때 가까이 있었던, 그리고 최근까지 가까이 있었던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탓에, 그 둘을 연기한 배우는 나까야마 미호라는 사람이 1인 2역으로 등장한다. 기억에 남는 학창시절을 편지에 띄워 보내는 이즈코가 독감으로 고생할 즈음 죽은 연인의 이승에 남은 마지막 자취들을 찾기 위해 히로코는 길을 떠난다. 학창시절의 이야기는 이즈키가 중학교 도서관에서 사서 일을 보던 때 남학생 이즈키가 찾아와 책들을 대출해가며 대출카드에 자신의 이름-여학생 이즈키의 이름이기도 한-을 적는 장면에서 몰입 부분을 이루다가, 맨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의 중학교 도서부 후배들이 찾아와 옛날에 이즈키(남자)가 빌려간 <잃어버린 세계>라는 책의 대출카드 뒷면에 그려진 자신의 옛 얼굴 스케치를 보여주면서 절정을 맞는다. 결국 남자 이즈키의 여자 이즈키에 대한 동경은 그가 이사를 떠나 성장한 후에도 과거에 맘속에 담아두고 있었던 이즈키의 얼굴과 꼭 닮은 히로코를 연인으로 만들도록 작용했던 것이다. 히로코는 옛 연인인 이즈키의 알지 못했던 과거를 알고 나서 더욱 그 인연을 소중히 하고, 이즈키는 독감에서 완전히 치유되어 도서부 후배들이 가져온 선물에 대해 편지를 쓰지만, 가슴이 아파 차마 편지를 보내지 못하겠다는 고백을 마지막으로 영화가 끝난다. 
  <러브 레터>는 사랑을 전하는 편지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극중에서 등장하는 편지는 사랑을 전한다기보다는 사랑과 추억을 기억하고 그것의 소중함을 전달하는 편지에 더 가깝다. 동명이인에게서 온 답장을 천국으로부터 온 편지라고 오해를 하는 바람에 결국 둘은 정신적으로 추억을 공유하고 더 나아가 이미 죽은 이즈키와 히로코의 정신적인 유대감도 더욱 공고해지는 것이다. 우린 이 영화의 이야기 자체보다도 히로코와 이즈키를 연기한 배우가 결국 같은 인물이라는, 1인 2역의 상황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1인 2역을 통해 죽은 연인의 자취를 찾아다니며 추억에 잠기는 여성과, 갑자기 보내져 온 편지를 통해 과거를 떠올리고 새로운 사실을 다소 우연적으로 대면하게 되는 여성을 스크린 속에서 내면화시키는 것은 이보다 더 적절하고도 극적인 방법은 없을 것이다. 저 둘은 본래 아무런 상관관계도 갖고 있지 않았지만, 서로가 가진 추억의 공통분모인 이즈키로 인해 간접적으로나마 교감하게 되는 것이며 이는 한 명의 여인 속에 두 명의 영혼이 들어있는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한 쪽은 돌아오지 않는 연인의 모습을 여전히 반추하고 있고, 다른 쪽은 자신과 별 상관없다고 생각한 친구가 실은 자신에게 깊은 시선을 던지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과거와 현재는 비교될 수 있어도 우열을 논할 수 없듯이, 히로코와 이즈키는 같은 남자로부터 머물러있던 위치가 달랐을 뿐 그 누가 진짜 연인이 될 자격이 있는지는 가릴 수 없다. 가려서도 안 되고. 만약 두 사람을 같은 배우가 연기하지 않았다면 <러브레터>는 그저 A와 B라는 사람 사이의 서간체 형식만을 따라갔을 것이다. A가 B가 될 수 있고 그 둘은 먼 추억의 끝에 서 있는 대상에 대해 모자란 기억들을 채워갈 수 있었기에 전반적으로 말하면 서로 다른 사람이 아니라는 극적인 결말에 도달하게 된다. 이로써 히로코가 이즈키에게 보낸 편지는 자신이 알고 있던 사람이 아니었기에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올 수 있었다. 만약 죽은 이즈키가 편지를 보낼 수 있었다고 가정해도 이보다 더 나은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그렇게 되면 오히려 히로코와 이즈키(남자)간의 사랑을 담은 문장이 양립할 수 있을 뿐, 여자 이즈키라는 변수가 등장하여 삼립하는 양상을 보여줄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랑이란 하는 쪽과 받는 쪽, 둘의 사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엄격히 말하자면 그 둘을 나누는 것도 무의미하지만, 사랑을 값지게 이루기 위해선 그 주변의 이야기가 절실히 필요한 것이 아닐지. 그로 인해 서로에게 비밀이 없는, 솔직한 사이가 되는 것이 아닐지 생각해본다. 
  <러브레터>는 우리가 일상생활로 알고 있던 사랑의 방향을 말하지 않는다. 한 쪽에서 마주 보는 쪽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담아둔 사람 근처에 머물러 있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유해서 전달된다는 내용을 갖고 있다. 그 집념이 강할수록 히로코와 이즈키(여자)와 이즈키(남자) 사이의 정신적인 관계도 더욱 강해질 것이다. 그러한 노력이 편지라는, 자신의 마음을 제일 솔직하고도 과감하게 대변해줄 수 있는 매개가 되고 발송(發送)과 답신(答信)이 겹치고 겹쳐 이야기를 만들어냈으니 이것이 바로 <러브레터>가 갖고 있는 철학에 다름 아니다. 자기의 벽을 허물고 타인의 입장이 되고, 그 자리에서 또 한 번 건너뛰어 더욱 내밀한 자기애(自己愛) 속으로 회귀하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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