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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作) 감상문 - 한국시문화회관 - 문예도서관 - 문예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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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作) 감상문
  김민구 

  싯다르타는 오늘날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의 이름이다. 책에 따르면 그는 인도의 유복한 바라문 학자의 아들로 태어나 바라문의 교리를 배우고 따르며 세상을 창조했다고 믿는 아트만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끝없이 자신에 대해 사유한다. 바라문의 모든 가르침을 받았으나 그는 가슴 속에 차오르는 生에 대한 수많은 의문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결국 집을 떠나 사문의 길로 들어선다. 싯다르타의 곁에는 바라문 시절부터 같이 수련해 온 친구 고빈다가 있는데, 사문이 되어 생의 본질에 대해 구도하던 중 세간에 고타마라는 성인이 나타나 진리를 설파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에게 가르침을 얻으러 간다. 하지만 진리를 얻은 자는 그에 이르는 방식을 말로써 분명하게 설명할 수 없다는 것에 회의를 느끼고, 싯다르타는 고타마의 제자가 된 고빈다와 헤어져 또 다른 구도의 길에 오른다. 카와스와미라는 기생을 만나 연인이 된 싯다르타는 사랑과 장사, 도박과 노름, 사치와 향락을 경험하지만 결국 이마저도 모두 부질없음을 느끼고 자신을 ‘싯다르타’로 있게 하는 본질을 찾아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게 된다. 그리고 싯다르타는 강을 마주하여 생각하다가 별안간 자신이 득도하지 못한 이유는 지나치게 몰입했기 때문이며, 자연스럽지 못했기 때문이고, 스스로를 받아들이지 못한 탓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는 지금껏 구도자나 일반 사람의 모습에만 치우쳐 있었고 자기가 생각한 바른 길로 돌아가려 할 때마다 어느 ‘틀’에 박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싯다르타는 강물의 흐름이란 마치 사람의 인생과 같아서, 그 줄기는 모두 다르지만 결국은 바다라는 크고 광활한 공간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깨닫고 한때 자신에게 강을 건너 주었던 뱃사공 바주데바와 노년(老年)을 보낸다. 뱃사공은 강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이어야만 하므로, 바주데바는 강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갈래와 가늠할 수 없는 폭과 면적, 깊이, 상류와 하류, 나아가는 것과 물러서는 것 등 인간사의 이치를 깨닫도록 서로간의 조력자가 된다. 물은 형체가 없으나 어느 방향으로든 흘러갈 수 있고, 수많은 다른 모습들로 변할 수 있지만 결국은 물, 혹은 바다라는 하나의 순리에 합쳐지는 것이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모습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한때 살아있는 부처로 칭송받던 고타마가 열반(涅槃)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려다 옛 연인이었던 카와스와미와 아들을 만난다. 카와스와미는 뱀에 물려 죽게 되고 어머니를 잃은 아들은 아버지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한없이 갈등을 빚는다. 결국 아들은 어디론가 떠나고 싯다르타는 자신이 옛날 바라문에서 사문으로 떠날 때 아버지가 가졌던 기분을 이해하며 결국 아들을 놓아준다. 친구 바주데바는 평생을 강과 살아오면서 얻은 경험과 사유로 깨달음에 이르게 되어 하나의 빛으로 떠나고, 오랜만에 해후한 싯다르타와 고빈다는 그동안 자신들이 믿어온 신념과 사상들을 서로 주고받는다. 싯다르타는 고빈다에게 깨달음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쏟은 지나친 집착이 오히려 득도를 막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진정한 깨달음이란 세상의 만물을 똑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며 관찰할 때에 비로소 자신들 속에 있는 본질을 이해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라고 말하고, 그에 감화된 고빈다는 친구이자 먼저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된 싯다르타에게 공손히 절하는 것으로 끝맺는다. 
  나는 한때 불교철학에 관심을 가진 적 있었다. 끝없는 사유 속에서 세상을 세상으로 존재하게 만드는 아득한 법칙을 한 줄기의 빛처럼 깨닫는, 성불(成佛)이라는 것이 궁금했다. 과연 성불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얼마인가. 부처와 중생의 차이는 무엇인가. 불교의 도는 어떻게 하여 얻어지는가. 득도의 방법에는 오래도록 수행하면서 비로소 깨닫는 법도 있고, 하나의 화두나 행동으로 인해 단번에 깨닫는 방식도 있었다. 하지만 득도의 과정을 겪는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은 사물을 사물답게 보는 것을 넘어 본질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다. 책의 결말 부분에 싯다르타가 고빈다에게 돌멩이를 들어보이며 이것은 단순히 돌멩이의 의미만을 갖고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어떤 것도 될 수 있다고 말하는 부분에 다름 아니다. 시간이 지나 바뀌는 과정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모든 형상을 지니고 있었다는 통찰적인 시각에서만 볼 수 있는 설법인 것이다. 이것은 금강경의 유명한 구절인 “형상 있는 것은 모두 허망하니, 형상의 실체가 없음을 알면 곧 부처를 보리라”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의 내용이다. 돌멩이는 돌멩이 자체일 뿐 아니라 흙이기도 하고 짐승이기도 하고 신이기도 하며 사람이기도 하다는 불교적 통찰은 시인의 눈처럼 하나의 대상을 바라보면서 그것이 가지고 있었던 흔적과 자취, 역사와 흐름들을 파악하는 능력인 것이다. 
  사실 헤세의 <싯다르타>는 내가 알고 있던 부처의 생애와는 상당히 다른 점이 있다. 아마도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정설일 테지만, 싯다르타는 왕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 문득 보리수 아래에서 수도하는 사람과, 성문을 나갔다가 보게 된 생로병사의 모습에 의해 문득 인생에 회의를 갖고 구도자의 길로 들어선다는 이야기 말이다. 그러므로 내 생각에는, 헤세가 <싯다르타>를 통해 보여주려 했던 것은 부처의 생애가 아니라 성불의 과정이다. 싯다르타가 부처인 것은 맞지만 부처란 그 이전에도 분명 존재했을 것이다. 싯다르타는 사문이자 바라문이자 장사꾼이자 뱃사공이었으며 부처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직접 삶의 고락(苦樂)을 겪고 나서야 그것을 내려놓을 수 있다는 성불의 과정은 내가 알고 있던 전형적인 불교의 수도법과 몹시 다르다. 하지만 헤세는 그 깨달음의 길을 문학적으로 보여주려 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저 경전과 교리에만 해박한 바라문으로서의 싯다르타를 그려내고, 중간부에는 사문과 장사꾼, 연인, 노름꾼 등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삶의 경험들을 마음껏 누리는 싯다르타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흘러가는 강물을 보고 크게 깨달아 뱃사공이 되고 결국 부처가 되는 것을 아주 섬세하게 그려냈다. <싯다르타>는 성불의 과정인 것이다. 그것이 금강경의 어느 구절이 되었든 도교의 상선약수(上善藥水)의 경지가 되었든 무엇이 다른가. 모든 종교는 본질의 깨달음을 추구하고 싯다르타는 그러한 과정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이해하여 부처가 된 것이 아닐까. 
  나는 본 감상문을 불교의 명언이자 화두로 꼽히는 일체유심조라는 말로 끝내고자 한다. 세상 모든 것은 마음에 따라 달렸다는 뜻이다. 어떠한 물체를 형상 자체가 아니라 내면의 정체성까지를 포착해낼 때 우리는 이미 마음속으로 한 모습의 부처를 이루어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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