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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학상 수상자의 작품 3편을 읽고 평론쓰기 - 한국시문화회관 - 문예도서관 - 문예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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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예술에 대한 지식, 정보, 중요한 자료들을 편집자들이 집필해 놓은 공간입니다.

  이상문학상 수상자의 작품 3편을 읽고 평론쓰기 
  김훈의 『화장』. 『빗살무늬토기의 추억』, 『항로표지』
  김민구 

  만약 이 땅의 소설가들 중 한 명의 작품을 고르라고 요구한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김훈을 선택할 것이다. 정작 작가 본인은 자기 스스로 시(詩)에는 좀처럼 다가갈 수 없다(수필집 <바다의 기별>)고 말했지만 독자인 내가 보기에 그는 소설가이면서도 시인의 풍모가 작품 속에서 핍진하게 드러나 있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나와 같은 고등학교를 나와 몇 년 전에 선배 문인의 자격으로 모교에서 짧은 강의를 했을 때 내가 인상적으로 느꼈던 것은, 작가로서 자신의 문장 위에서 살아야만 하는 예술가적 자존감과 함께 모든 사물을 바라볼 때 최우선으로 가져야할 시선은 바로 그 본질은 어디이며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단어가 그 본질에 가장 가깝게 닿아있는가를 사유해야만 한다는 그의 답변이었다. 그저 글을 쓰는 것이 가장 삶에 온 힘을 쏟고 사는 것 같았던 고등학교 1학년,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 읽기와는 한층 달랐던 현대소설을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살던 때, 열일곱의 나는 제일 처음으로 김훈을 읽었다.
  내가 다루고 싶어 하는 <화장>, <빗살무늬토기의 추억>, <항로표지>는 모두 한 가지의 똑같은 플롯을 가지고 있다. 바로 한 작품 속에 두 명의 이야기가 번갈아 병치되어 있다는 점이다. <화장>에서는 뇌종양으로 상처(喪妻)한 주인공이 장례를 치르는 내용과 그 주인공이 자신과 같은 회사를 다니는 추은주라는 여직원을 취하고 싶은 한 명의 여자로써 바라보는 내용이 병치되어 있다.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에서는 소방관으로 일하는 주인공 ‘나’와 한때 공사장에서 근로자로 일하던 장철민의 이야기가, <항로표지>에서는 수로직공무원으로 일하는 등대장(燈臺長) 김철과 중장비 운전수로 일하는 송곤수의 이야기가 중첩되어 있다. 몇몇 작가들은 하나의 이야기 속에서 여러 명의 화자를 등장시킴으로써 중점적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메인 스토리를 보다 견고하게 구축하는 방법을 즐겨 사용하는 데에 반해, 김훈의 소설에서는 서로 병치된 이야기의 주인공 혹은 화자들이 겪는 내용들은 메인 스토리로 병합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개별적으로만 존재한다. 독자들은 김훈의 소설을 읽으면서 하나의 메인스토리가 아니라 두 개 이상의 서브스토리를 접함으로써 운신의 폭을 넓히는 것이다. 서브스토리들이 결말부에 도달해서 서로 약간의 연관 관계를 찾을 수도 있지만 아예 그렇지 않고 서로 독립된 상태로서만 남을 수도 있다. 김훈은 독자들에게 작가가 꼭 한 상황을 가지고 인물들을 배치시킬 필요는 없다는 것을 역설한다. 소설은 현실의 반영이므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동안에 다른 공간에서는 완전히 다른 사건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 등대의 불빛을 먼 바다로 보내는 일을 하고 있는 동안 다른 누군가는 중장비를 몰고 일을 할 수도 있고, 또 누군가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불타는 건물 속으로 들어가려고 노력할 때 다른 누군가는 어떤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르는 것이다. 김훈의 소설을 읽는 동안에 독자는 어디에 눈을 중점적으로 두어야할 지 막막하다. 하지만 곧 이러한 이중성에 익숙해진다. 한 가지 내용을 가지고 여러 갈래로 접근하는 방식은 한때 새로웠으나 이젠 진부한 독법이 되어버렸다. 이젠 수많은 갈래로 흩어진 이야기들이 하나의 메인스토리를 향해 다시 결합하는 식이 아니라, 서로 제 방향을 찾아 뻗어나가는 과정을 독자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스토리들을 개괄적으로, 거시적으로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김훈 소설에서 한 가지 아쉬움을 발견한다. 언젠가 메인스토리로 합쳐질 플롯을 갖고 있는 서브스토리들이라면 괜찮지만, 합쳐지지 않고 계속 나아가거나 혹은 몹시 피상적으로만 상통할 뿐인 서브스토리들이 그들 사이에서 어떤 당위성을 갖고 배치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하나의 이야기를 읽다가 갑자기 다른 이야기가 튀어나오면 독자들은 순간적으로 당황하기 쉽다. 왜 이런 이야기가 갑자기 등장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고 그만큼 서브스토리의 등장에 관한 당위성이 부각된다. 김훈은 이러한 당위성에 관한 궁금증을 거의 상징적으로 해결한다. <화장>에서 부인을 잃은 주인공이 왜 여직원의 매혹적인 육체를 엿보는 모습이 서브스토리로 등장하는가, 하는 질문에 김훈은 (물론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지만) 여자의 몸에 호기심을 갖는 것은 남자로서 당연한 것이며 이러한 본능에 나이는 상관없다는 걸 말하고 있다. 뇌종양으로 아내가 죽었는데도 남편은 여직원의 육체를 마치 관능적으로 탐하는 상상을 하면서 다시 죽은 부인을 그리워한다. 인간은 단일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슬픔 속에서도 매력적인 것을 보면 희열이 드는 것은 바로 인간의 이중성이지만, 이는 사회의 이중성이기도 하며 또한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병상에서 죽어가는 부인이 아름답고, 그녀의 목숨은 유한한 것이라면, 부인을 회상할 때마다 떠오르는 아름다운 기억들은 모두 유한하다는 뜻과 통한다. 사실 모든 것에서 영원성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오랜 시간이 있을 수 있지만 모두 유한하다. 끝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끝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화장>의 주인공 ‘나’는 아내의 육체가 갖는 유한성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유한성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동료 여직원 추은주의 젊은 육체를 곁눈질로 살피며 매력을 느낀다. 이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아주 철학적으로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그렇다면 <항로표지>란 어떤가. 수로직공무원으로 일하는 등대장 김철은 그의 직책이 보여주듯 한 등대의 관리를 맡은 사람이다. 등대는 먼 바다를 향해 일정한 시간차를 두고 섬광을 쏘아 보냄으로서 선박들의 안전한 항해를 도와주기 위해 만든 구조물이다. 이 등대에서 홀로 생활하는 김철은 망망대해에 존재하는 것은 자신과 등대의 섬광 밖에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바로 육지와 떨어져 있는 등대, 즉 가족과 떨어져 생활하고 있는 등대장 김철의 처지와 동일화된다. 그는 바다의 파고와 등대 섬광의 광량을 측정하는 생활과 바다를 바라보면서 밤을 지새야하는 의무가 몸속에 축척됨으로써 근원적인 고독과 마주한다. 결국 그는 사표를 내고 초등학교의 교사가 된다. 김철은 공무원으로써 일하는 동안 먼 바다에 나가 있는 선박들의 순항을 위한 등대의 기관장, 다름 아닌 항로표지로서의 임무를 다하고 있었지만 정작 스스로는 피로와 고독이 누적된 몸을 가눌 수 없어 그 외로움의 깊이 속에서 부유하는 부이(buoy,부표[浮標])처럼 남은 기간을 살아간다. 정처 없이 그저 삶 위에서 떠다니는 것이다. 김철의 이야기와 병치되는 서브스토리의 주인공 송곤수는 한때 어느 기업의 중견 간부였지만 회사가 도산한 이후 작은 중장비나 조금씩 굴리는 일을 하고 있다. 그를 붙들어줄 곳, 즉 거취나 가정을 돌보아줄 곳은 어디에도 없다. 결국 그는 김철이 초등교사로 직렬이 변동되어 인사 발령이 나자마자 계약직 직원으로 김철의 등대에 부임한다. 사람은 늘 자신을 붙들어줄 곳을 찾아 헤맨다. 언제든 지금까지의 모든 노고가 한 번에 보상받는 일은 없다. 고독이 아주 조금 줄어들거나, 아니면 제 한 몸 누일 공간을 확보하는 데에 성공하는 것이 전부다. 망망대해에서 안정적인 거취를 위해 작은 등대로 자리를 옮기고, 또 등대에서 육지에 있는 작은 시골 학교로 자리를 옮기는 <항로표지>의 주인공들은 모두 고독한 인간의 초상을 대변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의 경우, 소방관으로 일하는 주인공 ‘나’는 어느 날 장철민이라는 신입 소방관을 인계받는다. 크게 두 가지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는데, 하나는 소방관으로서의 ‘나’의 이야기(A), 그리고 다른 하나는 장철민이 소방관으로 들어오기 이전 공사장 근로자로서의 이야기(B)가 바로 그렇다. 이야기 A에서 장철민은 신입 소방관으로 들어와 화재를 진압하다가, 2년 후 진압작전 도중 순직하는 장면이 등장하고, 이야기 B에서는 죽기 전 장철민이 공사장에서 무슨 일을 했는가를 설명한다. 살아있는 자가 순간 죽은 자로 바뀔 수 있는 일촉즉발의 화재현장에서 제 몸 돌보지 않고 불을 끄기 위해 분투하는 사람과, 공사장에서 중장비를 몰며 땅을 굴착하고 다른 잡일을 하는 사람 사이에는 얼핏 보면 어떠한 연관 관계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야기 B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장철민이 이야기 A로 건너오면서 소방관이 된다는 내용을 덧붙여 읽어 보면 우리는 삶과 죽음이 경계에 대해서 사유하게 된다. 이야기 A는 삶과 죽음의 자리가 불분명한 공간 김훈의 수필집 <바다의 기별>을 보면, 그가 신문기자였을 때 화재 진압 현장을 취재하러 나갔다가 소방관들이 하는 일을 눈여겨보아 이를 기록했다는 내용이 있다. 아마 지금과는 소방관들의 장비나 처우에 대한 점들이 많이 다를 것이다.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에 등장하는 소방관들의 고군분투는 아마 김훈의 신문기자 시절 취재노트에서 발현한 것일 터, 지금의 소방관보다 생존 시간이 턱없이 짧았던,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순간들이었을 것이다. 
이다. 그에 비하여 이야기 B는 고된 노동의 현장이지 까딱 잘못하면 삶에서 죽음으로 추락할 여지가 있는 공간은 아니다. 이야기 B에서 A로 건너온 장철민은 진압작전을 감행하다가 건물이 추락하여 순직한다. 그렇다면 장철민은 차라리 노동의 현장에 남아있는 편이 더 나았을까?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둘러싼 삶과 죽음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까이 있음을 역설한다. 마치 박물관에 전시된 선사시대 토기 위로 새겨진 빗살무늬처럼, 이런 삶의 풍파에 온통 할퀴어진 생애를 끝끝내 돌보고 지키며 살아가야만 하는 현대인들의 초상을 잘 드러내고 있다. 
  김훈의 소설은 눕거나 허리를 뒤로 젖히고 읽을 수 없다. 똑바로 응시하지 않으면 그의 문장은 소설의 것이 아니라 신문기사나 어느 논문의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김훈은 자신의 작품 속에서 독자들을 향해 문장으로 발언하는 화자의 태도를 늘 객관화시킨다. 주관적인 감정에 휘둘리는 화자가 아니라 벌어진 상황은 상황대로, 내면은 내면대로 처리함으로써 이야기를 보다 적확하게 전달하려 하고 있다. 한 번 읽으면 진부한 문장이지만 두 번 세 번 곱씹어 읽으면 짧으면서도 굵은 임팩트가 있는 문장들이다. 가령 종량이 발생하게 되는 환경과 조건은 알 수 없다. 〝종양은 생명 속에서만 발생하는 또 다른 생명이다. 죽은 조직 안에서 종양은 발생하지 않는다.〞(『화장』, p.38), 〝거기가 빛의 한계점이었다. 빛들은 더 멀리 나아갈 수 없었다. 돌아선 배들의 초록색 항해등은 광달거리 밖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항로표지』, p.103)와 같은 문장들은 객관과 직관이 고르게 함유된 모습이다. 이 문장들에는 죽음이나 상실에 대하여 터질 듯한 연민이 없다. 다만 앞에 닥친 사건이나 변하지 않는 사실만을 객관적으로 진술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독자들은 ‘소설이란 현실의 반영’임을 다시 한 번 각인한다. 김훈의 소설에는 기적이 없다. 사람의 능력으로 피해나갈 수 있는 고난은 있어도 완전히 점령당한 상태에서의 기적적인 회복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그 현실을 담담하게 서술하여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소설의 첫 번째 모토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김훈만의 특이한 문체와도 상통한다. 김훈의 작가적 특성은 다름 아닌 그의 작품 속에 존재한다. 세상을 직관의 눈으로 보면서 모든 상황을 언어의 본질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자세를 유지하여 담담히 서술하는 특이한 독법이 바로 그것이다. 마치 고전 읽기를 떠올리게 만드는 그의 독특한 문체는 문장이 갖는 진술성과 묘사성 모두를 한꺼번에 충족하고 있다. 문단에 나오기 전 신문기자 생활을 오래 해온 이력을 보여주듯 김훈 소설을 이루는 문장들의 주체는 모두 아무런 감정에 좌우되지 않는 한 명의 객관자임을 독자들이 스스로 알도록 만든다. 이것이 바로 김훈 소설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의자에 앉아 허리를 곧추세우고 책장을 들여다보아야만 하는 이유이다. 사실을 당면한 상황을 진술하는 방법은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 정면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김훈 소설이 리얼리티를 획득할 수 있도록 만드는 기제라고 말할 수 있다. 
  김훈은 자신의 특이한 문체를 소설의 영역에서 구축하는 것을 성공시켰다. 흔히 문예문과 논술문은 주관성과 객관성의 차이로 구분 짓는데, 김훈의 작품 속에서는 두 특성이 상호 공존의 상태를 보이고 있다. 객관적인 시야로 보는 문장도 세상에 대한 통렬한 직관이 덧입혀지면 충분히 예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김훈은 주로 문장쓰기에서 직관력을, 상황 만들기에서 상징성을 도입한다. 두 가지의 서브 스토리가 병치되어 서로 상징성을 공유하며 세상의 전면(全面)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그렇다. 이 세상에서 인간은 얼마나 고독한 존재이고 욕망을 다스릴 줄 모르는 존재인가. 푸르게 넘실대는 바다와 눈부시게 쏘아져 나가는 등대의 섬광만이 공존하는 곳에서 인간이란 얼마나 개별자인가. 김훈의 단편을 읽고 난 후 독자들은 더욱 깊어진 사유의 겹을 느낀다. 개개인의 삶을 그린 작품 속에서 먼 세상과 우주로까지 작가와 독자의 직관은 점점 확장을 거듭한다. 현실을 반영하는 소설의 문장들 앞에서 작가는 몹시 담담하다. 어찌 보면 감정을 억지로라도 절제하고자 노력하는 것 같다. 감정을 묘사하는 문장들을 모두 쳐내고 남은 것들은 그저 사실만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능력 밖에는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그런 문장들을 가지고 김훈은 보다 인간의 깊은 사유의 내면까지 가 닿게 만드는 재능을 지녔다. 시인과 철학자가 해내지 못하는 일을 소설가 김훈은 능히 해내고 있다. 그의 언어는 전방위적이다. 감성과 이성, 감정과 논리, 객관과 주관의 영역을 모두 아우른다. 김훈은 가장 깊이 벗겨진 언어의 겹 속으로 우리들을 인도하고 있다. 맨살과도 같은, 정제된 것을 모두 빼낸 언어를 찾아 나서는 항로의 표지처럼, 김훈의 문장은 끊임없이 세상을 탈곡(脫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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