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부두
김경민
저녁 어스름이 밀려오는 부두에 커다란 배가 와 닿는다. 저 배는 지난 계절의 그 오랜 시간 속에 어느 곳을 향해하다 이제 이 항구에 도착한 것일까. 사람들은 아침에 길을 떠나 저녁이면 집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이것은 흔한 이야기다. 상식이다. 또는 봄에 여행을 떠나 여름의 폭양과 폭우와 태풍 속에서 오래고 곤고한 여정을 거쳐 가을의 입구에 집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이것도 흔한 이야기다. 상식처럼 흔한 상징이다. 또는 젊은날 길을 떠나 정열과 성실과 원숙의 길을 지나 가을날 자기가 쉬어야 할 고향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이런 얘기들은 지난 날 문학작품 속에서 흔하디 흔하게 보아왔던 상징들이다. 그런데 이미자의 노래 같은 그런 익숙한 상징들이 이제 불리지도 않는지 이 가을 입구에 또다시 떠오르는 것은 내가 더 이상 낡지 못할 만큼 낡았다는 상징(?)일까. 로마시대의 정치가이자 문인이었던 어떤 이는 죽음을 하나의 인격의 완성으로 보았다. 과일 나무는 봄에 꽃을 피우고 계절이 지나면서 열매맺고 그리고 무르익어서 가을날 그 열매는 떨어진다.
사람도 청춘과 깊이와 성실과 원숙의 시간의 과정을 겪고 죽음에 다다른다. 이제 항구에 부는 바람은 스산하다. 부두에 다다르기 전까지 도열하고 있던 나무들은 조금씩 제 옷들을 벗어 던진다. 소금기에 절은 차가운 바람은 가로수 잎들을 물들이며 훑어 내린다. 많은 사람들을 싣고 돌아오는, 수많은 컨테이너를 싣고 돌아오는, 그리고 알 수도 없는 많은 화물들을 싣고 돌아오는 저 배들은 어쩌면 오늘 아침 이 부두를 떠난 배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저 많은 배들이, 저 많은 각양각색의 화물을 적재한 배들이 마치 오랜 항해를 끝내고 돌아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제 항구는 어둠에 잠겨가고 반대로 불빛들은 더욱 휘황하다. 저 배에 실린 시간들은 알리라. 저를 실은 배가 닿는 섬이나 육지의 항구는 하나의 거대하고 밝은 무덤이라는 것을. 오랜 항해를 마친 배는 이 부두에 그토록 자신을 힘겹게 했던 시간이란 화물을 풀어놓을 것이다.
나도 이 가을 입구에, 아니면 몇 번의 가을을 더 지나 죽음의 항구에 다 다를 때 어떤 시간의 화물을 풀어놓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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