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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스센스와 제 8요일 - 한국시문화회관 - 문화칼럼 - 김경민 시인의 문화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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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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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이슈가 되는 문화 예술계의 제 문제에 대한 편집자들이 의견을 피력하는 공간입니다. 또는 저자의 허락을 받아 창작에 도움이 될 만한 글들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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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스센스와 제 8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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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스센스와 제 8요일

            김경민

몇 년 전 기차여행을 할 때였다. 창 밖으로 흘러 지나가는 풍경들은 아름다웠고 시간은 그런 창 밖의 풍경 속에서 고즈넉히 흘러가는 듯 느껴졌다. 햇살은 넓은 벌판 가득히 내려앉고 나무들은 다소곳이 다가와 손을 흔들며 지나간다. 멀리 검푸른 산들은 끈질기게 차창을 따라오다가 마을과 도시의 건물 뒤로 슬그머니 사라지곤 했다. 그런데 이런 시각(視覺)의 고요속을 헤집으며 내 귀를 괴롭히는 대화가 있었다. 대화라고 했지만 사실 한 사람의 목소리만 들리는데, 들리지는 않지만 대화의 내용으로 보아 상대가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앞좌석에서 나는 소리임이 확실했지만 좌석위로 솟아오는 머리는 한 사람 뿐이었다. 넘겨보니 앞좌석의 인물은 휴대폰 전화로 누군가와 열심히 대화를 하는 중이었다. 나는 그 사람의 어리석음을 탓하며 억지로 창밖의 풍경에 몰두해 보려고 애쓴 적이 있었다. 

  그 때의 내 생각은 '사람들이 조금씩 미쳐가고 있구나'라는 것이었다. 또는 '자유롭다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장면을 보아도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시장에서든 도서관에서든 숲 속에서든 강가에서든 나 또한 휴대폰을 들고 보이지 않는 대상을 향해 미친 듯이 떠들어대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관에 앉아 화면에 몰두하다 보면 영사기에서 뿜어져 나와 스크린 위에 뿌려지는 갖가지 장면들에 빠져 들게 된다. 에로틱한 장면에는 흥분이 되고 피범벅의 장면에는 끔찍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실체가 아닌 빛에 현혹되어 우리는 좌석에 파묻혀 여러 감정의 동요를 경험하게 된다. 필름을 통과한 빛의 알갱이들은 천이거나 합성섬유거나 할 것이 분명한 스크린 위에 실감나는, 마치 진짜 같은 허체(虛體)들을 그려 놓고서 나를 비롯한 관객들을 두 시간 이상씩 붙잡아 두곤하는 것이다. 이런 모습들은 집안의 텔레비전 앞에서도 매일 같이 반복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어쩐지 나의 일상이 영화관 안에서처럼 지속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컴퓨터 화면 앞에 앉아 보이지 않는 그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쓰면 마치 귀신의 장난처럼 누군가 화면 위에 '안녕하세요'라고 써놓는다. 무슨 질문을 하면 누군가가 대답을 화면 위에 써놓는다. 신기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누군가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데 나와 이야기를 나눈다는 점에서는 신기하고 반갑지만 실체를 느낄 수 없으므로 저 대상과의 간격이 멀어 보이는 것은 우울한(?)느낌이다. 

  영화「식스 센스」는 자기가 이미 죽어서 귀신이 된 줄도 모르고 산 사람처럼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정신과 의사의 얘기다. 자신이 살아 있다고 착각하는 이 정신과 의사는 한 아이의 정신치료를 하겠다고 아이를 방문하기도 한다. 아이는 남이 보지 못하는 혼령, 즉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귀신들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다. 그 아이는 남이 못 보는 것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지녔기에 누구보다 맑고 순수한 눈과 영혼을 지녔다. 물론 영화 속의 인물이지만, 아이는 오히려 그 의사 유령을 위해 정신치료 상담도 받고 그가 마치 산 사람처럼 대해준다. 여기서 식스 센스는 인간의 오감(五感)을 넘어선 제6의 감각, 아마 영감(靈感)을 이야기하는 듯한데 나에겐 죽은 줄도 모르고 돌아다니는 그 정신과 의사와 남보다 더 많은 것을 보기에 더 고통스러워야 하는 아이의 모습이 깊이 인상에 남는다. 어쩐지 나와 나를 비롯한 주변의 사람들과 그들의 처지가 너무 닮았다는 느낌 때문일 것이다. 

  역시 영화 『제8요일』에서 주인공 중 한 남자는 일에 빠져서 가족이나 주변, 또는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고 살고 있다. 일에 관한 것이 아니면 주변의 것들에 대해 냉혹하며 감정으로 충만하다. 물론 현실에서 장애자 취급을 받지만,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내는 여러 우여곡절 끝에 친구가 되고 어느 날 커다란 나무 밑에 나란히 누워 아주 짧은 순간이나마 새소리와 바람소리와 나뭇잎들이 몸 부비는 소리를 듣는다. 이것은 현실에서 장애자 취급을 받는 사내가 제안한 것이다. 그는 말한다. 이 짧은 순간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기들만을 위한 시간이라고, 제8요일의 의미는 이 영화에서는 다소 어둡다.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는 어떤 피안의 시간을 의미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화 속의 순수한 영혼의 청년은 자살로서 현세에 시간을 끝낸다. 현실 세계의 허상에 깊이 침몰되 있는 우리는 어쩌면 7일의 시간 중 아주 짧은 시간만 제대로 영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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