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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의 군상 - 한국시문화회관 - 문화칼럼 - 김경민 시인의 문화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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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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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이슈가 되는 문화 예술계의 제 문제에 대한 편집자들이 의견을 피력하는 공간입니다. 또는 저자의 허락을 받아 창작에 도움이 될 만한 글들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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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의 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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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의 군상 

                         김경민

 

영화는 1초에 24프레임의 필름이 일정하게 화면에 투영되는 작업이다. 영화 속의 인물과 사물은 쉴새없이 움직이는 듯 보이지만 그것은 수많은 사진들이 끊임없이 연결됨으로써 우리 눈이 빛어내는 착각인 것이다. 영화는 1초에 스물 네 번의 어둠과 스물 네 번의 빛이 빠르게 지나가면서 수많은 멈춤들이 서로 연결된 움직임으로 변모하는 빛의 마술이며 실제로 존재치 않는 가상의 현실이다

 내가 지금껏 본 영화 중에는 영화 자체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몇 편 있는 데 그중 두 편의 영화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한 편은 이테리 영화 "시네마 천국"이고 다른 한 편은 안정효 씨의 소설을 영화화한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다. 이 두 편의 영화는 영화를 통해 우리의 현실과 인생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 두 편의 영화가 드러내는 주제는 아주 상반된다. "시네마 천국"은 영화를 통해 우정을 나누고 결국 긍정적인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다. 하지만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는 영화 속 가상의 현실에 깊이 함몰되버려 자기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다 파멸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나는 우리의 현실을 담은 다소 철학적인 작품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이 영화(또는 소설) 속의 주인공은 청소년기의 대부분을 헐리우드에서 제작한 영화를 보면서 보낸다. 영화관에 가기 위해 돈을 모으고, 동경하는 그 영화 속의 세계를 통해 산동네에서의 생활고와 가족과 헤어진 외로움 등 척박한 현실 삶을 잊어버린다. 그의 삶은 연탄재가 뿌려지고 매일 아귀 다툼이 끊이질 않는 전쟁 후의 산비탈 동네가 아니라 수많은 헐리우드 스타들이 화려한 빛의 세계 속에서 살아 숨쉬는 이국의 세상에 있다. 수많은 외국 배우들의 이름과 영화 대사와 영화 장면들을 줄줄 외우면서 현실의 삶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그의 모습은 훨씬 훗날인 지금, 우리 사회에 가득한 맹목적인 영상(映像) 신도들의 모습이다. 너무 영화를 좋아했던 주인공은 어른이 된 후에 영화사에서 일을 하게 되지만 그가 맡은 것은 영화 소품을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일이다. 늘 완성된 외국 영화 속에서만 꿈꾸며 살던 그가 실제 영화 제작의 어려움을 알 턱이 없다. 그는 완성된 영화로 가기 위해 겪어야 할 제작 과정의 많은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한다. 언제나 성공한 결과가 빚어낸 - 당시 우리나라에 들어온 영화는 외국 영화 중에서도 비교적 성공한 작품들일 것이다 - 가공의 현실 속에서 살아온 그가 성공한 결과로 가기 위한 과정의 고통에는 적응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결국 그는 영화사를 나오고, 이성적으로 영화를 공부해서 감독이  된 친구에게 자기가 썼다는 시나리오 한 편을 맡기며 꼭 영화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친구의 부탁을 받은 감독은 그의 시나리오로 영화를 만들고 그 영화는 최고의 작품으로 뽑혀 상까지 받게 되지만 감독은 작업 도중 아주 우연히 친구의 시나리오가 그의 창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가 썼다는 시나리오는 그가 여지껏 보았던 수많은 영화 작품들의 여러 장면들, 여러 대사를 모아 구성한 짜깁기였다. 헐리우드의 수많은 영화 속에서 방황하다가 자신을 잃고 현실을 잃어버린 고아, 우리의 주인공은 단 한마디도 자신의 대사, 자신이 표현하고픈 장면을 찾지 못한 것이다. 

 이제 영상의 시대라고 한다. 공중파 텔레비젼 방송과 유선방송이 보고싶은 모든 것을 보여준다. 비디오 작품들도 홍수다. 컴퓨터를 통해 모든 정보를 눈에 쏙쏙 들어오게 받아볼 수 있다. 모니터도 대형화되어 간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화면의 질과 제작의 노고와 작품성에서는 영화를 따라올 영상물은 아직 없다. 그래서 상징적으로 이 글의 소재를 영화로 잡았다. 그러나 내가 실제로 이야기하고픈 것은 영화가 아니다. 이 시대의 풍조다. 한 권의 책을 읽기보다는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소설 한 권을 글자를 좇아가며 읽기보다는 그 소설을 영화로 만든 것을 한 번 보는 것이 훨씬 편하다고 생각하는 이 시대의 이야기다. 신춘문예 응모자들은 점점 줄어드는 데 비해 모델이나 텔런트나 영화배우 모집에는 구름처럼 지망생이 모여드는 시대에 대한 이야기다. 읽고 생각하고 깨닫는 것보다 보고 보여주고 보이는 것을 지나치게 믿는 현실에 대한 우려다. 모델이나 텔렌트나 배우 또한 전문직이므로 그 직업을 얻기 위해 모이는 사람들을 탓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렇게 구름같이 모이는 지망생들이 그 직업의 작업과정에서 빚어지는 어려움과 고통의 그늘을 이해하고 있을까란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한결같이 보여지는 것이 직업인 그 화려함 이면에 숨은 어려움을 짐작은 하고 있는 것일까? 이제 연말을 지나 새해가 되었다. 새해의 신문을 장식하던 신춘문예 지망생들이 줄어드는 것은 그만큼 문예창작의 어려움을 헤아리는 지혜롭고(?) 영악한 사람들이 많다는 상징이리라. 쓰고 읽는 것보다 보고 보여지는 것에 몰리는 이런 영상의 시대에 다시 월간 문예지를 발간한다. 문예지는 책이다. 책은 종이 위에 활자가 인쇄되어 나온 것을 사람이 그 내용을 파악하며 읽는 것이다. 한마디로 책은 다른 모든 영상매체보다 전달되는 과정이 복잡한 미디어다.

 이제 다시 "꿈과 시"를 확대 개편하여 종합문예지 '문예2000'으로 펴내면서 지금과 같이 화려한 빛만을 좇는 시대에 그늘의 의미와 삶의 깊이와 슬픔을 보여주는 책을 만들려고 한다. 상업성이 없는 문예지 간행으로 또 어떤 우여곡절이 생길는지 알 수 없으나 그것 자체가 또 다른 창작의 희로 일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작가 중에는 타르코프스키나 키에르 슬롭스키나 짐 자무시나 레오 까락스나 빔 벤더스나 제인 캠피온과 같은 이들이 있다. 이들은 영상이 보여주는 빛의 메카니즘이면서 숨은 그늘의 깊이를 표현할 줄 아는 작가들이다. 이들의 영상 언어 행간에는 시(詩)가 있다. 그러나 많은 영상 물에는 빛의 허수아비들이 있다. 그 실재치 않는 허수아비를 추종하는 이 시대의 군상들에게 '문예2000'은 24분의 1초만큼 짧은 그늘의 깊이를 보여주었으면 한다. 너무 현학적인 얘기가 되었으나 라디오 시대보다 훨씬 더 빈곤한 상상력과 사유 부재의 시대에 이런 생각의 객기를 부려보는 것이다. 

 영화(映畵)는 1초에는 24프레임의 필름이 일정하게 화면에 투영되는 직업이다. 영화 속의 인물과 사물은 쉴새없이 움직이는 듯 보이지만 그것은 수많은 사진들이 끊임없이 연결됨으로써 우리 눈이 빛어내는 착각인 것이다. 영화는 1초에 스물 네 번의 어둠과 스물 네 번의 빛이 빠르게 지나가면서 수많은 멈춤들이 서로 연결된 움직임으로 변모하는 빛의 마술이며 실제로 존재치 않는 가상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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