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도시속에서
도시에는비가내립니다
정오입니다
철로가소리없이비에젖습니다
들어오는열차도나가는열차도없습니다
비가내립니다
시내버스도그많던택시도보이지않습니다
아스팔트넓은도로에
사람들이띄엄띄엄부호처럼걸어다닙니다
따르륵따르륵전화다이얼이저혼자살아서
시내에서시내로걸려갑니다
비가내립니다
도시는거대한전염병동
시뻘건웃음소리가검게탄건물의벽에서
거미줄처럼나직이새어나옵니다
비가내립니다
이것은 꿈입니다
전라도의 오월 하늘입니다
마약처럼 우울합니다
어디선가 아스라이
울음 소리 떼지어 들려옵니다
한 사람의 눈물이 칼에 찔리고
두 사람의 눈물이 구둣발에 뭉개지고
열 사람, 백사람의 눈물이
박살난 채 내던져지는
이것은 꿈입니다
벙어리들이 울고 있습니다
멍든 심장에 쇳덩이를 무겁게 매달고
수천 수만의 벙어리들이 모여
한 덩어리로 울고 있습니다
벗기어진 알몸인 채
두 손이 묶여 있습니다
어디론가 아스라이
강철의 불길 속으로 끄을려가는
피투성이 울음 소리, 울음 소리
아닙니다
이것은 꿈입니다
밤이면 밤마다 꽁무니에 불을 단
총알이 날고
유리창 밖에 죽음이 서성이는
오월의 전라도 광주
아카시아 향기가 저주처럼 풍기는
철길엔 열차가 끊어지고
시외 전화도 끊겼습니다 아아, 형님
보고 싶은 누님
여기는 지도에 없는 섬입니다
허공에 떠 있는 섬입니다
내려갈 길은 보이지 않고 올라오는 길도
지워져 버린
오월은 아직 이승의 계절입니까
말 못하는 벙어리들 피 묻은 울음 소리를
당신들은 들을 수가 없습니다
별보다 먼 나라에
그리운 당신들의 안부가 있습니다
까마득한 하늘에서는 알 수 없는 삐라가
칼춤 추며 까물까물 내려오는데
쇠사슬에 묶인 칼레의 시민들은
오늘 다시 이 땅에 청동의 발걸음을 내어딛는데
햇볕만이 침묵으로 타는 학교 둘레
돌담에 기대어
장미는 핏방울로 툭툭 피어나도 좋습니까
아닙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이것은 꿈입니다 아득한
석기 시대 야만의 꿈입니다.
카인의 새벽
새벽이었다.
헬로콥터의 프로펠러 소리
전차의 캐터필러 소리
소리에 소리가 섞이며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투항하라, 투항할, 투항할,
눈이 시린 하늘 하느님보다 높이 뜬
군용 비행기에서
아카시아 꽃잎 같은 전단이 떨어져내려
피레네의 성을 빠져나간 이웃은
이 새벽 저 소리를 들었을까.
쥐새끼처럼 처참하게
옆구리에서 창자가 삐져나와 죽어버린
젊은이의 얼굴은
온통 페인트로 회칠돼 있었다고
말해 주던 친구도
그 새벽에 울고 있었던 것을
라디오에선 ‘콰이강의 행진’도 경쾌한
오월의 새벽.
밤이면 밤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아흐레 동안을
우리가 기다린 것은
빈 주먹이나 불끈 쥐어 보는 아 허망한
한 줌의 비겁,
소리없는 눈물이었던가.
이윽고 문 밖 어디쯤에서
피보다 검붉은 총성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담벼락에
붉고도 붉게 장미꽃이 피어난 것을
며칠이 지난 뒤
살아 남은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무심히 지나쳐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