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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 우리시인 - 신경림 (문예2000 - 2000년 10월호) - 한국시문화회관 - 문예도서관 - 작가와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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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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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예술에 대한 지식, 정보, 중요한 자료들을 편집자들이 집필해 놓은 공간입니다.

 시인, 세상으로 열린 길의 얼굴.

 - 2000년 8월의 기록[문예2000 / 2000년 10월호 수록] 

 우리시대 우리시인[신경림시인]

 한 시간 남짓. 내가 신경림 선생님을 만나 이런 저런 말씀을 들을 수 있었던 시간은 그랬다
 날이 밝기 전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십 수년을 무섭게 달려온 주말의 동숭동을 화려하게 제압하고, 믿을 수 없는 고요 속에서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다. 마음이 급했다. 어렵게 시간을 내주신 만큼 미리 약속장소에 나가 선생님을 뵙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약속으로 한 보헤미안에 첫발을 들인 순간, 나의 계획한 일들이 머릿 속에서 저희끼리 엉키는 것이 보였다. 크림빛 벽을 등지고 물잔을 이미 받으시고 분명 오갔을 수인사의 소요가 이미 차분히 가라앉은 정경. 그러니까 선생님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저렇게 앉으셔서 기다리신 것이다.
 “걱정하지 말어. 내가 일찍 온 거니까. 정릉에서 삼십 분에 차를 탔 는데 벌써 도착한거야. 자네가 늦은 것이 아니라구.”
그러시곤 녹음기, 카메라, 필기도구 등속이 두서없이 꺼내지는 양을 천천히 지켜보시며 말씀하셨다.
 “많이 말하면 뭘해”
 
 선생님의 등단시 ‘갈대’를 처음 알게 된 때가 초등학교 삼사학년 쯤이다. 박살이 난 거울유리를 바꿔 끼우려 찾아간 읍의 커다란 유리가게에서였는데, 친절하게도 주인은 우리 거울 틀에 새 유리 대신 며칠 전 읍을 떠난, 시인의 이름도 시의 출처도 적혀있지 않은 시 ‘갈대’가 붓으로 쓰여진 이발소 아저씨네 거울을 알맞게 잘라 끼워 주었다. 물론 돈을 좀 빼주었고 그 돈을 어디엔지 요긴?하게 쓴 기억이 있다. 그렇게 해서 우리집에 ‘갈대’가 들어오게 되었다. 
 “그땐 ‘갈대’가 어떤 시인줄도 몰랐어요. 어린이 잡지에서 동시나 몇 편 읽어봤으니까요 그런데 어린 나이에 생각해도 읽고 나면 왠지 모 를 슬픔이 남아있었어요. 마음을 움직이는 ‘어떤 말’이었다고 할까요”
 이런 말씀을 들으시곤 선생님은 빙그레 웃으시며
 “그래, 그땐 그러기도 했지. 꼭 내 시를 말하는 건 아니지만 사람들 이 알았던 옛날 시들은 가끔 그렇게 되기도 했지. 그렇게 흘러 다니 는 명시들이 꽤 되었어 예이츠나 뭐.”
 라고 하셨다. 자연스럽게 상업주의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서점에 나가면 그런 책들 베스트셀러라고 하는데, 사람들이 그런 시를 ‘시’의 전부인 줄 알고 읽고나선 소양을 쌓은 것인양 하는 것은 위험하지. 그건 큰 일이지”
하신다. 
 선생님의 요즘 일을 여쭙자
 “나는 요즘 세 가지 일을 해. 하나는 동국대학교 석좌교수 일이고 두 번째는 인터넷 문학대학. 인터넷에서 시 뿐만이 아니라 다른 장르 의 창작과 이론을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되지. 물론 일은 젊은 사람들 이 다 해. 나는 관여하는거야. 과제를 내걸고 한 일 주일 후 쯤에 점 검을 하게 되는 것 같은 데, 자세한 건 잘 모르겠어.”
 “인터넷에는 아주 많은 문학 동호회와 속칭, 인터넷 시인이 있어요. 저도 가끔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는데 순식간에 희비가 오가요. 많은 사람들이 시를 읽고 쓰며 위로받는다고 생각하면 다행이다 싶고, 이 러다 시를 크게 오해하는 건 아닐까 걱정도 되구요”
 “우리가 인터넷에서 문학을 강의하려는 의도는 인터넷 시의 문제점 들. 결국 그것을 몰아내려한다는거야”
 “그리구 세 번 째 일은요”
 “그건, 지금 추진 중인데 ‘청소년 통일문화원’을 만들고 운영하는 일 이야. 지난 이월에 내가 금강산에 다녀왔거든. 그 때 배 위에서 통일 에 관해 고등학생들에게 말할 기회가 있었는데, 청소년들이 통일에 대해 잘못된 선입견을 갖고 있더라구. 통일을 하게 되면 우리가 북한 을 먹여 살려야 하는 줄로만 알더라구. . . . . .그래서 청소년통일문화 원을 생각해야겠다 싶었어.”
 “이년 전 쯤에 나온 한 인터뷰기사를 보니까, 정주영 씨의 소떼 방 문을 보시고 ‘정주영씨가 잘생긴 소와 더불어 북에 가는 풍경이 참 좋았다’고 하셨어요. 그 소들을 장정에 비하듯이 ‘잘 생겼다’고 하신 표현만으로도 충분한 희망의 말이 되었었지요. 엊그제의 ‘8.15남북이 산가족상봉’은 보셨는지요. 선생님께 혹 이산가족이 있으신지요. ”
 “먼 친척 몇 분이 납북이 되셨지만 나는 직접적인 이산가족은 없는 셈이지.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안보려구 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봤지. 근데 눈물이 안날 수가 없더라구. 우리나라 사람들 참 한 많은 사람들이야. 어떻게 민족을 저 꼴을 만들어 놨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구. 그게 다 정치자들의 과오지. 남북이 똑 같이 잘못한 거야”
 “아들을 기다리다 말문이 막힌 아흔 다섯의 할머니가 다 늙은 아들 을 만나 말문이 트였을 때는 울지 말아야지, 마음을 다잡아 먹었어도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어요.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리구 하시더라구 요”
 “아, 그랬어? 아들은 칠 십이 넘었겠네”
 그 때, 휴대폰이 울렸다. 선생님은 근처에서 약속이 있다고 하셨다. 창 밖을 보니 빗줄기는 어느 새 가늘어지고 비가 시작되는 하늘의 끝쯤이 환해지고 있었다. 
 
 “선생님, 작업은 컴퓨터로 하시죠? 그리구 요즘 편지는 쓰세요?”
 “물론 컴퓨터로 하지. 편집이랑 그런 건 말구. 그리구 편지는(이 대 목에서 난감함을 감추지 못하시며) 컴퓨터를 쓰다보니 글씨 쓰는 것 이 어려워. 힘도 들고. 글씨 쓰는 고통이라는게 있잖어. 왜 시를 쓸 때 종이는 사람의 생각을 풀어주지. 그런데 컴퓨터로 쓰면 인쇄된 글 씨의 시각적인 효과가 있잖아. 그게 참 괜찮은 것 같어. 그런데 이 컴 퓨터라는 게 졸속으로 끝나는 단점도 있어. 그걸 알고 조절하면 시의 발전에 해롭지만은 않은 것 같어.”
 “컴퓨터가 빠지지 않네요. 선생님의 이름으로 도서검색을 하다보니 어린이 대상의 책이 꽤 되었어요. 몇 권은 제 아이도 갖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옛날이야기를 무척 좋아해요. 서문에 속하는 ‘어린이들에게’ 를 읽어보니 책이 나오게 된 취지(영상매체에 익숙한 어린이들이 친 숙하게 접할 수 있는 한국적인 그림과, 전국에 흩어져 구전해오는 이 야기나 삼국유사 삼국사기에 실려 있는 유익한 이야기들을 정확한 문 장으로 가려 실었다) 가 나와 있었습니다. 혹 다른 뜻도 있으시면 말 씀해 주세요.”
 “응, 그거? 한길사에서 우리겨레의 옛날이야기 열 권인가? 나는 몇 편만 쓰고 다른 작가들이 썼지. 내가 ‘엮은’ 거야. 왜 우리 옛날이야기 재미있잖아. 나한테 여섯 살 짜리 손주가 있는데, 그녀석 이 책 저책 뒹굴며 읽다가도 결국 몇 번씩 재미나게 읽는 것을 보면, 다 우리 옛 날이야기야. 그리구 창.비아동문고에서 우리 전래 동요집 냈고. (웃으 시며)그거 잘 나가. 내가 70년대 후반부터 민요에 인연을 좀 맺었잖 어. 그런데 이 민요라는게 형식이 꽉 짜이고 오래 전에 만들어진 거라, 자유시를 쓰는데 틀이 되는 거야. 형식에 얽매이다 보니 시가 안돼. 그래, 민요의 정서나 핵이 되는 것은 섭취하되 틀에서는 벗어나 야겠다고 생각했지. 이건 민요에 대한 내 생각이구”
 “선생님의 초기시를 읽다보니 다른 감각이미지에 비해 후각적인 것은 드문 것 같아요. 막걸리를 마시는 이야기여도 쿰쿰한 막걸릿내보다는 막걸리를 마시는 사람들의 정경이나 그들이 내치는 소리가 먼저 들려 오니 말예요. 그나마 후각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시어는 ‘비린내’, ‘피비린내’, ‘역한 탁주 냄새’, ‘메주 뜨는 냄새’, ‘내 고향 시골 냄새’ 들 이었습니다.”
 “(웃으시며) 아, 그랬어? 나는 그건 한 번도 신경 쓰질 않았는데, 왜 시골 냄새 있잖아. 두엄이 썩는 냄새(-구수하죠) 고추장독 뒤쯤 쥐새 끼가 죽었는지 풍겨오는 매캐한 냄새. 그런 것들이 늘 있었는데 그게 시에는 잘 나타나지 않았었나? 비린내나 피비린내 메주 뜨는 냄새는 가족사와 무관하지 않지 그럼 ”

 아편을 사러 밤길을 걷는다
 진눈깨비치는 백리 산길
 낮이면 주막 뒷방에 숨어 잠을 자다
 지치면 아낙을 불러 육백을 친다
 억울하고 어리석게 죽은
 빛바랜 주인의 사진 아래서
 음탕한 농짓거리로 아낙을 웃기면
 바람은 뒷산 나뭇가지에 와 엉겨
 굶어죽은 소년의 원귀처럼 우는데
 - <눈길> 부분

 “그 때, 등단 후 낙향하신 십 년 간의 공백기에 대해서 여쭙고 싶습 니다. 김관식 시인이 아니었다면 선생님의 재기는 훨씬 늦어질 수 있 었겠지요?”
 “(무릎을 치시며) 아, 김관식이 아니었다면, 그럴 수도 있었지. 더 늘어질 수도 있었지. 일부러 시골서 시를 버릴 생각을 한 건 아니야. 사람한테 오기라는 게 있단 말이지. 그땐 남의 시를 읽지도 않았고 서점 앞을 지나가질 않았어. 그래서 술을 마시지 않고는 견디질 못했 고 매일매일 술을 마셨어. 굉장히 괴로웠지. 나는 죽은 놈이나 마찬가 지다. 했지. 그런데 시를 쓰고자 하는 사람은 언젠가는 쓰게 되더라 구. 그 때 쓴 시가 ‘눈길’ 과 ‘그날’이야. 어떤 사람 보니까 십 년 동안 돈 잘 벌고 잘 살다가 다 때려치우더라구. 식구들이 왜 그러냐구 물 었더니 시를 써야한다는 거야. 모두 미쳤구나 했는데 그 사람은 시만 쓰더라구. ”
 “혹 주변에 그런 사람이. . . . ”
 “있지. 처음부터 그런 줄은 몰랐는데 알고보니 그랬더라구. 요즘은 문단에 늦게 나오는 사람이 많아. 이 ‘말’이라는 게 ‘경험’이라구. 이게 쌓이니까 ‘삶’이고, 삶의 체험이 쌓이니까 ‘짙은 한의 시’가 나오는 거야. 그것이 진짜 감동을 줄 수 있는 시가 되지. 그렇게 본다면 체험 이 쌓인 연후에 시를 쓰는 것도 좋겠다 싶어. 돈 벌고 나서 시 쓴다 고 해놓고 돈만 벌고 시는 못 쓰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면 말야.”
 “하지만 시간은 체험으로 쌓일 수 있지만 소모되는 게 더 많지 않을 까요”
 “그럴 수도 있지. 문학이라는 것. 안정적인 것에서 나오는 게 아닌 것 같어”
 “불역된 시선집에 대해서 자세한 말씀 듣고 싶습니다”
 “갈리마르에서 ‘95 년에 출판되었지. 번역자가 내 작품 중에서 번역 하기 용이한 걸 골랐어. 나야 불어를 모르니 얼마나 번역이 잘 되었 는지 알 수는 없지만 사람들이 잘 되었대. 벌써 재판도 찍었구. 그런 데 갈리마르에서 관계자들이 그러대. 불역된 내 시의 모습이 프랑스 본토의 시와 비슷하다고 말야. 그럴 바에야 누가 내 시집을 읽겠느냐 구. 차라리 자기들 시를 읽지. 안 그렇겠어? 왜 한국시를 읽겠느냐고. 국수주의에 경도 되지 않는다면 좀 더 한국적인 것이 좋았지 않았을 까 하고. 그런데 영역을 하고 불역을 해서 우리문학의 진수를 얼마나 보여 줄 수 있겠어. 사투리며 다양한 말맛들. 그렇게 본다면 이문구 소설 같은 것은 아예 번역할 수조차 없지 않겠어? 우리말과 외국어 모두 능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지”
 “선생님 시에서 사투리는 많지 않지요?”
 “내 시? 나는 충주 사람이야. 거기는 사투리 별로 안 써. 의도적이라 기보다 시에 사투리가 많은 편은 아니지. 정서적으로 토속성이 느껴 지는 것이라면 몰라두. 나는 문학작품에서 사투리가 쓰이는 것을 좋 아하는 사람이야.”
 “대학에 입학한 후 시를 공부해야겠다 싶었을 때, 선생님의 시집을 가방 옆구리에 넣고 다니며 ‘파장’이며 ‘산읍일지’ 들을 흉내낸 기억이 납니다. 시가 가져야할 보편적진리의 모습을 거기에서 본 것이 아니 었을까 싶어요” 
 
 공중에 전파의 문패를 달고서, 마치 세상의 전부를 차지하기라도 한 것처럼 희희낙락하는 기괴한 이 시대의 경박스러움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90년대로 들어서면서 감회가 남다르셨을 것 같아요. 우리의 미래는 찬란하며 환희에 차있는 줄만 알았는데 실은 우울했구요. 시가 살아갈 길도 전과 같지 않았습니다. 그때를 되돌려 생각하신다면 무엇이 가장 기억에 남는지요”
 “시가 옛날 같을 순 없겠지. 사람 사는 일에 도움이 되는 건 분명하 지만 방법이란게 똑 같을 순 없지. 7,80년대는 사회주의가 희망이었는 데 90년대 들어 일정한 수준의 민주주의가 성취되었잖아. 보다 나은 세상만들기는 권력과 주변과의 싸움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세상과의 포용이며 상호 타협해야 한다고 생각해. 솔직히 7,80년대 사회주의에 대한 환상을 갖지 않았다고 볼 수는 없지. 그게 깨졌으니 우리는 절 망할 수밖에 없었지. 나는 개인적으로 그사람의 전기문을 여러 차례 읽었을 정도로 차오세스쿠를 좋아했거든. 그사람말야 전국의 민요와 민화를 집대성하고 국학을 일으켰거든.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아주 부도덕하고 색꾼이고 오직 자기자신의 영화만을 위해 그랬던 거야. ( 차오세스쿠; 루마니아의 독재자. 관제데모중 그의 비리를 안 민중들의 갑작스런 반정부데모로 인해 도망하던 중 절대권력이 미치지 못한다 고 생각한 한 지방도시에서 같은 이유로 즉결처형 당함.) 
 사회주의의 희망은 사람을 교육시킬 수 있다는 것인데 사람은 교육 시키지도 않고 자기자신조차 교육되어지지 않았으니 몰락이 온거지. 결국 자기자신을 교육시키지 못한 결과지. 진보주의자들의 사기꾼기 질이랄까? 왜 우리한테도 얼마전 그런 일 있었잖아. 신망 받던 한 시 민운동가가 제자를 성추행한 사건말야. 나 자신의 반성이지 뭐.“
 
 최근 깜짝 놀랄만한 시를 본 적이 있으시냐고 여쭈었더니 말씀하신다.
 “나이 탓도 없지는 않을 것이지만 못 본 것 같어. 내가 백석의 ‘남신 의주 유동 박시봉방’을 읽을 때와는 세월도 눈도 많이 바뀌었지. 좋은 시는 자연스러워. 생태시니 통일시니 억지로 만들면 부자연스러워. 사 실 내 시를 농민시라고 하는 것도 그래. 내 시가 농민시는 아니거든. 그건 비유적인 것이지. 내가 보기에 요즘 시들은 억지로 만든 거라서 감동이 적어. 튈려고 시의 균형을 깬단 말이지. 이것도 컴퓨터 탓인 것 같아. 온갖 장난을 다 할 수 있으니까. 요즘 젊은 시인들 두 번째 시집이 처음 같지 않은 게, 글을 쓰다가 뭐가 있나 컴퓨터를 뒤적거 려 보면 저장되어 있는 졸작들을 본단 말이지. 그것까지 묶어서 그러 는 거야. 시인이라면 쓸 줄 아는 것 뿐만이 아니라 볼 줄도 알아야지. 그런게 극복되지 않는다면 이 컴퓨터는 유해로운 기기가 될거야. 나는 더 좋은 에네르기가 활력으로 살지 못하고 버려지는게 안타까워. 언젠가 소잡는데 가봤더니 논 한가운데에 뿔을 버렸더라구. 고기는 고기대로 가죽은 가죽대로 제 갈길을 가는데 세상을 위해서 버려지는 것 중에 뿔이 있더라구. ”

 사진을 찍는다는 핑계로 자리에서 일어서시는 선생님을 따라 밖으로 나섰다. 아침내내 울창히 비를 쏟던 하늘은 어느새 말짱하게 개어있었다. 워킹머신 위의 사람들처럼 고요한 한 무리의 인파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신 선생님은 곧바로 그 인파 속으로 멀어지셨다. 세상에 뿔은 어디 있는지, 있다면 제대로 있는지, 그것이 제노릇은 하는지 생각에 빠진 잠깐 사이, 신호등 건너 로터리에 걸린 현수막에 선생님의 푸른 셔츠가 가려졌다 이윽고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뒷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시인의 품을 나와 다투어 시인을 따라 인파 속으로 들어가는 속깊고 따듯한 ‘말의 집’들을 보았다. 쉽지 않은 시의 길을 보았다.

 길은 순순이 사람들의 뜻을 좇지는 않는다.
 사람을 끌고 가다가 문득
 벼랑 앞에 세워 낭패시키는가 하면 
 큰 물에 우정 제 허리를 동강내어
 사람이 부득이 저를 만들게도 한다
 사람들은 이것이 다 사람이 만든 길이
 거꾸로 사람들한테 세상 사는 
 슬기를 가르치는 거라고 말한다 
 
 
 -<길>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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