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가 전상국 약전(略傳)
1940년 3월 24일(양)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에서 태어나다. 아버지 김석주와 어머니 박춘봉 사이에서 장남이었으며 8세까지의 이름은 일랑이었다. 일곱 살 되던 해 홍천읍으로 이사하면서 자동차를 처음 보았다. 홍천경찰서 앞에 살았기 때문에 그곳에 잡혀오는 많은 죄인을 볼 수 있었는데 그 중 빨갱이라고 하는 죄인들에 대한 첫 인식이 몹시 충격적이었다.
1950년 6.25 사변이 일어나 향리인 물걸리로 들어가 그 여름과 가을을 보내는 동안 바뀌는 세상에 따라 달라지는 어른들의 무서운 눈을 확인할 수 있었다. 1.4 후퇴의 그 겨울은 비행기 폭격으로 끊어진 홍천강 다리를 건너 피난민 대열에 끼어듦. 청주피난민수용소에서의 이질앓기, 어느 폐광촌에서의 장질부사로 온 식구가 앓아 누웠던 피난시절의 추억이 <잊고 사는 세월> 등의 연작에 그 분위기가 그려짐. 결국 이때의 마을을 스쳐간 전쟁의 참상이 어린 눈에 아픔으로 인상에 깊이 남게 됨.
1952년 고향에 다시 돌아왔으나 집은 흔적도 없고 그 자리에는 헌병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다시 물걸리에 들어가 국민학교를 다님. 겨울난리를 현장에서 치뤄낸 마을 아이들의 그 풍성한 전쟁 견문에 기가 죽어 그 열등감으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해 전쟁놀이에 열중함.
1954년 홍천읍에 나와 55년에 중학교에 입학하다. 이때부터 교과서 외의 책을 처음으로 읽기 시작함. <홍길동전>을 비롯하여 이광수의 역사소설과 루팡 시리즈며 코난 도일의 탐정소설류와 톨스토이, 도스트예프스키의 소설에 심취함.
1957년 사범학교 진학을 원하는 부모의 뜻을 어기고 춘천고등학교에 진학하여 1학년때 담임인 시인 이희철 선생의 영향을 받으며 문학에 관심을 기울임. 시인 이승훈과 함께 어울려 공부함. 1958-59년 ‘봉의문학회’ ‘예막문학회’ 등의 동인활동을 하면서 양동이에 막소주를 받아 놓고 풀빵을 안주로 폭음하는 일들을 자랑삼는 다소의 문학적 치기로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난생처음 쓴 60장의 소설 <산에 오른 아이>가 제6회 ‘학원문학상’ 3위에 입상하고 다시 <황혼기>가 《강원일보》 신춘학생문예에 당선없는 가작으로 입선하면서 작가가 되겠다는 뜻을 굳혔다.
1960년 황순원 선생이 계시다는 그 한 가지 이유로 경희대학교 국문과에 무시험 입학. 황순원 선생과 첫대면 함. 그해에 4.19를 겪음. 이성부 등과 석관동에서 자취를 하며 대학생활을 보냄. 경희대학의 제6회, 제7회 문화상을 타 학비를 면제 받음.
196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同行>이 당선됨.
1964년 대학을 졸업하면서 쓴다는 일에 회의를 느껴 곧장 귀향하여 약 9개월 동안 정치 지향적이며 사회운동가인 어떤 사람을 만나 재건국민운동 등에 헌신적으로 일함. 연말에 원주에 있는 사립 육민관고등학교에 채용되면서 교사생활을 시작. 67년 춘천에서 김옥자와 결혼, 이듬해 첫딸을 70년에는 아들을 얻다. 춘천에 옮겨 앉아 교사생활을 하는 7년여를 합쳐 등단 이후 10년간 단 한 편의 작품도 쓰지 못하는 소설쟁이로서는 이른바 ‘소비의 세월’을 보냄.
1972년 은사 조병화 선생의 부름으로 느닷없이 상경, 경희고등학교로 직장을 옮김. 그러나 지방과 서울의 교육현장의 생태가 너무 크게 차이가 나는 등 생활환경 적응이 안 돼 심한 소화불량과 편두통으로 고생하면서 귀향만을 생각하던 중, 작가 조선작 씨와 우연히 한 집에 살게 되는 묘한 인연으로 그의 문학에 대한 집념을 통해 문학을 다시 엿보게 됨.
1974년 재기의 첫작품 <전야>를 쓰게 되고, 그것을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발표. <육아일기>로 춘천의 ‘예맥’ 동인활동에 참가. 75년 한국문인협회에 가입. 단편 <할아버지 묻힌 날> <소인의 나들이> <돼지새끼들의 울음> 발표.
1977년 <사형>과 <껍데기 벗기>로 제22회 현대문학상 수상. 첫창작집 《바람난 마을》 간행.
1979년 <아베의 가족>으로 제6회 한국문학작가상과 대한민국문학상 수상. 두 번째 소설집 《하늘 아래 그 자리》 간행. 중편 3편 단편 9편을 한해에 발표하면서 방학 때만 쓴다고 해서 붙여진 ‘방학작가’에서 이러한 왕성한 작품활동으로 인해 소위 ‘주말작가’로 부상.
1980년 <우리들의 날개>로 제14회 동인문학상 수상. 단편 <우상의 눈물> 첫 장편소설 《늪에서는 바람이》 네번째 소설집 《외등》간행. 단편 <이것은 기분문제가 아니다> <달평씨의 두 번째 죽음> 중편 <여름의 껍질> 발표.
1981년 다섯번째 소설집 《우리들의 날개》 간행. 중편 <외딴길> 발표. 문학과는 거리가 먼 엉뚱한 일로 약 2년간의 방황이 시작됨.
1982년 장편소설 <불타는 산>을 《경향신문》에 연재. 경희대학교 대학원 국문과에 입학. 83년 전업작가를 꿈꾸면서 그 방편으로 중화동 286의 7로 집을 옮김. 85년 강원대학교 국문과 조교수로 발령. 서울 탈출의 꿈이 귀향으로 이루어짐. 단편 <악의 사슬> 장편 《길》 간행.
1988년 <투석>으로 윤동주문학상 수상.
1990년 <사이코시대>로 김유정문학상 수상.
1996년 <사이코>로 한국문학상 수상.
2000년 국립 강원대학교 국문과 교수 재직. 수필집 《우리가 보는 마지막 풍경》 간행. 한국문인협회 강원도지회 회장에 선출.
작품집으로 《한국문학대전집3,4 -전상국》 《바람난 마을》 《하늘 아래 그 자리》 《아베의 가족》 《외등》 《우상의 눈물》 《우리들의 날개》 《형벌의 집》 《지빠귀 둥지 속의 뻐꾸기》 《투석》 《애비》 《사이코》 등이 있다.
2. 인터뷰 [문예2000 / 이천년 12월호]
인터뷰: 강대석(본지 기자)
정 리: 함소연(본지 기자)
기자: “대학에서 학생들도 가르치시고 바쁘실텐데 이렇게 귀한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선생님의 근황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전상국: “시간을 좀 내어서 글을 쓸 생각으로 지난학기와 이번학기에 걸쳐 수업이 없는 ‘연구년제’를 갖고 있어요. 중편을 하나 준비하고 있는데 아마 내년 봄쯤에 나오게 될 겁니다. 그러면서 몇 년 전부터 계속해오던 농사짓는 일을 하고 있지요. 땅을 일구어 씨를 뿌리고 그 정직한 결실들을 거두어 들이는 일이 무척 재미가 있어요. 땅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넉넉한 자연에 묻혀 보내는 시간은 나에게 의미있는 일이지요.”
기자: “옛날 이야기를 좀 듣고 싶습니다. 등단작 ‘同行’ 이후 만10년간 작품활동을 중단하셨는데요,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신지요? 그리고 그 10년의 의미가 선생님께는 클것 같습니다.”
전상국: “63년부터 73년까지 꼬박 10년 동안 문학을 떠나 있었어요. 그때는 문학작품을 읽지도 쓰지도 않았지요. 문학적인 면에서는 말하자면 ‘소비의 시간’이었고 그러면서 고등학교 선생으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모든 걸 쏟아부으며 지나간 시간이었죠. 아마도 당시 나에게 문학적인 분위기랄까, 아니면 작품을 발표할 기회가 없었다는게 작품활동을 쉬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랄 수 있고 또 조금은 의식적으로 문학을 피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결국 문학을 버릴 수는 없었지요. 겁없이 시작한 ‘소설쓰기의 의미와 가치두기를 새롭게 터득하는데 걸린 시간’이 그때의 10년이 아니었나 지금에와서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아울러 내 삶에 있어서 문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이렇게 크구나하는 것을 확인하는 10년이었던 것 같아요. 그 후 이제는 가르치는 일과 쓰는 일이 적절히 균형이 잡혀 있지요.”
기자: “선생님의 작품을 이루는 두 축이라면 아마도 ‘분단과 고향’을 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선생님하시면 또 고향인 강원도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에게 있어 ‘강원도’라는 공간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요?”
전상국: “내게 있어 고향은 공간적 개념과 함께 그 이상의 것이기도 합니다. 공간적으로는 고향의 산천을 이루고 있는 자연의 요소들이겠지만 또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내속에도 고스란히 녹아있지요. 그런데 고향을 떠나 있는 사람만이 실향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나는 공부하느라 잠깐 서울에 있었을 뿐, 대부분 고향에서 지내왔는데도 나는 가끔 내가 고향을 떠나와 있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고향이라는 것이 주는 어떤 본질적인 면, 즉 순수함이라든지 아니면 어떤 원형적인 것으로부터 내가 일탈해 있다는 느낌이 들때지요. 따라서 나를 확인하고 인식하는 중요한 의미와 기준이 바로 나에게 있어서 고향이라고 생각됩니다. 때문에 내 작품의 여러곳에서 그러한 ‘귀향, 혹은 귀소의지’가 자주 드러나는데, ‘동행’에서도 고향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고향에서 죽는다는 이야기의 구조를 가지고 있지요. 죽음도 결국은 화해의 의미를 가진다고 볼 때, 고향은 바로 모든 것이 화해하는 그러한 공간인 것이지요. 이것은 ‘동행’의 중요한 모티브이기도 합니다. 결국 고향은 내 자신을 스스로 인식하는 중요한 터면서 동시에 현실인식과 역사인식의 중요한 잣대 역할을 해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지요.”
기자: “고향이야기가 나오니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께서는 오래전부터 김유정 기념사업을 하고 계신데요, 선생님의 고향에 대한 그러한 남다른 인식과 무관한지 않은 듯합니다. 선생님과 김유정의 작품세계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 같은데요 두 작가의 문학적 접점이랄까요, 어떤게 있을런지요.”
전상국: “김유정은 나와 같은 동향의 작가라는 것 외에도 작품의 根底에 문체와 어휘면에서 상당한 유사점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어요. 그것은 강원도라는 공통의 요소를 서로 나누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도 볼 수 있는데, 거칠고 생동감 있는 산악지역 특유의 정서가 작품속에서도 생동감 있는 문장의 호흡으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김유정의 문학에 대한 열정과 신명, 그리고 정직한 글쓰기에 나는 애착이 갔지요. 특히 ‘만무방’, ‘땡볕’, ‘산골 나그네’와 같은 그의 일련의 작품들은 60년이 지난 오늘에도 그 가치를 하나도 잃지 않고 있으며 지금와서도 독자들에게 읽힐 수 있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이는 바로 그의 작품에 흐르는 생동하는 문체의 힘과 개성있는 인물의 창조능력 때문이 아닌가 여겨짐니다. 이것은 모든 것을 문학에 쏟아부었던 김유정의 문학에 대한 열정과 정직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기자: “선생님께서는 분단과 6.25의 상흔을 작품을 통해 줄곧 치열하게 다루어왔습니다. ‘동행’의 최억구, ‘고려장’에서의 현세의 모친, 그리고 ‘아베의 가족’에서의 김진호의 모친이 그러한 인물일 텐데요, 이들의 심각한 ‘정신적 외상’은 결국 그 자신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싼 가족과 사회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작품들은 선생님의 유년의 체험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듯 합니다. 여기에 대해 말씀해 주시고, 아울러 기왕에 이와 관련해서 최근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통일 논의에 대해서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전상국: “분단 상황과 관련된 소설을 많이 써왔지요. 결국 그런 작품을 쓰게 된 가장 큰 동기도 지적하신 바와 같이 유년시절에 각인된 기억때문인 듯합니다. 특히 각인된 기억이라는 것은 그 상상이 실꼬리 풀리 듯 끊임없이 나오는 것이지요. 유년시절에 전쟁을 겪었다는것은 어쩌면 작가인 나에게는 매우 중요한 체험인 것이 사실입니다. 아이의 눈으로 전쟁상황에서의 어른들을 볼 때, 그들의 눈에서 느껴지는 강한 살기와 상황의 변화에 대해 보여준 어른들의 어쩔 수 없는 비겁함, 그리고 배고픔에 대한 공포심들이 어떤 악령처럼 내 몸에 강하게 각인된 것 같아요. 그리고 1.4후퇴 때 내가 본 인민군 중에서 소년으로 보이는 이들이 많이 있었는데요 그들에게선 생각과는 달리 어떤 악의라든지 살기 따위들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앳된 모습의 소년들을 보기도 했지요. 소위 ‘빨갱이’에 대한 인식의 혼란이 다소 충격적이었습니다. 동시에 아이들이나 어른들의 입을 통해서 전해지는 전쟁에 대한 참상은 내가 집적 본 것 보다더 더 강렬하게 그 원혼이나 악령들이 내 몸속으로 들어오는 듯한 것을 느끼곤했어요. 그러한 각인이 나로 하여금 전쟁에 관한 소설을 많이 쓰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얘기들은 정말이지 글로 쓰고 싶지 않았지요. 그러나 그럴수록 그것을 쓰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조바심이 자꾸만 들었고 또 그러한 것이 빠지면 뭔가 작품이 완성된 것 같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요. 그러한 이유로 예컨데, 70년대의 시대상황을 그리는 소설을 쓸 때도 인물들의 갈등의 원인은 전쟁이라는 역사적 참상과 닿아 있는 것이라는 현실 인식을 작가로서 갖게 되고 그것을 소설화 해 나갔던 거지요. 그런 한 작가적 관점에서 볼 때 최근 통일에 대한 논의는 일단 긍정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말하자면 ‘아베의 가족’에서 우리가 버렸던 아베가 민족과 국토를 상징한다고 볼 때, 우리가 버린 그 아베를 이제 우리 손으로 다시 찾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찾은 그 아베는 아직도 건강하지 못한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가 찾은 아베가 어떻게 하면 건강하고 온전한 아베의 모습이 될 것인가를 최근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지요.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할 당시 나는 작가로써 어떤 예감같은게 들었었는데 그것은 남북이 오고가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서로 더 멀어지기 위해서 저렇게 오고가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그때와는 상황이 많이 다른 것이 분명하지만 그러나 여전히 많은 의구심을 가지게 됩니다. 즉, 진정한 통일이라는 것은 정치적인 것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닐 뿐더러, 그 정치적인 부분에서도 실상은 정치세력들의 이해관계에 얶매여 대의적 차원에서 통일이 논의되고 있지 못하고 어딘가 포장되고 거짓된 부분이 많은 듯한 의구심을 지우기에는 미흡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기자: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진 ‘우상의 눈물’이나 ‘돼지새끼들의 울음’과 같은 계열의 작품에서 선생님께서는 사회나 세계의 숨겨진 진실이나 선의지의 감추어진 위선을 사회의 축소판인 교실로 옮겨와 부각시키고 계십니다.”
전상국: “‘우상의 눈물’은 현대의 조식사회에서의 善의지에 의한 폭력이랄까, 또는 위선에 대한 조심스런 천착이라 볼 수 있겠죠. ‘우상의 눈물’과 ‘돼지새끼들의 울음’과 같은 작품들은 교단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이는 내가 교사생활을 오래했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곧 어떤 소설의 배경이나 소재는 결코 작가의 삶과 무관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는 이야기죠. 교실이라는 것은 하나의 사회 축소판과도 같은 것이어서 그것은 우리의 사회를 응축해서 보여주는 모범적인 소설적 공간이기도 합니다. 잘 살펴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라는 것은 그것을 앞장서서 이끌어 가는 소위 ‘보여지기에 선한 힘’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보여지는 힘이 잘못 사용되고 때로는 그것이 실상 더 크고 위험한 악(惡)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선(善)한 것으로 가장될 때 느껴지는 작가로서의 분노같은 것을 작품에 담아보고자 한것이지요. 사회라는 것은 결국 선과 악이 이분법적으로 대립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이들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 이끌어져 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과정되고 위장된 善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폭력이 어쩌면 더 크고 무서운 사회의 불신과 증오의 그늘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인 거지요. 그러한 대표적인 예가 바로 청치에서 많이 보이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기자: “그러한 맥락의 연장선상에서 ‘사이코 시대’와 같은 작품은 사회구조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잃어버리고 희화화되는 인간군상이 포착됩니다.“
전상국: “이 사회에서 또 하나 부정적인 것이 ‘소시민 의식’이라 생각됩니다. 즉, 대의를 생각하지 않고 자기의 작은 이해관계에 얶매이는 것이 소위 ‘소시민 의식’이라고 볼 때, 그러한 이해관계는 작은 것에 집착하게 만들어 소시민들끼리의 어떤 무리를 형성하게 됩니다. 거기에 속하지 못하는 계층들은 그래서 살아남기 위해 더 단단해지고 무서워지게 되지요. 따라서 그러한 사회의 부정적인 요소를 어쩌면 소시민들이 스스로 키워 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자: “선생님의 작품세계는 총체적으로 볼 때, 결코 가볍지 않는 세계를 단단히 짊어지고 있는 듯 합니다. 이러한 경향을 두고 예컨데, 김윤식 교수는 이른바 ‘엄숙주의’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는데요, 여기에는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어느 부분에선 부정적인 평가도 덩달아 포함되어 있는 듯 합니다. 이에 대해 선생님께서는 정작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전상국: “그 말이 작가의식이라는 측면과 내가 구축하려 했던 작품세계의 특징과 연관된다면 나는 그것을 긍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요. 왜냐하면, ‘엄숙주의’라는 건 바꾸어 말하면 작가의식이라든가 내가 작품으로 보여주고자 한 것들이 현실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이며 또 이에 대해 결코 가볍지 않게 엄숙하고 심각하게 고민하고 접근했다는 뜻에서 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편 내가 근래에 작품활동을 활발히 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도 솔직히 이러한 관점과 결코 무관하지 않은 것 같아요. 즉, 그동안 내가 가장 중요한 가치로 두고 진지하고 정직하게 천착해 왔던 문제들이 이제 바뀐 시대에서는 그렇게 큰 가치나 문제로 여겨지지 않는 것이 되어버렸지요. 뿐만아니라 내가 그동안 많은 가치를 두어오지 않았던 어떤 가벼운 문제들이 이제는 무거운 것으로 바뀌어 버렸어요. 그런데 그러한 가벼움이 지금 이 시대에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중요한 문제적 상황인 것이 사실입니다. 그것은 또한 문학의 다양성이라는 관점에서 충분히 의미있는 일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나 또한 내가 지켜오던 가치를 일순 버리고, 그러한 시대 조류에 덩달아 편승하고 싶진 않아요. 그것은 그러한 가치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한 작가로써 내가 깊게 천착하려했던 가치 하나 만이라도 제대로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고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며 그것이 내 문학을 말할 때 어떤 ‘엄숙성’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기자: “선생님께서는 어느 책의 자서에서 문학에서의 ‘감동’을 강조하신 걸 본 적이 있습니다. 앞서 말씀하신데로 최근의 젊은 작가들은 작품의 중요한 테마로 감동보다는 오히려 감각적인 면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듯 합니다. 이는 다시 말하면 ‘문학은 결국 당대의 시대상황과 분위기를 일정하게 반영하는 것’이라는 반증이기도 한데요, 그렇다면 우리의 소설이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과 선배작가로써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이 기회에 말씀해 주십시오.”
전상국: “문학을 함에 있어 무거움과 가벼움을 이야기 할 때, 예컨데 소위 ‘가벼운 것’이 흐르는 물이라면 그 물이 저 아래 깊은 곳의 강심(江深)에 닿아 있을 때 그것은 나름의 가치를 충분히 가지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고 물거품같은 것이거나 혹은, 금방 사라질 포말과도 같은 것이라면 이는 큰 문제이지요. 예컨데, 최근 포르노적인 글들이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성행하고 있는데, 이는 엄밀히 따져보면 대부분 일종의 ‘개인의 생각’인 것이 대부분일 뿐 결코 문학이라 할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한 문제는 곧 우리사회의 건강한 성담론을 외곡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는 것이지요. 때문에 그러한 것들은 성담론의 영역에서 받아들이고 논의 되어야 할 것이며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서는 문학과 성담론 양쪽 모두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강심에 닿아 있지 못하는 물거품처럼 날아가 버리고 말 글을 쓰는데에 요즘 젊은 작가들이 많이 빠져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심지어 어떤 작가들은 ‘물거품이면 어떠냐 그냥 감각적인 빛깔만 보여주고 날아가버리면 되는 것이지’ 라는 식의 생각을 하는 이들도 종종 있는데 이는 결코 옳은 것이 아닐 것입니다. 결국은 가벼움도 그 자체의 가벼움이 아니라 우리의 문학적 전통이라는 강심에 닿아 있는 것일 때, 그 또한 오히려 건강하고 쾌활한 문학의 영역으로 들어 올 수 있을 것입니다.”
기자: “문학사상에서 나왔던가요? ‘당신도 소설을 쓸 수 있다’는 많은 작가지망생들에게 좋은 지침서가 되는 굉장한 스터디 셀러입니다. 작가를 지망하는 사람들에게도 아울러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전상국: “창작에 왕도는 없다는 것을 명심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아울러 중요한 것은 기존의 방법론을 깰 수 있는 실험정신이 중요하지요. 그런데 최근의 지망생들은 그러한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것에 관심은 많지만 정작 그것을 하기 위해 축적된 독서가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듯합니다. 수없이 많은 실험을 해왔던 기존의 문학의 층들을 제대로 파악한 후에는 자연스레 진정한 실험이 가능하지만, 그런 독서도 없이 곧바로 문학적 실험을 하려는 분위기가 우려되요. 이는 또 간혹, 의도하지 않은 베끼기를 낳을 우려도 있는 것이지요. 그동안 문학은 수 없이 많은 실험의 전형들을 보여왔다는 점을 명심하고 그러한 전형들을 차분히 축적하는 바탕위에서 그것을 뛰어 넘는 문학적 시도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또 아울러 글을 쓰려고 하는 지망생들을 보면 글쓰기에 대한 어떤 ‘의식의 치열성’이 부족한 것 같아요. 간혹 기대를 갖게 하는 젊은 작가들이 나타나긴 하지만 그들 또한 오래가지 못하고 주저 앉는 경우가 많이 있지요. 이는 결국 그러한 작가정신의 치열성이 부족한 탓이라 생각되요.”
기자: “최근에 수필집도 발표하셨는데요, 끝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좀 말씀해 주십시오. 그리고 농사는 계속 지으실 건지요?”
전상국: “나는 고향의 자연속에서 농사를 짓는 일이 무척 즐거워요. 그래서 그 일은 앞으로도 계속 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것과 작품 쓰는 일에 좀 더 충실하려고 해요. 그런데 사실 누구를 가르친다는 것과 창작한다는 것은 서로 많이 다른게 사실입니다. 그럴 때 나는 그 두 가지의 사잇길이라 할 수 있는 ‘자연바라보기’와 ‘자연읽기’를 꾸준히 계속하고 싶은 거지요. 농사와 산행, 그리고 들꽃찾기 같은 자연속에서의 시간은 나에게 그 두가지 일의 중요한 균형점이며 또한, 새로운 활력을 주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기자: “선생님, 짧지 않은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후기: 전상국 선생님은 약속 시간보다 10분쯤 전에 본지 편집부를 직접 방문해 주셨다. 문학적 깊이를 이미 성취한 선생님이시지만 매우 소탈하고 친근하게 인사를 주고 받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인터뷰가 끝나고 기자가 사진촬영을 부탁드리자 인터뷰중에 있었던 ‘엄숙주의’에 관한 것을 빗대어 “사진도 엄숙한 모습으로 찍어야 되느냐?”라는 농담으로 한때 웃음을 자아내게하는 유머도 보여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