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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명자들 / 제임스 조이스 作 - 한국시문화회관 - 문예도서관 - 문예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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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예술에 대한 지식, 정보, 중요한 자료들을 편집자들이 집필해 놓은 공간입니다.

  『망명자들』/ 제임스 조이스 作
  김민구 

  희곡작품을 읽는 것은 헤롤드 핀터의 부조리극을 즐겨 읽었던 작년 이후로 처음이다. 핀터의 『관리인』이나 『풍경』, 이오네스코의 『의자』등의 작품을 읽다가 다시 시집을 보기 시작하면서 희곡을 향해 타오르던 작은 열망도 저물었는데, 그것이 누구의 작품이든 간에 이번 기회에 희곡작품을 읽게 되니 개인적으로 기쁘다. 명지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있는 책은 의외로 그리 많지 않았다. 『율리 씨이즈』나 『젊은 예술가의 초상』등 걸출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을 검색하자 나타나는 재고가 얼마 없었던 것이다. 그 중에서 나는 『망명자들』이라는 작품을 읽기로 했는데, 그 옆에 놓여있던 작품들 대신 이것을 선택한 이유는 다름 아닌 제목에 있다. 어디로부터의 망명자들일까. 어느 곳을 향해 달려가는 자들이며 그들을 버리고 받아준 곳은 대체 어디일까. 제목에서 나는 문득 작품 속의 이야기가, 한 곳에 중심을 두고 자리를 지키는 종류가 아닌, 내면적으로 무언가 불안한 사람들이 주로 나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망명. 곳곳에 숨어있는 위험요소를 피해서 안전성이 확보된 어딘가로 떠나는 일. 자신을 받아달라고 누군가에게 호소하는 일. 나는 『망명자들』이 제임스 조이스가 쓴 3편의 희곡―그 중 2편은 유실되거나 손상되었다―중 하나라는 말을 듣고 이 작품을 읽는 데에 흥미를 더할 수 있었다. 
  작품은 총 3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1막에서는 베아트리체라는 한 여자가 리처드 로우먼의 집에 찾아온다. 그녀는 리처드의 아들인 아치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선생이자, 로우먼의 옛 친구이면서 서로 마음을 두고 있는 사이다. 그때 로버트라는, 리처드와 베아트리체의 친구이자 베아트리체와는 사촌간이기도 한 남자가 들어온다. 그리고 리처드의 아내 버사가 들어온다. 버사와 로버트 역시 친구이자 서로에게 마음을 주는 사이다. 리처드는 버사를 부인으로 두고 있으면서도 베아트리체에게 마음을 주며, 버사도 리처드와 부부사이지만 리처드의 무관심, 허무주의에 환멸을 느끼고 로버트를 사랑한다. 몇 사람이 자리를 떠나고 로버트와 버사만이 남았을 때 둘은 서로 키스를 하며 깊은 심중을 털어놓는다. 로버트가 별장에서 만나자는 말을 하고 떠나자 돌아온 리처드에게 버사는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말해주지만 그는 무관심하게, 별장에 가든 안 가든 그건 자유라고 말한다. 
  2막은 로버트의 별장에서 시작된다. 로버트는 피아노를 연주하며 버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버사보다 리차드가 도착해서 자신의 아내와 로버트 사이의 일을 모두 들었다고 말한다. 둘은 서로의 마음을 떠보면서도 나름 솔직한 대화를 시작한다. 그녀를 가질 권리와 지금까지의 행동에 대해서, 로버트는 열정적으로 버사에 대한 사랑을 갈구하는 반면, 리처드는 그녀가 그러든 그러지 않든 그것은 완전한 그녀만의 자유라고 대답한다. 리처드는 지독한 냉철성을 지니고 살아온 캐릭터로 묘사되어 있다. 둘은 그녀를 향한 선택에 수반되는 두려움과 갈등을 서로 이야기하는데, 막 도착한 버사가 문을 두드리자 로버트는 떠나고 리처드가 문을 열어준다. 버사는 로버트를 질투한 것이 아니냐면서 남편을 몰아붙인다. 하지만 로버트는 담담하게, 그녀가 로버트와 사랑을 하든 그러지 않든 자신은 그녀를 믿는다고 대답한다. 리처드가 떠나자 로버트가 들어오고, 둘은 다시 사랑을 나누고 헤어진다. 
  3막은 베아트리체가 신문을 들고 리처드의 집을 찾아오는데, 이 신문기사는 로버트가 리처드에 대해 쓴 것이다. 버사는 또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리처드에게 설명하려 하지만 그는 듣는 둥 마는 둥 무관심하다. 남편이 자신을 진정으로 생각하는지, 아니면 어두우면 나타나고 밝으면 조용히 사라지는 그림자로 생각하는지 번민한다. 그때 들어온 로버트는 리처드에게, 자신은 버사의 사랑을 얻는 데 실패했다면서 영국으로 떠날 것을 통보한다. 그가 떠나고 버사는 다시 리처드에게 진심으로 사랑을 다시 이어가자고, 한때 서로가 사랑했을 때 겪었던 경험이나 주변의 풍경을 회상하며 얘기하지만, 리처드는 냉소적으로, 혹은 정말로 무덤덤하게 이야기를 들으며 흔들의자에 몸을 기대는 것으로 끝난다. 
  『망명자들』을 이루고 있는 캐릭터는 많지만, 그중 중점적으로 보아야 할 대상은 리처드와 로버트, 그리고 버사이다. 리처드와 버사는 부부관계고 로버트는 그들의 친구일 따름이지만, 이들의 성격 탓에 서로간의 의견충돌, 혹은 일방적인 구애가 시작된다. 리처드는 몹시 성격이 가라앉은 사람이다. 아내인 버사가 로버트와 했던 애정 행각을 낱낱이 고백하지만 그녀를 추궁하기는커녕 아무 말 없이 받아들인다. 그녀를 포기했다기보다는 안중에도 두지 않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에 비해 로버트는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인 버사를 향해 몹시 집요하고도 낭만적으로 구애를 진행한다. 자신의 마음은 변함이 없으며, 버사 또한 그러함을 잘 알고 있다는 식으로 가슴을 열어 보인다. 그렇다면 중심축이 되어버린 버사는 어떤가. 그녀는 리처드를 남편으로서 좋아하고, 로버트를 친구이자 옛 애인으로서도 좋아한다. 로버트를 더 사랑하지만 한 남편의 여인이라는 지조와 정절 탓에, 한 아이의 어머니로서도, 리처드 곁에 머무르고 싶어 하는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 자신과 로버트 사이의 다소 불륜적인 행동들을 고백해도 강경한 대답을 하지 않고 그저 자신을 ‘완전한 자유’로써 놓아주고 있는 리처드를 보며 그녀는 자신이 아내로서 존재하는지 아니면 그저 동반자로서 존재하는지 구분할 수 없어하며 환멸에 빠진다. 하지만 결론은 로버트가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며 떠나고, 버사 역시 리처드에게 자신의 진정한 사랑의 대상은 당신이었다며 가까워지려고 시도하지만, 리처드는 그마저도 바라보지 않고 혼자 감정을 억누를 뿐이다. 
  이 희곡의 작품이 왜 ‘망명자들’일까? 버사를 중심으로 놓고 볼 때, 버사는 어느 누구에게도 망명하지 못하는 불운한 인물이다. 리처드라는 한 남자의 아내로서의 자리를 버리고 로버트라는 새 남자와 연인 관계에 서는 것은 자존심과 정절 때문에 스스로 포기한다. 그러므로 그는 타인이라는 사랑의 망명을 포기한 것이다. 그렇다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길이 허용되어 있는가? 그것도 아니다. 자신의 원래 자리에는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리처드가 홀로 자리하고 있지만, 그 때부터 자신은 리처드의 관심을 받는 여자가 될 수 없음을 그녀는 자각한 듯 보인다. 오도 가도 못하는 존재. 제목인 망명자는 버사를 표상하는 단어임을 알 수 있다. 열정과 담담함의 사이에서, 어느 것을 선택하지도 선택받지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조리극을 주로 접했던 나에게, 이러한 형식의 극은 분명 전형적인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무척 깊은 인식으로 다가왔다. 핀터나 이오네스코가 비주류, 부조리, 소통의 방해 등을 다루었던 데에 반해 조이스는 인간 내면의 갈등을 풀어낸 것으로 구분할 수 있을 듯싶다. 연애와 불륜을 그저 표피적인 삼각관계가 아니라 여자를 가질 수 있는 권리,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집착, 선택의 자유권 등을 잘 조율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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