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 민음사 / 감상문
김민구
이번 주에 명지대학교 도서관에서 대여하여 근 사흘 동안 읽은『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은 20세기 가장 위대한 소설가로 칭송받는 토마스 만(Thomas Mann)의 장편 소설이자 1929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다. 이 작품은 20세기 초 신분사회가 거의 막바지에 다다르고 만인평등을 위한 혁명이 시작되는 때를 배경으로 한다. 전반적으로 토마스 만은 이 작품에서 당시의 귀족이자 막대한 부를 누렸던 사업가의 가문인 부덴브로크 家의 사람들이 겪는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이 가문의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에서 태어나지만 그와 동시에 문중(門中)의 재산을 더욱 불리고 사업을 크게 확장해야만 하는 의무를 갖는다. 토마스 만은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로서 작품 속의 인물들이 비록 경제적으로는 몹시 풍족하지만 특히 초반부에서 어린 시절부터 등장하는 사람들에게 인생은 결코 순탄하지 않으며 모든 것이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음을, 넘기기 힘든 고비를 만날 수도 있고 누군가는 파멸과 비극을 마주할 운명에 처할 수도 있음을 전달하고 있다. 작품 속 인물에게 호의를 갖고 다가왔으나 실상 방탕한 사기꾼의 실체를 숨기고 있는 캐릭터가 나오기도 하고, 초반에는 뛰어난 경제 수완으로 안정감 있게 살아가다가도 끝에 가서는 지나온 삶들과 죽음에 대해 고뇌하며 비참하게 죽어가는 인물이 나오기도 한다. 이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은 개개인이 서로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으니, 이들은 소설 밖의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상을 대표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장편소설들은 등장인물들이 다른 종류의 소설보다 월등히 많이 나오는 특징을 갖는다. 그러므로 작가는 어느 한 명의 인물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방식이 아닌, 소설을 통해 전달하려는 주제를 완벽히 창조해낼 수 있을 만큼의 인물과 그들의 이야기를 균등하게 풀어놓아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이다.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에서 중심인물이 누구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수십 년은 될 법한 긴 시간 위에 다수의 캐릭터들을 등장시켜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품 속에서 제일 빈번하게 등장하여 중심 뼈대를 이루는 것은 바로 2대(요한 부덴브로크 2세)에서 3대(토마스 부덴브로크)까지의 삶이다. 사랑과 비극, 축복과 애도가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줄거리는 대충 이러하다. 워낙 장편이라다보니 간략하게 설명하려 해도 분량이 길 수밖에 없다. 부유한 상업가문인 부덴브로크 家의 사람들은 새로 입주한 집에서 온가족이 모여 파티를 연다. 초반부에서 등장하는 인물은 요한 부덴브로크 1세와 그의 부인 안토아네트, 요한 부덴브로크 2세와 그의 부인 엘리자베스, 그들이 낳은 세 명의 자녀인 토마스, 크리스찬, 토니, 그리고 먼 친척인 클로틸테이다. 요한 부덴브로크 1세와 그의 부인이 세상을 떠난 후 그 지역의 영사(領事)인 요한 부덴브로크 2세는 장남인 토마스를 가문사업에 동참시켜 후계자로 삼는다. 토마스는 아버지를 닮아 섬세하고 사려가 깊은 데에 비해, 차남인 크리스찬과 둘째딸인 토니는 진지하지 못하거나 고집과 자만심이 강하다. (이때쯤 막내딸 클라라가 태어난다) 그때 그륀리히라는 한 사업가가 신사적인 태도로 거래에 임하면서 토니에게 구애를 반복하고, 휴가를 떠난 토니는 그곳에서 의대생인 모르텐과 사랑을 나누지만 결국 그륀리히와 결혼하게 된다. 장래가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사람과 결혼하여 가문의 부를 더욱 축적시켜야 하는 의무를 가진 탓에, 토니는 그륀리히와 결혼하여 에리카라는 딸을 낳지만 이 그륀리히라는 자는 부유한 가문인 부덴브로크 가에 붙어 이익을 취하려는 사기꾼임이 드러나 두 부부는 이혼한다. 요한 부덴브로크 영사가 세상을 떠난 후 토마스가 그 뒤를 이어받아 부덴브로크 회사의 사장과 영사직을 맡게 되고, 빈틈 없는 성격 탓에 가문은 다시 번창한다. 그러나 남동생인 크리스찬은 끝없이 불안한 성격을 고수하며 정상적인 삶과 멀어져 가문의 돈을 낭비하는 생활을 계속한다. 토니는 다시 결혼에의 희망을 품고 페르마네더라는 남자와 부부가 되고 토마스 역시 예술가적 성격을 가진 게르다라는 여자와 혼인한다. 하지만 사랑의 길이란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듯, 토니와 결혼한 페르마네더라는 자는 일을 하지 않고 그저 아내의 막대한 지참금으로 여생을 살아가려는 태도를 보인다. 다시 이혼한 토니는 바인센크라는 보험회사 사장과 재혼하지만 역시 이 자도 횡령 혐의를 쓰고 징역형에 처해져 세 번째 결혼도 파국을 맞고 만다. 토마스와 게르다 사이에는 육체적으로 몹시 연약한 아들 요한이 태어나는데, 시의원이 된 토마스는 음악에 재능을 보이는 요한을 사업의 후계자로 삼지 못할 것 같아 끝없이 상심하고 괴로워한다. 그러다 어머니 엘리자베트가 세상을 떠난 후 대부분의 유산이 일찍 죽은 여동생 클라라의 남편에게로 가게 되어 부덴브로크 회사는 내리막길을 걷는다. 극도의 스트레스와 불안감 때문에 시의원 토마스는 회사를 청산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사망한다. 크리스찬 역시 연달아 사업을 망치고 무거운 부채를 지게 되어 정신병원에 수감된다. 토마스의 아내는 아들 요한과 아담한 집으로 이사하여 살다가 티푸스(세균에 의한 전염병으로 고열과 환청 등의 치사(致死)적 증상을 가져온다)에 요한을 잃고 나서 시댁이 있는 암스테르담으로 떠나는 것으로 소설의 막이 내린다.
이로써 부덴브로크 가의 사내들이 모두 사망하여 가문은 몰락의 길을 걷는다. 그 뒤 얼마 안 있어 신분사회는 붕괴되고 모든 사람이 평등해진다. 마치 가문의 결말을 예고하듯이 신분 질서라든가 귀족과 평민의 경계는 모두 허물어지는 것이다.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구성은 마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 마콘도라는 마을에 세워진 부유한 부엔디아 집안이 서서히 파멸해가는 양식과 상당히 비슷하다. 전자가 인생의 역경이나 풍요로운 미래를 향한 부담감, 강박증, 비애 등을 다루고 있다면, 후자는 마술적 리얼리즘의 방식을 통해 순수한 마을이 문명화된(자본주의적인) 세상을 받아들이면서 흘러가는 변천사를 다루고 있는 것이 차이일 것이다. 비록 소설 속에서의 인물들은 대부분 부덴브로크 가문의 사람들이지만 전체적으로 부덴브로크 家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며 가족들은 사회의 구성원들이다. 이 작품에서 말하려 하는 바는 이렇다. 아름다운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이나 동경이 커다란 배신과 분노를 불러올 수도 있고, 누군가에 대한 염려나 걱정이 사실로 드러나 비극으로 끝맺음될 수도 있으며, 변경될 수 없으리라 여겼던 위치가 세월이 흐르면서 바뀜으로서 패배감을 맛볼 수도 있다는 것이 단연 우리가 사는 인생이라는 것이다. 커다란 형태의 세상을 한 개의 가문이라는 작은(전체와 비교했을 때) 규모 안에 이루어내어 각 인물들의 생애를 빠짐없이 세밀하게 진술하는 점과, 축하·환희·세례 등의 긍정적 이미지에서 죽음·상실·장례 등 비관적 이미지에 이르기까지 꼼꼼하게 묘사할 수 있는 토마스 만의 문장은 문학사적인 그의 업적과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이 비록 장편이지만 빠른 시일 내에 읽을 수 있었던 근간일 것이라고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