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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테네시 윌리엄스 作) - 한국시문화회관 - 문예도서관 - 문예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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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예술에 대한 지식, 정보, 중요한 자료들을 편집자들이 집필해 놓은 공간입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테네시 윌리엄스 作)
  김민구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오래 전에 동숭동 근처를 지나가다가 어느 대학생들이 연극으로 올린다는 선전을 본 기억이 난다. 그때는 문학에 발을 들여놓기 전이라 생각의 척도가 턱없이 짧았지만 나는 욕망이라는 전차가 어디에 있는 것이며 어느 지점을 향해 달려가는지, 어디가 출발지이고 어디가 종착지인지를 궁금해 했던 것 같다. 새카만 증기를 내뿜는 오래된 열차가 그려진 포스터의 작품이, 테네시 윌리엄스라는 사람을 미국 현대연극계의 대표적인 극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는 것은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그가 1947년에 쓴 작품이며 그 창작의 공로를 인정받아 퓰리처상 수상작으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윌리엄스는 1955년도에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로 다시 한 번 퓰리처상을 수상한다. 그의 수많은 역작 가운데 이번에 읽은 것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이며, 줄거리와는 큰 연관성이 없지만 제목에 인상을 받아 시를 한 편 지을 수 있었다. 
  스탠리와 스텔라는 뉴올리언즈라는 마을의 빈민가에서 사는 부부다. 어느 날 스텔라의 언니인 블랑쉬가 찾아와 며칠 묵어가게 되는데, 블랑쉬는 자신의 여동생이 아주 과격하고 자기중심적인 남자와 결혼했음을 알고 첫날부터 스탠리와 대립적 관계에 놓인다. 스탠리의 친구들이 집에 모여 카드 게임을 하던 날, 블랑쉬는 스탠리의 친구인 미치와 만나 그를 유혹하며 낭만적인 대화를 나누고 헤어진다. 블랑쉬의 생일이 되자 그들은 미치를 포함한 여러 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하기로 약속하는데, 스탠리는 스텔라에게 당신의 언니가 이곳에 오기 전부터 무슨 일을 해왔는지를 말해준다. 남자관계가 몹시 복잡하며 어느 남성이든 마치 성욕을 무한정 채우기라도 하듯 상대하곤 했다는 것이다. 첫날부터 블랑쉬와 대립했던 스탠리는 이 사실을 미치에게도 알려줬다며 그는 오늘 오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그 후 미치와 대면했을 때, 블랑쉬는 그에 대한 자신의 사랑은 분명 옳은 것이었다면서, “사실을 원하는 게 아니라 나는 마술을 원해요. 사실이 아니라 사실이어야 하는 것만을 말하죠.” 라는 말을 남긴다. 더러운 과거를 지니고 계속 살아가느니, 차라리 허상이어도 좋으니 자신이 살아가기를 원하는 환상 속에 들어가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녀는 미치와 결혼하기를 원하지만 미치는 그럴 마음이 없다며 거절하고, 미치가 떠난 후 스탠리와 단둘이 남게 된다. 이 장면에서 다시 블랑쉬의 허위의식으로의 욕망이 다시 고개를 든다. 댈러스의 부자와 여행을 떠날 것이라는 전보가 도착했다며 몹시 환상적인 미래에 대해 스스로 열변하며 도취한다. 그러나 스탠리는 이것이 모두 거짓이며 블랑쉬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허상이라는 것을 알고 모든 것은 꾸며낸 상상과 사기일 뿐이라고 잔인하게 대답한다. 블랑쉬는 급속히 허물어지는 자의식을 통제하지 못하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다 정신병원에 수감되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난다. 
  제목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이듯, 이에 대해 설명되어지는 부분은 단 세 번이다. 
“사람들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서, 다음에 묘지행 전차로 갈아탄 다음에 여섯 블럭 가서 엘리지안 필드에 내리라고 했는데!”라는, 블랑쉬가 스텔라의 집을 찾아가며 말한 대사들 중 하나이다. 어딘가 희극적인 분위기가 풍기는 대사인데, 표면적으로는 단지 뉴올리언즈로 향하는 여로(旅路)를 안내하는 속성을 띠고 있지만, 내면적으로 이 문장은 돌아볼 새도 없이 스쳐 지나가는 인생은 욕망으로 가득 차있고, 죽음의 단계를 통과해야만 비로소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다는 상징성을 보이고 있다. 두 번째의 것은 “진실을 원하는 게 아니라 마술을 원한다”라는 부분인데, 이는 위에서 설명했으니 세 번째로 넘어가는 것이 나을 듯싶다. 자신의 과거를 알고 실망한 미치에게 블랑쉬는 내면적인 절망을 느끼며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때마침 장례식 화환을 파는 흑인 여자가 지나간다. 그녀는 이 부분에서 죽음의 정반대야말로 욕망이 아닌가 생각한다. 죽음이 삶의 정지를 의미한다면 욕망은 삶을 더욱 쾌락으로 끌어올려줄 수 있는 역동성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욕망의 끝은 죽음일 테지만, 완전히 마지막에 이르기 전까지 욕망은 분명 죽음과 대비되는 이미지를 가지는 것이다. 
  전차는 이들이 살고 있는 뉴올리언즈를 가로지른다. 그 전차의 이름은 욕망이며 마을에 도달하기 전에는 묘지가 있다. 아마도 내가 생각하는, 욕망은 죽음을 경유하여 개인의 목적지에 다다른다는 것을 표현하려 한 것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인물들, 그 중 특히 블랑쉬에 있어서는 욕망이라기 보단 차라리 갈망에 가깝다. 그것은 그녀 자신이 가장 추구하는 ‘마술’이자 허위의식이다. 그러나 그 가짜라는 것으로 블랑쉬는 지금껏 버텨왔으니, 욕망은 어떤 것보다도 삶의 질긴 힘줄 역할을 해온 것이다. 욕망은 생존의 한 방식이며 끝없는 집착의 다른 모습이다. 그리고 그러한 욕망을 태운 열차는 반드시 목적지를 향해 움직여야 한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열차』라는 제목이 정해진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욕망은 단순한 인간본능적인 집착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것이 진실이든 허위든 어떤 경우에는 개인의 삶 자체를 송두리째 대변할 수 있는 거대한 힘을 보여주기도 한다. 블랑쉬는 사실에서 벗어나 거짓과 환상으로 몸을 치장하고 이곳에 도착했지만, 그녀는 다시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갈 수 없다. 현실은 그러한 욕망으로 가득 찬 사람을 허용해줄 만큼 마술적인 세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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