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 살인자의 가면
김민구
생활고에 시달려 농약을 먹고 자살을 기도하다 살아난 청년이 있다. 그러나 농약의 산성이 약했던 탓에 자기 살해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같이 자살을 시도했던 어머니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지만 그는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고 어눌한 표정과 정신 나간 듯한 얼굴을 하고 살아간다. 어느 날 동네 옥상에서 여중생이 살해된 채 발견된다. 경찰은 현장 조사 중 문득 습득한 증거물 하나로 그 어리숙한 동네 청년을 한순간에 살인 혐의자로 지목하고, 그 청년의 어머니는 백방으로 돌아다니며 자식의 구명운동을 벌인다. 경찰의 수사를 믿지 못해 자신이 직접 찾아다니기도 한다. 아들은 오래 전 어머니가 시도했던 동반자살의 기억을 선연히 떠올려 어머니와의 면회를 거부하고, 그런 아들 앞에서 어머니는, 자기보다 앞에 선 살인범의 윤곽과 자기 몸속에서 소용돌이치는 절박한 모성애, 그리고 불운한 과거로 흘려보냈던 아들과의 동반자살에 대한 기억과의 대면이 삼립(森立)하는 양상을 띤 채 영화는 전개된다. 희생자의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들 중 아들이 지목한 고물상 주인에게 수지침 자원봉사자로 찾아갔다가 그가 자기 아들의 살해 현장을 목격했다는 말을 들은 어머니는 이성을 잃고 혹은 신고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우발적으로 그를 살해한다. 아들의 구명을 위해 무엇이든 하려는 보호적 모성애의 화신이라고도 할 수 있을 어머니(마더). 마더의 모습은 명확한 진실 앞에서 자식을 감싸기 위해 아주 자연스럽고도 신속하게 머더(살인자)로 둔갑한다. 얼마 후 경찰은 희생자의 혈흔이 셔츠에서 나온 다른 농아(聾兒) 한 명을 진범으로 구속하고, 출옥(出獄)한 아들은 잿더미가 되어버린 고물상 화재 현장에서 어머니의 침통을 주워 건넨다. 농아의 가면을 벗은 그의 얼굴은 무척이나 창백하다.
봉준호 감독의 <마더>는 관객으로 하여금 스크린을 통해 목도한 모든 사실들을 진실로 받아들이기 전에 의심하도록 만든다. 스크린 속에서 분명 일어나고 있는 상황들은 그저 영화적 구성요소에 지나지 않은 사실(fact)일 뿐이지만, 그 속에선 한 명의 희생자를 둘러싸고 진범을 찾기 위해 몇 번이고 관객들은 자신이 예상하는 살인범에 대한 진실(truth)을 확신하거나 단념 혹은 변화시킨다. 관객의 시선은 지극히 순진해 보이는 주인공과 거침없이 욕설을 뱉으며 어린 학생과 정사를 갖는 인물 사이, 사방을 돌아다니며 자식을 보호하고 구명하기 위해 의심나는 모든 것을 조사하는 모성애와 진실을 은폐하려는 살의(殺意) 사이, 지워지지 않는 과거의 기억을 담담하게 모친 앞에서 말하는 무미건조한 목소리와 어머니를 부르며 절규하는 목소리, 차분하게 침통을 건네며 말하는 목소리들의 사이에서 어느 한 기점을 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한다. 사실과 진실의 숲을 오가며 우리는 <마더>의 플롯에서 한 편의 문학적 텍스트를 보는 듯한 플롯을 발견한다. 잘 짜여진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는 이야기 속의 또 다른 이야기가 숨어있는 모습을 보거나,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이전에 심어두었던 복선의 활성화로 인해 마음속으로 희구(希求)해왔던 내용들이 시시각각 변화하기도 하며, 어느 순간 소설의 첫 대목부터 에필로그까지를 한 번에 관통하는 섬광 같은 반전에 놀라 이전 이야기들을 되돌아가 확인하고 싶은 욕구가 들기도 한다. 하나의 줄거리를 가지고 수많은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예술적 완결성이 아닐 수 없다.
어느 날 여중생이 살해당해 옥상에서 발견되었고, 경찰은 수사 도중 습득한 골프공 하나로 유력한 용의자를 체포하고 사건을 종결시켰다. 용의자로 지목된 청년은 사리 구분을 할 수 없는 정신지체자로서 그를 구하기 위해 그의 모친은 위대하고도 섬찟한 모성애를 보여준다. 이러한 줄거리 하나에서 우리는 캐릭터 하나하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그것들이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는가를 살핀다. 근소한 증거물을 제시하여 사건을 대충 마무리하려는 성급하고도 무책임한 경찰의 관습과 판관적 태도, 형법 11조에 나온 농아에 대한 법 집행 불가항목을 들어 진실을 밝히기 위해 당당히 나서기보다 대충 합의할 수 있는 선에서 중재하려는 변호사의 이기심, 아들을 구하기 위한 끈질긴 모성의 집념과 그 이면에 감추어진 폭발적 분노와 살의, 더 명백한 증거가 나왔다고 수사 결과를 번복하는 경찰의 한심함, 방화와 살인의 유일한 증거물을 건네는 아들의 나직한 목소리와 차분한 얼굴 등······. 이러한 시퀀스들은 아무 기척도 없이 고요하게 관객을 향해 다가가 화면 하나에도 깊은 사유를 하도록 돕는다. 때문에 <마더>는 보여주는 형식만 영상이었을 뿐, 텍스트와 활자가 스크린 저편에 감추어진 한 편의 문학작품에 더 가깝게 다가가 있다.
이 영화를 본 나의 지인들은 대부분 도준(아들·원빈 분)이 농아의 가면을 쓰고 살아오다 자신을 죽이려한 어머니에 대한 복수심으로 여중생 살해를 계획했다는 말을 했는데, 내가 어머니(김혜자 분)의 모성애에 치중하고 보아서인지 도준의 내면을 확실히 짚어내지는 못했다. 어찌 보면 내 지인들의 추측이 맞을 수도 있겠다 싶어 본 글의 제목도 ‘살인자의 가면’이라 부제를 단 것인데, 반전을 의도한 하나의 경우로 보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음독(陰毒)으로 동반자살을 시도했던 어머니에게 복수와 죄책감을 심어주기 위해 일부러 여중생을 죽이고 교도소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는 모자란 내 식견으로 보아도 너무 심했다. 모친에 대한 실망감과 분노는 그렇다 치고 이십 년 넘게 살아오는 동안 도준은 무슨 생각으로 살았단 말인가. 영화 속 세계는 가상이지만 그것 역시 하나의 완전한 세계로 받아들여야 하리라. 음독했던 다섯 살 이후 근 이십여 년의 세월 동안 농아를 가장해 살아왔다는 근거 없는 생각은, 면회 온 어머니 앞에서 자신을 죽이려 했던 다섯 살 때의 기억을 담담히 말하는 모습과 자신이 지목한 고물상 영감을 어머니가 죽였을 거라는 확신에 화재로 잿더미가 되어버린 현장에서 침통을 주워 후일 어머니에게 건네는 장면에서 약간의 신빙성을 얻는 듯 보이지만, 어머니를 향한 분노와 무고한 여중생의 살해를 단행하였다는 사실에 대한 당위성을 제대로 획득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현실에 근거하되 보다 사실적이어야만 하는 일종의 <마더> 시뮬라크르는 붕괴되고 마는 것이다. 단지 하나의 가설로만 받아들여질 수 있다.
‘살인자의 가면’은 도준보다는 어머니에 속한 것이라는 쪽이 더 믿음이 간다. 영화의 제목도 어머니를 영역(英譯)한 ‘마더’거니와, 영화 속에서 김혜자 분이 연기한 어머니는 이 세상 어머니들이 갖고 있는, 자식을 무슨 수를 쓰더라도 지켜내야만 한다는 강한 모성애의 극화(極化)된 모습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정신의 발달이 멈추어 줄곧 순진한 얼굴로 살아온 아들이 갑작스레 살인의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다면 어느 어머니가 가만히 있겠는가. 자식을 낳고 기르느라 자신에게 허락된 시간 중 대부분을 써버려 병약해진 어머니, 자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비단 <마더> 속만이 아니라 우리네 모든 어머니의 원형일 것이다. 인류는 개개인의 어머니로부터 탄생되었고 종족의 번식은 동물은 암컷, 인류는 여성으로부터만 가능하다. 하지만 창조와 탄생의 반대선상에 있는 해체와 죽음은 남성과 여성 모두의 손에서 가능하다. 자식을 낳는 것, 자식을 죽이는 것, 자식을 위해 우는 것, 다른 자식의 명복을 비는 것, 타인을 죽이는 것······. 자살과 타살의 관계 사이에서 <마더>의 모성애는 이편과 저편을 오간다. 모성은 따뜻하지만 때론 위협적이다.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 목숨조차 아깝지 않은 결의는 때론 자신의 목표를 위해 타인의 권리를 취할 수 있는 비정(非情)으로 둔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말 그럴 수 있겠다 싶다. 내 어머니는 어렸을 때 미군의 배급식량을 조금이라도 더 받아 집으로 가져가기 위해 악다구니를 쓰셨댔고, 온갖 색료가 들어간 옥수수빵을 하나라도 더 먹기 위해 아귀다툼을 벌였고, 할머니는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6·25 도중 당신이 끄는 수레에 자식들을 태우시며 남하(南下)하셨댔다.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수많은 가면을 쓴다. 환희나 자긍심의 가면이기도 하고, 슬픔과 굴종의 가면이기도 하다. 김혜자 분이 연기한 <마더> 속 어머니도 그러했을 것이다.
<마더>는 제목 그대로 어머니에 대한 내용이다. 정신지체를 앓는 아들과 그를 둘러싼 살인 현장과 과거의 기억 등은 모두 부수적인 요소일 따름이다. 절박하고 위급한 처지에 놓인 아들을 위해 어머니는 어떤 희생을 감내하며 또 어떤 얼굴을 하고 사람들을 대하는가를 심도 있게 관찰한 작품이다. 모성애라는 중심 소재와 연결되는 수많은 장면과 시퀀스들은 설령 영화 자체와 관련이 없다 해도 그와 연관된 생각들을 많이 하도록 만든다. 모성애로 인해 벌어지는 상황들은 이해할 수 있으나 용납되어질 수 없는 문제다. 그러나 우리의 어머니든, 혹은 미래의 아이들을 위한 우리 자신이든, 자식과 관련한 문제에 대해선 윤리적 규정선의 안과 밖을 넘나들며 모든 방법을 강구하고 결단하고 실행할 씨앗을 몸에 품고 있다. 지나가는 말이었으나 아까 마더가 머더가 되었다는 얘기를 했다.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행동은 어디까지 이해되는가. 인류 공통의 윤리보편적인 선을 정할 수 있을까. <마더>를 보고난 관객들은 ‘어머니’에서 시작하여 ‘全인류’에 대한 문제를 사유할 수 있다. 당장 나 자신은 어머니의 사랑에서 시작된 하나의 생명 아닌가. <마더>는 거울에 비친 나와 내 뒤에 선 어머니의 모습이다. 일상에서 우리는 거울을 보며 하나의 얼굴, 즉 자화상만을 발견할 따름이다. <마더>를 보고 나서야, 거울 속 자화상 뒤편엔 거울에 미쳐 비치지 않은 어머니의 모습을 희미하게나마 발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