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읽고 스토리 + 의미론 쓰기 2
문예창작연구회 김민구
▩ 김유진 「늑대의 문장」(『늑대의 문장』김유진 소설 / 문학동네 2009년 출간)
아들아 너에게 狂言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랑을 알 때까지 자라라
인류 종언의 날에
김수영 - <사랑의 변주곡> 중에서
※ 작품 줄거리
김유진의 소설집인 『늑대의 문장』은 일반적인 소설적 이미지들을 갖추거나 치밀한 묘사로 이루어진 기성 문인 세대들의 것과는 완전히 상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세기말적 상징성으로 가득한 김유진의 소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소설이란 완전한 비현실을 마치 현실인 양 벌어지는 구조 속에서 인간의 내면, 그 중에서도 분노에 찬 광기와 분노의 감정세계를 헤매게 만든다. 문학동네신인상을 수상한 단편 「늑대의 문장」을 중심으로 보았을 때,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기 힘든 사건이나 상황을 전제로 구축하고 나서 그에 대한 어떠한 논리적인 설명이나 동인을 뒷받침해주는 법 없이 그대로 전개시켜 나간다. 어느 날 마치 전염병처럼 사람의 몸이 아무런 이유 없이 폭발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마치 총탄을 맞은 수박이 여러 조각으로 박살나듯이 그렇게 사람들은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폭발에 휘말려 죽는다. 그러나 옆에 있는 사람은 아무런 해도 없다. 인간의 육체를 이루는 원자 구조에 갑작스러운 균열이 생기듯 그렇게 몸 자체가 폭죽처럼 터지고 만다. 누가 죽게 될 것이라고 지정되지 않았으므로, 또 그러한 과정이나 동기조차 알려지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은 자신도 희생자가 될 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 이성을 상실하고 착란 상태에 빠진다. 주인공 소녀는 이런 정신착란을 보이는 마을 사람들 중에서도 유일하게 제정신을 갖고 그저 사람들을 관찰하며 상념을 계속한다. 마을 사람들은 갑작스럽게 흉포해진 개들을 닥치는대로 때려 죽이고, 산으로 도망친 개들은 늑대가 되어 마을을 습격한다. 소녀의 어머니는 딸을 지키려는 모정과 스스로의 안위를 위한 유일한 방책은 무감각한 공격성 뿐이라 생각하는듯, 늑대를 모두 죽이기 위해 산을 헤맨다. 그런 모습을 보고 소녀는 문득 최초의 희생자였던 세쌍둥이의 막내 여자아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언젠간 사람 대신 늑대가 섬을 활보할 것이라 믿는다.
※ 작품에 대한 의미 분석
「늑대의 문장」속의 배경이 되는 가상의 마을은 육지와는 좀 떨어져 있는 섬으로 나온다. 사람이 갑작스럽게 폭발하는 전염병이 돌고 있다는 소문에 아무도 그 섬으로 들어가는 배를 타려고 하지 않는다. 섬에 대한 경계는 계속되었지만 조달하던 물자의 양은 점점 줄어들고, 결국 그 섬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버려진 섬이 되고 만다. 소설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인체폭발사건으로 인하여 공포 속에 깊이 잠겨버린 사람들이 그 원인을 찾을 생각은 않고 다른 것에 그 책임을 돌림으로써 이성을 잃고 모두 미쳐버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아침엔 동네를 돌아다니는 개를 때려죽이는 등의 흉포함을 보이다가도, 밤이 되면 그렇게 죽은 개의 영혼이 씌인 늑대들이 더욱 흉폭해져 마을로 쳐들어오는 것을 보고 한없이 나약해진다. 인간의 이중성은 어디서 오는가. 일상을 살아내면서 갑자기 숨이 멎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두려움에서 오는가, 아니면 이 야만의 섬에서 정신을 잃고 살육에 젖어드는 늑대 무리에게서 오는가. 섬에서 발생하는 삶과 죽음은 사실 그 둘을 서로 바꾸어놓아도 이상하지 않다. 원인이 밝혀지지 않는 이상, 또 잠복기와 발생기를 밝혀내지 않는 이상 살아있는 사람은 언젠가 몸이 터질지도 모르는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야만 하며, 누군가 죽음을 당했을 때 그 죽음은 더한 두려움으로 크기를 부풀려 온갖 두려움과 광기를 안고 엄습해온다. 삶과 죽음이 서로 완벽하게 동화되어 있는 이 섬에서 늑대들은 온갖 정신 잃은 시체들을 뜯어먹으며 높은 울음소리를 낸다. 이렇게 김유진의 소설은 겉으로는 현실을 다루고 있더라도 사실상의 메시지는 신화나 전설 혹은 구전되어 오는 민담과 같은 세계로부터 태동되고 있다.
독자들은 제목으로 사용된 늑대라는 단어에 대하여 깊이 생각의 자취를 새길 것이다. 늑대든 이리든 까마귀든 고대 한국에서 시체를 뜯어먹는 것으로 삶을 연명하는 잔인한 존재로 기록되어왔기 때문이다. 양을 물어죽이는 늑대, 사람의 살점을 파먹는 까마귀들은 모두가 사형장의 분위기를 원형으로 하는 상징을 지니고 있다. 으레 형장에서는 까마귀들이 모여들었으며 원한 맺힌 원수를 죽였을 땐 그 시체를 늑대와 이리에게 먹였다는 기록을 우리는 문헌 속에서 빈번하게 발견할 수 있다. 오컬트 고전 영화의 대표 격으로 평가되는 『오멘(omen)』에서는 지상에 내려온 사탄의 자식인 데미안이 자칼(늑대의 한 일종)의 형상을 한 여성에게서 태어났다는 장면이 나온다. 개과의 한 종류이기도 한 늑대는 대부분의 문헌에서 무리지어 다니며 먹이를 사냥하는 등 최대한 야만스러운 상징성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 마리 야수와도 같은 이 늑대들에게도 문장이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냥을 얼마나 잔혹하게 할 수 있는지를 담은 흉폭성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렇게 야수적이고 악마적인 모습이 인간에게 투영된다면, 그것이 바로 「늑대의 문장」속 등장인물들에 부합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리하여 제목으로 되어 있는 '늑대의 문장'은 사실 사람의 문장이기도 하다. 소설 속으로 들어가면 사람 역시 마찬가지로 서로를 경계하며 언제 누가 죽을 것인지 생각하고 있다. 그 두려움 속에서 공포가 자라고, 다시 누군가에게 분풀이를 하려는 야만성이 솟아오른다. 소설이 갖고 있는 최대의 도구이자 필수불가결한 요소는 문장일 것이다. 문장 속에서 이야기가 진출되고 문장 속에서 일대의 결말이 마무리된다. 문장은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인물과 성격에 맞닿아 있으니 문장 자체가 인물의 본연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하다면 늑대의 문장이란 무엇을 상징하는가. 그 흉포하고 무엇이든 물어뜯어 죽이려는 살육의 상징성이 씌워진 맹수의 문장이란, 공포 속에서 방향을 잃고 쓸쓸하게 살아가는 모든 존재들의 광기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주인공 소녀가 갖는 소설 속 위치란 어디일까. 사실 소녀는 남편을 폭사로 잃은 후 완전히 미치광이가 된 어머니나 자폐적 기질을 보이고 있는 이모나 기타 다른 동네 사람들과 비교했을 땐 정상인의 범주로 보이지만, 전반적인 문장이나 그녀의 상념 속을 이루는 이미지들로 보면 그렇게 온전한 정신을 갖고 있는 부류로 보이지는 않는다. 야산을 돌아다니다 맞은편 산 언덕에서 앞발로 땅을 디디고 자신을 내려다보는 늑대의 두 눈이 푸르게 빛나는 광경을 보면서도 그 안광이 실로 감격스럽다고 생각한다. 완전히 폭발하여 대충 육신이 꿰매어진 채 세쌍둥이들의 합동영결식이 벌어진 그 가운데에서도 막내아이의 짓무른 얼굴을 보며 '저 꼬마 살았어'라고 내뱉기도 한다. 소녀는 계속되는 죽음과 피냄새 그리고 늑대에게 자신의 젖을 내주고 누워 있는 이모와 다른 사람들을 관망하고 있다. 또한 먼 훗날 이 섬에는 늑대가 오히려 사람의 자리를 대신할 거라고 믿는다. "지상의 무덤들은 빠른 속도로 퇴적되고 그 위로 아무렇지도 않게 나무가 자랄 것이었다. 그리고 그 무성한 숲속에서 늑대가, 온전한 사람의 얼굴을 하고 유일하게 어둠을 지킬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결말 부분에서 늑대는 사람과 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되려 사람을 본래의 자리에서 밀어내고 사람 행세를 하게 된다. 한때 이곳에 사람이 살았었던가 의문을 가질 날이 도래할 때, 이곳은 늑대의 섬이 되고 늑대가 사람을 대신할 것이다. 소녀의 어머니가 늑대를 막기 위해 집 주변에 돌무더기를 가져다 만들어놓은 석벽은 늑대의 굴이 되고, 이모의 젖을 빨아먹은 "강아지들, 들개 새끼들, 아니 몇 마리의 늑대 새끼들"이 온전한 사람의 얼굴이 되어 섬의 주민들을 대체할 날이 올 것이다. 원인 모를 괴기스러운 사건은 공포를 야기하고, 이 공포는 그 희생자로 지목된 모든 사람에게 불신과 절망, 고통과 광기를 심어준다. 김유진의 소설 「늑대의 문장」속에서 상징주체로 활용되는 '늑대'는 마을사람들의 광기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원인 모를 폭사 사건으로 두려워진 사람들이 아무런 인과관계 없이 사건의 주동자로 동네를 어슬렁거리던 개들을 지목했기 때문이다. 동네 사람들의 무분별한 잘못 덧씌우기에 희생양이 된 늑대들은 마치 고대의 역신처럼 폭사라는 전염병을 몰고 다닌다는 미신으로 형상화된다. 현실적으로도 아무런 관련이 없을 법한 이 [늑대↔폭사]는 광기로 가득한 상징성 덕택에 보편적이지는 않더라도 소설 전개에서 필요한 조건으로 충족되고 있다.
김유진은 어불성설의 도식이 소설에서 차용되었을 때 문학적으로 훨씬 커다란 파급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믿는 작가다. 김유진의 필력은-이 작품집『늑대의 문장』만으로 보았을 때- 상징주의를 따르는 데에서 나오는 것 같다. 마치 신화나 전설의 어느 변두리에서 비어져 나온 것 같은 이야기를 갖고 현실에 접목시켜 전개해나가는 과정이 돋보인다. 늑대가 사람 대신 섬에서 살아가며 온갖 야만과 흉포함의 얼굴을 영원히 쓰게 될 것이라는 상상에서 이 소설은 출발한다. 사람이 광기에 사로잡힐 때, 그리고 아무것도 자신에게 위안이 되어주지 못할 것이라는 걸 자각할 때 사람들은 직립보행하는 만물의 영장에서 네 개의 발로 기어 다니며 먹잇감을 찾아 헤매는 짐승으로 전락한다. 늑대들만 서식하는 섬, 그것은 우리 기억에서 지워진 어떤 섬의 내력을 담은 신비로운 이야기다. 많은 독자들을 확보할 수 있는 보편성을 버리고 그 남은 자리를 완전하게 다른 상징적 문체들로 대신하는 데에 성공하고 있다. 왜 아무런 이유도 없이 사람의 육체가 폭죽처럼 터져 없어지는가, 혹은 어째서 동네에서 짖어대는 개들이 갑자기 광포해지면서 늑대로 돌변하는가. 몽골의 유목민들은 양을 물어죽이는 늑대를 가리켜 카무트(Khamutu), 즉 ‘미친개’라고 부르기도 한다는데, 현실적일 수는 없지만 더할 나위 없이 상징적인, 그런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단편들 모두 상징의 숲 어딘가로, 혹은 상징의 섬 어딘가로 독자들을 안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