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이성비판 서문 - 임마누엘 칸트>
김민구
<순수이성비판 서문>은 문자 그대로 임마누엘 칸트가 자신의 저작인 <순수이성비판>의 집필 취지를 설명하고 간략하게나마 사람들이 어떠한 사유의 과정을 거쳐 논점에 도달하는가를 조명하기 위해 쓴 글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글은 순수이성비판을 중점적으로 다루기보단 저자 칸트가 비판적 사고를 갖기 이전의 사람들이 쉽게 간과하거나 모르고 지나갔던 사유의 방법을 설명해줌으로써 그간 대상에만 치우쳐 생각되어졌던 모든 논리들을 인식의 주체(主體)에 초점을 두어 다시 통찰할 것을 권고하는 내용에 가깝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이 책-이라기보단 글-을 읽고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을뿐더러, 설령 완벽히 이해했다고 해도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의 진면(眞面)을 파악하였다고는 볼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철학 자체가 갖고 있는 관념성 때문에 독자 자신의 생각의 잣대에서 금방 철학 이론의 저자가 가진 그것과 동일하게 생각하긴 힘들다. 확실한 것은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을 통해 감성이나 지성, 이성 중 한 곳에만 집착해서 논리를 끌어나가는 방식을 부정하고, 감성 안에 내포된 감각적 시각과 이성적으로 관찰하여 얻을 수 있는 경험을 기반으로 한 사유를 견지했다는 것이다.
그는 하나의 세계-world라기보다는 logic의 개념-에 대해 알기 위해서 형이상학(形而上學)이라는 논리의 한 방법론을 제시한다. 형이상학이란 우리가 구체적으로 알거나 경험하여 확실히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형태에 대한 것 이상, 즉 상위의 범주로 시야를 높이기 위해 사용되는 방법론 중 하나다. 이를테면 영혼이나 자유, 신(神)과 같은 초월적 존재에 대한 여부 등 과학과 이성으로 찾아낼 수 없는 분야에 대한 연구를 위함인 것이다. 더불어 우리가 사는 세상에 작용하는 모든 것들이 그 원형 속엔 과학실험으로 밝힐 수 있는 알고리즘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도 당연하지만, 모든 것이 적확한 공식과 과학으로 판단되어질 수 있다는 이성 능력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노력이 담겨 있다. 이성이 지나치면 감성이 희미해지고, 한 쪽에 치우친 사유는 어찌 보면 상황에 대한 몰이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에게 알려진 <순수이성비판 서문>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다. 재판(再版)을 거치면서 칸트는 자신의 논리를 보강하기 위해 매번 출간할 때마다 서문을 반복해서 쓴 것으로 보인다. 철학자든 과학자든 혹은 문예가든 계속해서 재판되는 자신의 책 서문을 매번 다르게 저술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초판이 나온 후 더욱 심도 깊은 사유를 통해 자신의 원숙한 철학이론을 보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문을 되풀이하여 저술하면서 형이상학을 통해 칸트가 말하고자 한 바는 무엇이었을까. 신의 존재는 인류학·과학·종교학·철학 등 모든 분야에서 가장 활발한 논쟁이 오고간 주제이지만 아직 확실한 결과는 나오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애초에 형이상학이 필요한 논제는 눈에 보이는 결과의 도출을 위한 게 아니라 생각의 깊이와 폭을 더욱 발달시킴으로써 자신의 이론을 상대방에게 납득시키려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껍질에 지나지 않은 형태보다 더 상층에 존재하는 개념이며 이성이 이성 자신을 비판하지 않고서는 결코 나아갈 수 없는 주제가 아닌가. 그는 형이상학에서 경험이 따르는 선험적 종합판단의 자세를 견지할 것을 주장한다. 신과 같은 관념에 대해 공론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형이상학의 목적은 생각의 성숙이며 이론의 확장이다. 그러기 위해선 반드시 현대를 지배하는 과학이 자신의 공식으론 해결되지 않는 범위에 대하여 감성과 지성을 양립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증명하기 위해, 마찬가지로 완전히 형상화시킬 수 없는 감성과 감각을 사용하여 탐구를 진행하라. 이것이 순수이성비판의 첫걸음이라 할 것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유수의 철학자들처럼 지적이라기보다는 감성에 곧잘 휘둘리곤 하는 존재이므로 칸트는 감각적 직관이 깔려 있는 경험으로 인식을 시도했을 때라야 완전한 이해가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그는 이성과 감성, 지성의 중첩을 요구했던 것이다. 감각이 없으면 인간으로서의 이해가 불가능하고, 그 반대가 되어도 이성적으로 정리하지 못하면 무언가를 인식하고 수용하려는 의지 자체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개인적으로든 혹은 어느 단체의 일원으로서 법규에 따라 행동하여 맞닥뜨린 어떤 문제에 대하여 고민할 때, 업무의 효율을 위해 이성적으로 대응하느냐 혹은 납득되지 않은 동인(動因)을 이해하기 위해 감정적으로 맞서느냐를 선택하게 된다. 칸트는 경험이 우선하는 선험적 판단을 중시했으나 모든 문제가 반드시 그렇게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순수이성비판 서문>으로 칸트의 이론에 대해 약간이나마 알고 난 후 우리가 할 일은 두 가지 대응 사안을 적당히 조율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 하나를 고르면 된다. 결과적으로 견지할 자세는 비판적 사고가 아닌가. (미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