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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치균의 작품에 대한 소고                                     문예창작학과 김민구 

  오치균의 그림을 처음 대한 것은 소설가 김훈의 수필집인 <바다의 기별>에서였다. 그 책의 뒷부분에는 오치균의 그림이 작은 도록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처음에 나는 무척 섬세한 붓터치로 그림을 그렸다고 생각했으나 사실은 오치균만의 화법으로 그려진 것이었다. 명지대 중앙도서관에서 오치균에 대한 책을 찾아보니, <바다의 기별>에도 일부 수록된 글이 실려 있는 두꺼운 도록 한 권을 얻을 수 있었다. 소설가 김훈과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우창 교수(고려대)가 공저한 책이었다. 그 속에 실린 그림들을 감상하면서, 비록 진본은 아니었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계속 그 책을 들고 있었다. 

  그는 손가락 끝으로 물감을 짓이겨 바르는 방식으로 자신의 작품들을 완성시켰다. 사물의 형체와 구별을 박탈하고 본질의 눈에 입각해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붉은 옷을 입은 수많은 월드컵 응원 관중들을 상공에서 내려다보면 붉은 물결처럼 인식되듯이, 주변의 건물이 갖고 있는 회색·탁한 색으로서의 개별성을 무너뜨리고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한다. 
  가령 사북지방을 다룬 화폭에서는 붉고 푸른 색상이 서로 대비되는 부분에서 아름다움을 탄생시킨다. 탄광에서의 힘겨운 노동 자체는 물론 숭고하지만, 그의 그림에서 보여지는 것은 내면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철저하게 외면적인 이미지와 사실(fact)로써 관객들에게 풍경 자체를 객관의 시선으로 보아줄 것을 요구한다.
  그의 작품에서는 앞으로 펼쳐진 곡선적인 길의 허리가 짓이겨진 물감에 의해 스스로의 세월을 몸속으로 체화하고 있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햇볕이 들지 않는 음지에서 햇볕 속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이질적인 면을 관객들에게 내보이기도 한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낡은 가옥들이 오치균의 손끝에선 그 ‘허물어지기 직전’의 이미지로 탈바꿈 되는데, 허물어지고 닳아 없어지려는 순간을 교묘하게 화폭 위로 빚어내는 힘에서, 그림 속 대상은 캔버스 안에서나마 완강한 힘의 뿌리로 시간을 버텨낸다. 
  오치균은 자신의 손가락으로 물감을 짓이겨 화폭에 담고 다시 그 위에 겹쳐 색을 칠하므로 평범한 붓터치로 몇 번 시도하면 금세 대상을 윤곽이나마 가볍게 만들어내는 여러 화가들과는 큰 차이가 있다. 비가 오는 날 차 안에서 유리창을 통해 바라보는 시선처럼, 건물과 사물과 인물과 풍경은 제 고유의 색을 잃어버린 채 서로에게 동화되기 위해 흐물거리는 연체동물 마냥 살아 움직인다. 꼿꼿한 직선과 수직의 건물들의 모습이 점묘가 되어 허공에 제 무늬를 흩뿌리고 도로에 붐비는 여러 차량들과 횡단보도를 핥아내듯 꿈틀거리는 장면은 마치 색색의 겹으로 정성껏 쌓아올린 첨탑이 지금 그림을 감상하는 도중에도 점점 솟아올라 상식의 틀을 부수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만약 폐광들이 많은 사북지역이나 먼 이국의 빈민가를 대상으로 그려진 <East Village>같은 경우, 오치균이 진정 아름다워 하는 것은 이들의 풍경이다. 끝없이 생존하려는 노동자의 몸부림이나 의지로부터는 조금 비껴나 있다. 색을 겹쳐가며 건물의 윤곽을 채우다보니-그가 의도한 바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마치 이끼가 자라나듯 건물 외벽을 물감이 고체화되어 뒤덮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본래 칠해져 있었던 색들이 다 벗겨지고 그 속의 다른 색들이 군데군데 들어나면서 색상들 간의 층위와 대비를 이루는 모습은 그저 사물의 외적인 면만을 따라 그리는 화법보다 더욱 내밀한 예술적 창작과정이라 할 수 있겠다. 
  오치균의 손가락 화법을 통해서라면 밀려오는 모래바람이나 사막의 돌풍을 형상화하는 것도 가능하다. 기존의 방식에서 화가들은 형체가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면서도 유동적인, 바람이나 안개, 눈보라 같은 문제들을 화폭 속에 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고 보았다. 모래가 묻은 창문이나 눈에 덮힌 집을 묘사함으로써 무형한 현상들이 지나가고 난 뒤의 결과적 상태를 보여줄 수는 있겠으나 그 자체를 그림으로써 나타내는 작업은 워낙 모호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동양화의 대가들은 농담과 여백의 미학으로 산을 휘감는 달빛이나 안개를 은은하면서도 아름답게 그려냈지만 그것은 7에서 8할 정도는 관객들의 추측 하에 이루어질 뿐이었다. 구름과 안개를 구별할 수 없었고 하얀 달빛과 절벽의 실루엣을 구별할 수 없다는 게 그이유다.  
  오치균의 <산타페> (1996, Acrylic on Canvas 112X168)을 보라. 강렬하게 다가오는 모래폭풍을 우리는 느낄 수 있다. 오치균의 화법에서 모래바람은 우리에게 보다 선명하고도 확실한 직감으로써 다가온다. 관객들의 앞으로 모래바람이 다가오는 탓에 건물들이 점점 지워져가는 착각마저 일어나게 만든다. 물론 이러한 화폭에서 어느 절박한 위기상황 등을 예상하는 것은 우리들이지 화가의 몫은 아닐 것이다. 그가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나는 이 그림을 보고 고요함과 절박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윤곽을 잃은 채 개별성을 포기하고 캔버스 안에 그려진 모든 사물들과 합치되려는 삼라만상 속에서 나는 문득 그리움마저 느꼈다. 사물의 형태나 질감을 보고 언뜻 느낄 수 있는 그리움이 아니라, 어떤 것에서도 연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문득 차오르는 그리움이다. 불 꺼진 거리를 봤을 때 가로등이 나를 그리워하게 만드는 것도 아니요 보이지 않는 길목과 발자국, 인기척이 나를 힘없게 만드는 것도 아니다. 다만 상황 자체가, 오치균의 손끝이 짓이겨내는 풍경 자체가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는 것이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단연 손가락으로 물감을 짓이기는 것이다. 마음속으로 떠오르는 영혼의 무늬들을 칠하기 위하여 선택한 것은 그림을 향한 자신의 창작 욕구와 빈 백지 사이를 연결해주는 물질적 도구인 붓이 아니라, 그의 육체 중 가장 민감한 부분 중 하나인 손끝인 것이다. 자신의 심중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설령 그림그리기에 쓰이는 도구라 할지라도 물질이므로, 서로 내밀한 교감을 할 수 없는 물질에 불과하므로, 결국 선택할 수 있었던 건 자신의 손가락뿐이었으리라. 

  내가 생각하기로 현대미술에서는 나름의 파격이 시도되어야 할 것 같다. 손가락에 물감을 짓이겨 화폭으로 담아가는 경향이 오치균이 처음의 경우는 아니지만, 그리기에 앞서 도구부터 파격적으로 나가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 한생곤이라는 젊은 화가를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다루었는데, 노란색 스쿨버스를 하나 사서 그곳에 화실을 꾸미고 유랑하면서 화가의 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재료는 물감 뿐 아니라 자연에서 직접 얻어 쓰고 있었다. 돌을 빻아 가루를 내어 그것만의 특유한 색을 그려진 대상에 입히는 것을 보며 그것도 하나의 파격이라 생각했다. 나는 내 장르인 시에서만큼은 형식의 파격을 반대하지만, 미술은 시각에 있어서 가장 섬세하고도 명징한 장르이므로 순수를 깨고 실험을 추구하는 것 역시 다분히 예술적인 사조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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