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관 약전 / 성석제 作
김민구
성석제. 소설 쓰기를 전공으로 둔 동기들에게서 상당히 여러 번 듣던 이름이다. 나는 성석제의 작품보다도 그의 특이한 이름이, 성 씨 성을 가진 사람에 이름이 석제라, 두어 번만 입속으로 되뇌어보면 좀처럼 잊을 수 없는 이름에 흥미를 느낀 것이 그를 기억할 수 있게 된 첫 번째 이유였다. 비록 그의 작품을 몇 읽어보지는 못했으나 누군가 성석제의 작품세계나 그 외 다른 부분에 대해 토론을 하고 있으면 요 근래의 젊은 작가들의 그것보다 더욱 수월하게 나의 말을 꺼낼 수가 있었던 것이다. 내가 이번에 읽은 책은 『조동관 약전』이다. 약전. 소전(小傳)이라는 말과 유사한 단어로 사용되는 이 약전이라는 것은 바로 누군가의 일대기를 매우 간략하게 줄여서 쓴 전기(傳記)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제목의 뜻은 바로 조동관이라는 사람의 짧은 일대기가 되는 셈이다.
조동관은 은척읍이라는 곳에서 이름난 건달이자 깡패다. 쌍둥이 형인 은관 역시 동네 사람들에게 건달의 명성을 드높이고 있는 자이기는 하나, 뭇 동네의 사람들은 은관보다도 동관이 중심이 된 사건을 입에 올리는 빈도가 더 높았다. 은관과 동관의 차이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가장 눈여겨보아야 할 사안은 은관이나 동관이나 자기 뜻대로만 행동하여 법과 치안이라는 것도 크게 신경 쓰지 않으며, 그들의 힘과 세력이 굉장한지라 파출소의 경찰관들도 그들이 벌여놓은 일에 수사를 나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듯 무지막지한 동관―주인공이 동관이므로 은관의 이야기는 잘 나오지 않는다―이 비록 자기 거리끼는 대로 행동하는 무법자이자 건달이지만, 의아하게도 은척읍의 사람들은 오히려 동관의 무용담(?)을 입에 올리며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삶의 활력을 얻고 있다. 동관은 자신과 동거하던 여자가 동관의 어머니와 크게 싸우고 난 후 집을 나가버리자 그녀를 찾으러 사방팔방을 수소문하고 돌아다니다 결국 집으로 돌아오는데, 이때 새로 부임한 경찰서장이 자기 관할 구역을 몸소 순방하기 위해 하위 기관인 파출소로 내려오다가 동관과 은관에게 시비가 붙어 치욕스러운 폭행을 당한다. 대노한 경찰서장은 산으로 도망친 동관을 체포하기 위해 기동타격대를 조직하여 산을 포위하고 스스로 산을 내려오도록 별별 작전과 회유법을 동원하나, 결국 자신들의 활력소가 되어주던 동관의 도주(?)에 마음이 허해진 마을 사람들은 산에서 얼어 죽은 동관을 발견한다. 그것은 무고한 민간인과 무도한 건달 사이의 불협(不協)의 유대감이 아니라, ‘은척에서 태어나 은척에서 살다가 은척에서 죽을 사람들(p.35)’이기에 오히려 뗄 수 없는 관계가 빚어낸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동관의 목숨이 끝난 곳 주변에는 모두 동관과 관련되어 있는 전설이 만들어졌고 깡패가 되려는 소년은 모름지기 그 근방을 순례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생겨났으니, 이쯤 되면 정말로 한 질의 전(傳)으로 엮일 만하지 않은가.
모든 작품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성석제의 『조동관 약전』은 문학에 있어서 전통창작법을 고수해온 다른 작가들이 공통적으로 내면에 품고 있는 문학엄숙주의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 단편소설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인생의 질곡과 무수하고도 기묘한 곡절을 몹시 진지한 문장으로 전개해 나가는 종류가 아니라, 마치 누군가가 들려주는 식의 화법(話法)을 취하면서도 우리에게 이러한 인물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보도록 만드는 교묘한 힘이 넘치고 있다. 소설 문단에 대한 짧은 나의 지식으로는 아마 박민규나 이기호와 같은 작가들이 이러한 맥을 잇는 자들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양질의 주제의식 없이 해마다 양산되는 가벼운 소설들이 아니라, 겉으로는 가벼운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드러내고자 하는 개개인의 일대기가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는 작품인 것이다. 가벼운 문장으로 생각해볼 가치가 있는 주제를 담는 것은 분명 소설가를 지망하는 문학도들이 단연 본받아야 하는 목표라고 성석제의 소설을 읽던 내 동기가 말했다. 하지만 기실 가벼운 문장도 아니다. 가벼운 듯 하지만 또 작품 속에 그만큼 뿌리를 깊이 내리고 ‘반드시 이 문장이어야 한다’라는 강한 당위성을 겸하는 장면들이 셀 수 없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내가 『조동관 약전』에서 집중하여 본 것은 성석제의 문체가 아니라 바로 주인공이자 작중 화자가 전하는 사건의 중심에 선 조동관이라는 인물상이다.
조동관은 분명 좋은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고 한때 영화 시장에서 청소년들의 끝없는 객기나 망상이 더욱 깊어지도록 만들었던 소위 삼류 깡패영화, 조폭영화에 등장하는 그런 피도 눈물도 없는 ‘어깨’ 어깨라는 말은 넓은 어깨의 폭을 가진 이른바 힘 좀 쓰는 뒷골목의 깡패를 뜻하는 은어이다.
같은 존재는 아니다. 그러면 친일파나 당시 일제 치하에서 조선인을 핍박하던 일본인들과 걸핏하면 주먹과 발길질로 싸우며 자기들만의―어찌 보면 민족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영역을 구축하던 종로의 김두한 영화 <장군의 아들> 참조.
의 무리와 같은가? 물론 그것도 아니다. 싸움판이 동네 사람들의 좋은 구경거리가 될 수는 있겠지만 조동관은 앞의 부류들과는 완전히 다르다. 혹은 김용의 무협소설에 등장하는 동사 황약사(東邪 黃藥使) 김용의 무협소설 <사조영웅전>에 등장하는 대단한 고수. 강력한 무예를 지녔으며 온갖 다른 학문에도 정통한 지략가이기도 하나 몹시 괴팍하여 자기만 알고 행동하는 안하무인격의 캐릭터이다.
와 같은가? 역시 아니다. 뛰어난 자신의 힘을 믿고는 있지만 조동관은 황약사처럼 머리와 지략이 뛰어난 캐릭터는 아니다. 한 마디로 상당히 특이한 인물인데, 힘 센 무법자이자 건달이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과 어떤 커다란 은원(恩怨)을 지고 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주 치밀한 계획 하에 행동하는 자도 아니며 어떤 경우에는 사리판단이 부족한 바보의 모습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조동관은 은척읍 사람들 중 하나이면서도 은척을 대표할 수 있는 주요 인물이며 사람들의 생기를 돋우게 하는, 몹시 구성진 입담과 패설들을 뱉어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를 찾기 위해 몇 년이나 소비할 정도로 과감한 인물형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단순한 건달이 아닌, 은척읍의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가끔씩 한 번쯤은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는 거대한 사건을 일으켜야 하는, 동네 사람들의 기대감(?)을 받고 있는 존재인 것이다.
성석제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몹시 특이하다. 조동관 같은 캐릭터 뿐 아니라 무수한 책에 갇혀 사는 이도 나오고 마치 <벙어리 삼룡이>에 등장하는 삼룡이와 같은―이외수의 『벽오금학도』에 나오는 삼룡이도 가능하다―황만근이라는 우직하고도 순수한 사람이 나오며, 어느 작품에서는 포석(布石)이 몹시 정교하고도 과감한 바둑의 고수가 등장하고, 노련한 속임수를 만드는 데에 근 평생을 다 보낸 도박꾼(화투)이 나오기도 한다. 작품 속 인물들은 하나하나가 범상치 않은 내력과 사연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인물들을 상상하고 배치하는 힘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가. 일단 인물의 내력이 희한하니 독자들이 먼저 흥미를 갖고 다가오는 게 일단 성공의 가장 주된 요소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소설구성의 시작은 이야기도 배경도 아닌 인물이라 했다. 인물이 있어야 배경이 나오고 상황과 갈등과 통쾌한 결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한다. 한동안은 또 성석제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만을 중심으로 볼 듯하다. 추후에 조동관, 황만근, 삼룡이와 같은, 순수하지만 우직하고 성실하며 꾸밈이 없으나 누구보다도 어떤 근원에 가까이 가 있는 캐릭터들을 연구한 논문을 써볼 예정이다. 그래야 지금의 내 졸작보다는 더욱 심층적인 인물 배치가 가능해지리라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