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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원, 사랑과 기억을 잇는 철로 - 한국시문화회관 - 문예도서관 - 문예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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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예술에 대한 지식, 정보, 중요한 자료들을 편집자들이 집필해 놓은 공간입니다.

<철도원, 사랑과 기억을 잇는 철로> 
김민구
 호토 역장이 일생 동안을 근무해 온 호로마이 역은 곧 철거되어 새로운 노선으로 통합될 예정이다. 퇴직하는 날까지 호토 역장은 열차가 들어오는 시각이 되면 어김없이 역사 바깥으로 나가 깃발을 흔들며 맞이하고, 다시 출발할 때가 되면 추운 겨울에 뜨거운 차를 내밀며 열차에 신호를 보내어 배웅한다. 젊은 철도원들은 늙은 철도원이 건네는 차를 감사히 받아들고 멀어져 간다. 호토 역장은 자신 홀로 지키고 있는 호로마이 역 안의 작은 관사에 살며 매번 같은 일상을 보내지만 항상 철도원으로서의 업무를 철칙으로 여기는 사람이다. 호로마이 역은 호토 역장 이외 아무도 근무하지 않는 고독한 간이역이며, 영화는 폭설을 뚫고 열차가 철로를 달리는 장면을 오래동안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겨울 폭설과 한 폭으로 이어지는 화면의 고요한 풍경을 이토록 시적으로 표현한 영화는 <철도원>보다 3년 먼저 개봉한 <러브레터>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어느 영화에서든지 눈은 항상 관객의 시야보다 먼저 내려 주변의 것들을 침묵하게 만든다. <러브레터>에서 히로코가 자신의 연인이었던 이즈키의 추도식에 가기 전 눈밭에 누워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는 모습이 도입부라면, <철도원>은 거의 눈에 파묻히다시피 한 호로마이 역을 호토 역장이 쓸쓸하게 빗질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오토 역장은 늦은 나이에 결혼하여 유키코라는 딸을 낳았으나 얼마 가지 못해 폐렴으로 잃게 된다. 그 후 아내마저 세상을 떠나고 난 이후 그는 호로마이 역 관사에 홀로 살며 열차를 맞이하고 배웅하는 일을 계속한다. 그는 철도원으로서의 직업을 자신의 천직이라 알고 살아왔기에, 아마 자신의 아버지 또한 철도원이어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하여 그 사이로는 조금의 틈도 용납하지 않는 원칙적인 삶을 견지해왔다. 성실하지만 융통성이 없는 호토 역장은 자신이 자리를 비우면 열차가 입·출차(入·出車)를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책무를 다하느라 아내의 임종에도 유키코의 병원에도 가지 못한다. 세상을 떠나 고요하게 잠들어있는 아내의 시신 앞에서 친구의 아내가 어떻게 임종에 못 올수 있으며 왜 울지도 않느냐는 질책에, 호토는 "나는 철도원이므로 집안의 사사로운 일에 울 수 없다"고 울음을 삼키며 대답한다. 죽은 딸 유키코의 시신을 안고 돌아온 아내 시즈에의 원망 섞인 말 역시 인상깊다. "딸이 죽어서 돌아오는데 당신은 여전히 깃발을 올리며 열차를 맞는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오토 역장의 모습이 무척 아름다웠다. 나는 일본을 역사적인 과거로 인하여 싫어하지만, 휴머니티란 인류 공동의 보편적인 사랑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사사로운 일을 돌보지 않고 조직과 국가를 위해서 자발적으로 희생하는 정신은 어찌 보면 일본을 이끌어 온 숭고한 힘일지도 모른다. 얼마 전 일본 대지진에서 끝까지 대피 방송을 하다 순직한 공무원이나, 붕괴되어 방사능이 전역으로 유출될지도 모르는 긴박한 상황에서, 몸 돌보지 않고 원자로 정비 현장에 뛰어든 근로자들의 모습과 <철도원>의 호토 역장의 모습이 합쳐져 보이는 것이 익숙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또한 영화는 순차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호토 역장이 역을 지키는 모습과 아내와 딸이 살아있을 때의 과거, 혹은 이제 노후되어 버려지거나 박물관에 전시될 예정인 열차가 처음 만들어져 개통되었을 당시 기관사로 일하던 장면들이 시시각각 등장한다. 어느 날 한 꼬마 여자아이가 작은 인형을 들고 나타나 눈을 치우고 있는 자기 주위를 맴돈다. 의아해하며 바라보는 호토에게 여자아이는 열차를 맞아 호각을 불고 깃발을 흔드는 자신의 동작을 장난스럽게 따라한다. 그렇게 장난을 치다 여자아이는 서둘러 어디론가 달려가고, 시간이 멈춘 듯 뒷모습을 바라보던 호토는 문득 여자아이가 떨어뜨리고 간 인형을 줍는다. 새해가 시작되는 설날, 도쿄에서 자신의 절친한 친구가 음식을 들고 찾아온다. 아들이 도쿄 본사에서 일하기 때문에 퇴직 후 좋은 자리를 줄 수 있으니 같이 동업하자고 권유하지만 호토는 딱 잘라 거절한다. 자신의 천직인 철도원으로 모든 것을 맺고 싶어서다. 막차를 떠나보낸 후 친구와 술을 마시다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나가 보니, 아까의 여자아이보다 조금 더 자라보이는 소녀가 동생이 두고 간 인형을 찾으러 왔다고 말한다. 서로 얘기를 나누다 소녀는 화장실에서 돌아와 급작스럽게 호토의 볼에 입맞춤을 하고, 생글생글 웃으며 밖으로 달려나간다. 호토는 그 날의 업무일지에 분실물 인형 1개라고 적는다. 친구가 돌아가고 난 후 눈 내리는 밤, 고등학교 여학생 하나가 찾아와 동생들이 미처 가져가지 못한 인형을 받으러 왔다고 수줍게 웃는다. 호토는 팥죽을 끓여놓았으니 먹고 가라며 방으로 데려오고, 문득 익숙한 얼굴에 얘기를 나누다 막차를 보내고 오겠다며 밖으로 나간다. 이 장면에서 병든 아내 시즈에를 마지막으로 열차에 태워 보내던 과거가 오버랩된다. 돌아올 수 없는 막차처럼 그렇게 열차가 떠나고 관사로 돌아온 호토는 여학생의 뒷모습이 시즈에와 닮았다고 생각한다. 호토 앞엔 푸짐한 저녁상이 차려져 있고, 철도원의 아내가 되고 싶다던 여학생을 칭찬하며 밥을 먹던 중, 호토는 걸려온 전화를 받기 위해 나간다. 호토는 전화를 한 사람이 여학생의 할아버지라고 생각하여 손녀딸을 데리고 있다고 말하지만, 얼마 후 그럴리가 없다는 표정으로 전화를 끊는다. 돌아보니 여학생이 자신의 역장 모자를 쓰고 환하게 웃으며 경례를 하고 있다. 그렇다. 그 여자아이는 다름 아닌 호토 역장의 죽은 딸 유키코였던 것이다. 

  <철도원>은 후반부에 죽은 딸이 외로워하는 아버지를 달래주고 안아주기 위해 아침에는 유치원생 정도의 아이로, 저녁에는 초등학생, 그리고 일과가 거의 마무리된 늦은 밤에는 고등학교 여학생으로 모습을 다르게 바꾸어 만약 자신이 살아있었다면 이렇게 자랐을 것이라는 걸 관객과 호토에게 보여준다. 이는 비현실적인 환상성을 가미한 표현법이지만 조금도 우리들에게 불이해를 일으키지 않는다. 오히려 깊은 슬픔이 일도록 만든다. 호토는 분실물로 알고 있었던 인형이 사실 아내 시즈에의 출산 소식에 기뻐하며 사들고 왔던 그 인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유키코는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꼭 안아주고 서서히 배경으로 사라진다. 다음 날 호로마이 역사에 엄청난 폭설이 몰아치고, 눈이 무척 쌓인 승강장 위에 호토의 열차 신호용 붉은 깃발이 떨어져 있다. 그는 눈을 치우다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폐기 예정이었던 한 량짜리 열차에 그의 관을 운구하고 호토의 친구는 낡은 호토의 모자를 쓰며 한때 자신들이 달렸던 기억을 반추하기 위해 손수 핸들을 잡는다. 열차가 겨울 풍경 속으로 들어가듯 고요하게 달려가는 장면 위로 우렁찬 화통음이 들린다. 가슴이 먹먹해지게 할 정도로 거센 소리. 초반부의 장면과 동일한 열차의 모습이 흐려지며 영화가 끝난다. <철도원>은 자신의 책무를 다하며 늙어가는 어느 철도원의 장인정신을 다루기도 했지만, 자신이 세 식구와 살붙이며 살았던 호로마이 역 관사를 떠나지 않고 계속 철도원으로 일했다는 점에서, 호로마이역과 그곳의 철도는 사랑과 기억을 잇는 머나먼 길에 다름 아니다. 열차를 떠나보낼 때마다 매번 그는 병든 아내와 딸이 탔던 열차를 배웅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철도원>은 한 편의 사랑 영화라고 보아도 지나치지 않겠다. 나는 이러한 직업정신을 사랑한다. 하나에 미칠 수 있다는 것은 사람을 그만큼 깊게 만든다. 허나 추구하는 것 만큼으로 희생해야 하는 것도 많다는 걸 알게 해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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