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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 스피치 , 굳어버린 혀로 삶을 말하다 - 한국시문화회관 - 문예도서관 - 문예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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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예술에 대한 지식, 정보, 중요한 자료들을 편집자들이 집필해 놓은 공간입니다.

킹스 스피치 , 굳어버린 혀로 삶을 말하다 
김민구 

  인류는 혀와 성대에서 울리는 고유의 울림으로 자기 민족들끼리만 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창조하여 살아왔다. 이방인에게는 아무리 어려운 언어라도 그쪽의 민족들은 어렵지 않게 모국어를 구사할 수 있으며, 이 세상에 태어난 아기들은 알아들을 수 없거나 아무런 의미를 갖추고 있지 않은 목소리를 뱉어냄으로써 자기 앞에서 웃음짓는 어머니와 소통하려고 노력한다. 한 국가나 민족의 정확한 국어문법을 따르지 않더라도 모든 아기의 목소리는 그 자체로 자기만의 의미를 갖고 있으며 가히 본능적으로 대화에 필요한 단어나 어휘, 길게는 문장까지도 스스로 구사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 역시 아기들은 선천적으로 언어 문법에 공통된 설계도를 인지하고 있다는 학설을 제기한 바 있다. 그러므로 언어의 초안은 본능이지 학습이 아니며, 살아오는 동안의 주변인들과 소통의 경험으로 얻어온 것이므로 매 순간마다 발전과 보완을 거듭할 수 있는 것이다. <킹스 스피치>는 어렸을 때부터 말을 더듬거나 하고 싶은 말이 혀에서 맴돌 뿐 그것이 음성화(音聲化)되지 않는 영국의 국왕 조지 6세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조지 6세는 1895년에 태어나 윈저 왕가의 계통을 이었으며 현재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의 부친이다. 그는 9세 때부터 말을 더듬기 시작하여 비록 의회가 있으므로 상징과 명예에 불과하긴 하지만 한 명의 고귀한 왕족으로서 국민들에게 연설을 할 때마다 뜻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다. 여러 방법으로 고치려 애썼으나 백약이 무효했으며, 언어치료사 라이오넬 로그의 수평적 언어치료법 덕택에 자신을 옭아매고 있던 말더듬증을 치유하는데 성공한다. <킹스 스피치>는 국민의 선망과 정신적 존중을 받는 왕족이 거의 태생적으로 갖고 살아온 장애를 극복했다는 실화를 기본 플롯으로 설정하여 사람들에게 보다 많은 관심과 재미를 추구하도록 만들었다. 나 역시 어렸을 때 말 자체를 제대로 발음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조지 6세와 로그 박사의 치료법에 대하여 깊은 공감대를 갖고 바라볼 수 있었다.
  왕위에 오르기 전 조지 6세는 요크 공작으로 불렸다. 공작은 국가에 공헌한 사람을 치하하거나 귀족, 왕족에게 주어지는 5관등(작위)의 제일 첫 번째로써 아마도 왕자였기에 이러한 작위가 내려진 것 같다. 요크 공작은 왕자의 신분으로서 의회의 각료들 앞에서 혹은 수많은 청중들 앞에서 연설을 해야 했는데, 그는 계속 말을 더듬기만 할 뿐 자신있게 문장을 뱉어내지 못하여 번번이 자괴감에 빠졌다. 백약이 무효한 남편을 지켜보던 요크 공작의 아내(엘리자베스 보우스 라이언)는 언어치료사로 알려져 있는 라이오넬 로그 박사를 찾아가 비밀리에 남편을 치료해줄 것을 부탁한다. 아무래도 왕족과 평민 사이의 괴리가 수직적인 탓에 요크 공작은 자신을 치유하겠다며 장담하고 있는 로그 박사를 못내 시큰둥해하고, 그런 요크 공작 앞에서 로그 박사는 말을 더듬는 증상이 혼잣말을 할 때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과 9세 때부터 말을 잘 할 수 없는 조짐이 보였다는 것, 감정적으로 소리칠 땐 아무런 막힘 없이 입에서 흘러나온다는 점, 음악을 들으면서 말하면 자신도 모르게 더듬지 않는다는 점 등을 들어 그의 증상은 후천적인 것이므로 반드시 고칠 수 있다고 말한다. 로그 박사는 효과적인 치료를 위해 의사와 환자가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 대화할 것을 요구한다. 목마른 자가 샘을 파듯, 병을 고치는 데엔 지위고하를 따를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처음엔 반신반의하던 요크 공작은 로그 박사에게서 치료를 받자 조금이나마 말을 더듬지 않게 되고, 형이었던 에드워드 8세가 한 이혼녀와의 재혼을 명목으로 자신에게 왕위를 물려주어 조지 6세라는 칭호를 받아 왕좌에 오른 후에도 로그 박사를 항상 대동하고 다니며 목소리를 교정받는다. 독일의 히틀러가 전체주의를 내세우며 군세를 확장해나가는 등 군사적 도발이 끊이지 않자 조지 6세는 라디오 방송으로 독일과의 전쟁을 선포한다는 내용의 연설문을 거의 완벽하게 읽어내는 데에 성공한다. 조지 6세와 로그 박사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친구로 남았으며 그는 전쟁의 위기 속에서도 국민의 단합을 강조하며 시련을 버텨낸 왕으로 칭송받았다. 그가 죽은 후 그의 딸인 엘리자베스가 왕위를 물려받아 지금에 이르고 있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 잔잔한 분위기로 그려진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고결한 왕족 중 하나인 그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가질 수 있을 법한 고뇌와 병증을 갖고 살아가면서 그것을 치유하는 데에 애쓴다는 점이다. 비록 의회와 내각의 통치로 국왕의 실권은 상실된 지 오래지만 영국은 아직도 왕실이 존재하고 있으며, 그들은 위계상으로 통수권자인 총리보다 위에 있다. 영국 헌법은 국왕으로 하여금 영국 영토의 수호자임과 동시에 英연방의 수장이라고 명시하고 있어 국민들은 왕실을 존중하고 따르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영국 왕실의 변천사를 보다 보면 떠오르는 적당한 단어는 '전락'이 아니라 '변화'다. 자신의 권한을 내려놓을 때 그들은 국민과 가까워졌고 치부로만 알고 지내왔던 비밀들을 고백하듯 털어놓았을 때 같이 그에 동조하고 힘이 되어 주려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실제로 조지 6세는 로그 박사로 인해 자신을 옥죄어왔던 언어의 장애를 고쳤으며, 생이 끝날 때까지 같이 고민하고 동의해주는 친구를 얻었으며 2차대전 중 국민의 대표자로서의 중책을 맡아 해결하여 사후에도 국민의 칭송을 받았기 때문이다. 

  왕의 말 한 마디가 국가를 좌우했던 시대가 있었다. 전제군주국에서 왕위를 이어받은 후계자는 성대한 대관식을 거쳐 권좌에 올랐다. <킹스 스피치>의 배경이 된 1920~30년대엔 그러한 왕권이 의회의 결정보다 약화된 때였으나 왕족이 갖고 있는 상징은 국민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도구로 훌륭히 사용되었다. 직접 모습을 세간에 비추기보다 왕실 전용 라디오 채널에서 대국민 방송을 진행함으로써 그들은 하나의 '배우'가 되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말을 잘해야 했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자주 거론되는 '말'의 개념은 일상의 대화보다는 연설을 위해 준비된 언어에 더 가깝다. 딸에게 이야기를 하거나 자기 스스로의 감정에 도취되어 격렬하게 말을 꺼낼 때 그는 거의 자연스럽게 모든 단어를 발음한다. 대중 앞에 서야한다는 강박감이 말더듬증이 치유되지 않도록 장애요인으로 작용한 듯싶다. 입을 여는 순간 모든 것을 망치고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는 불확실한 예측이 오히려 불안감을 강화시켰을 것이다. 지엄한 왕의 목소리가 마이크 앞에서 서서히 점멸해가는 붉은 신호불빛과 함께 사그라드는 모습은 웃음을 머금게 하는 장면이었다. 고쳐지지 않을 듯싶었지만 세상에 완벽한 습관이란 없는 법이다. 대부분의 습관은 후천적으로 발생하여 고치지 않았을 경우 체화된 것처럼 거의 치유할 수 없다. 수십 년을 몸에 지니고 살아온 말더듬증의 치유 과정이 <킹스 스피치>의 주제인 것은 맞지만, 우리는 언어의 개념에 대해 깊이 사유해볼 필요가 있다. 국어(國語)는 먼저 성장한 어른들에 의해 민족성과 함께 학습되는 것일지 몰라도, 언어는 같은 부류끼리 소통하려는 일종의 본능에 가까운 것 같다. 어쩌면 말을 더듬는 것도 성급한 본능 중 하나일지 모른다. 혀 혹은 입술 주위의 근육이 굳었거나, 언어의 발음을 명령하는 뇌 신호가 성대에 머물러 있기만 할 때 사람들은 입모양과 육성을 서로 다르게 표현하거나 말을 잇지 못한다. 한때 누가 나의 어눌한 목소리를 지적하면 말을 아껴서 정확하게 발음하기 위한 것이라고 핑계삼아 말한 적 있으나, 한때의 내 경험으로 돌아가 생각해보면 그것은 성급한 본능이었다! 마음속에 담아둔 문장을 육성으로 최대한 빨리 변화시키려는 강박이 그 이유였던 것이다. 성급함은 목표하던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쉽게 마음을 비틀어 놓는다. 조지 6세가 로그 박사 앞에서 쉽게 감정에 치우치거나 섣불리 포기하려고 하는 까닭은 바로 이것에 있다. 조지 6세는 짜증이 나면 바로잡기보다 그 상황에서 벗어나길 원하며 자신의 증세에 심한 자괴감을 갖고 국왕의 자격에 대해 슬퍼하기까지 한다. 언어는 학습된 결과물이기 이전에 이미 사람으로서 가지고 태어난 감성과 이성의 중추 역할을 하는 본능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조지 6세는 말더듬증을 치유하면서 연설과 대화에 자신감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본능을 이기고 바꿨다는 점에 있어서 그는 로그 박사와의 만남으로 인해 생의 전환점을 가졌다. 그리고 그것은 전시(戰時)에 국민과 융화될 수 있도록 만들어준 가장 지대한 인연이었을 것이다. 

  세상 어느 누구도 어떤 상황에서든 완벽하게 발음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맞닥뜨리는 변수가 넘쳐나듯 언어는 사람의 행동과 감정, 시간과 공간에 따라 어조가 달라지거나 제대로 음성화되지 않는다. 말이 사람의 성격과 인생을 대변하여 소통의 도구가 되듯, 조지 6세 또한 가까운 가족들과 더 나아가 국민들과 제대로 소통하지 못해 철저히 고립된 '못난이 왕 조지 6세'로 기억될까봐 두려웠을 것이다. 선망의 대상인 왕실의 옛 기억들을 농밀한 진정성으로 담아냈다는 것에 큰 점수를 주고 싶다. 사실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큰 치부로 기억된다. 철저하게 세상의 표준으로부터 고립시키기 때문이다. 심하면 계속 혼잣말을 되뇌는 분열적 자폐증이나 그로 인한 스트레스성 벽면증(壁面症)이 오기도 한다. 조지 6세는 왕실의 역사에서 지워지지 않고 더 크게 빛났다. 그는 언어의 강박을 이겨내고 청중을 향해 자신의 목소리에 의지를 담아 내보였다. 말이 약해지면 사람도 약해지고, 말이 강해지면 사람은 귀 기울여 경청하고 공감을 갖는다. 독일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국민을 다독거리는 방송 연설을 하면서 그는 한 사람, 로그 박사만을 바라본다. 베토벤 7번 교향곡의 잔잔한 음악 속에 시공은 서서히 느려진다. 연설을 마치고 로그 박사가 고개를 끄덕였을 때 그는 말을 더듬었던 과거가 지워지는 환호를 들었을지 모른다. 후에 이어진 독일의 공습에서 그는 대피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또렷한 목소리가 그의 정신을 강하게 붙들었던 것이다. 굳었던 혀에서 나온 당찬 목소리가 영국을 강인하게 결집시켰다. 그것은 의장이나 총리의 것이 아니라 왕의 목소리였기에 가능했다. 킹스 스피치! 깊은 어간(語間)의 공백에서 울린 연설의 명문장과 육성은 아직까지 보존되어 결연한 의지를 생생히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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