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 속의 단절
- 최인호 <타인의 방>
문예창작과 김민지
출장을 다녀와 마주한 현관. 피곤한 남자는 아내가 따뜻하게 맞아주길 바라는 마음에 초인종을 누르지만 돌아오는 건 아득한 메아리뿐이다. 남자는 아내의 무신경함에 화가 나 현관을 두드린다. 그 소리에 이웃들이 차례로 문밖으로 고개를 내민다. 경계와 의심의 눈길로 남자를 보는 사람들. 모두가 낯선 이들이다. 남자는 아파트에 삼년을 살면서 바로 옆집에 사는 이웃들의 얼굴도 모른다. 이웃들 또한 남자가 낯설기는 마찬가지다.
다닥다닥 붙은 아파트 구조. 모두가 단절된 삶을 산다. 그러나 단절해서 벗어나려하긴 커녕 혹여 누군가와 마주칠까 조심스럽기만 하다. 남자는 집에서 만큼은 화목함을 누리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런 단절은 외부에서 남자가 사는 공간으로까지 침투한다. 남자가 사는 공간은 안락하고 편안한 공간이 아니다. 불편하고 어딘지 어색하기까지 하다. 전축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자신이 모르는 것이고, 욕실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물은 어제의 더운물이 아니며 물건은 어제의 물건이 아니다. 남자는 점점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에서 동 떨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분명 일주일전과 달라진 점이 없는 집안 풍경인데 말이다.
그런 살풍경한 집안에서 남자는 옛 추억을 그리워한다. 아니, 지금의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역시 집이란 즐겁고 아늑한 곳이군 하고 그는 중얼거렸다 어디로 보나 현재 그가 서 있는 공간은 아늑함과는 거리가 멀다. 남자는 시간이 어긋난 시계바늘을 돌리듯, 자기 스스로 최면을 걸어 무의미한 시간의 회복을 반복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난여름과 가을을 그리워하며 그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은, 아니 그보다 더 오래 전 낙숫물이 신기하던 그 어린 시절로 회기하고 싶은 것이다.
적막한 공간에서 그는 고독을 느끼며 사방이 고요할 때 비로소 깨어나는 사물들의 소리를 듣는다. 우리가 무료하거나 심심할 때 벽에다 대고 혼잣말을 하는 것처럼 남자도 사물과 ‘소통’을 한다. 그러다 남자는 소통을 넘어 사물에게 집어삼켜진다.
잘 들어요. 소켓이 속삭인다. 마치 트랜지스터 이어폰을 꽂은 것처럼 그의 목소리는 귓가에만 사근거린다. 오늘 밤 중대한 쿠데타가 있을 거예요. 겁나지 않으세요? 이제 주객이 전도되었다. 남자는 움직임을 멈추고 정물이 된다.
여자마저 남자를 고독하게 만들어야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남자의 아내는 더 이상 남자를 사랑하지 않는다. 비록 그들도 키스도 하고 서로 사랑하던 시절이 있긴하지만 여자는 이제 남자에 대한 애정이 식어버렸다. 남자는 가부장적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구시대적 사고의 소유자다. 열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내가 집에서 맞아줘야 한다는 고집을 갖고 있다. 때문에 여자에게 있어 남자는 ‘사랑하는 이’가 아닌 ‘별 소용이 닿지 않는 물건’이다.
……하지만 나중엔 별 소용이 닿지 않는 물건임을 알아차렸고 싫증이 났으므로 그 물건을 다락 잡동사니 속에 처넣어버렸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그 방을 떠나기로 작정을 했다.
현대사회에서는 아내 또한 ‘개인’이며 누군가에게 종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도심 곳곳에 개인주의가 만연하다. 이젠 정답게 인사를 나누는 이웃을 마주하기란 어렵다. 집들이 붙어있는 아파트에선 더더욱 그렇다. 아파트가 개인주의를 만든 것일까. 개인주의가 만연했기에 아파트가 생겨난 것일까. 같이 사는 이조차 ‘타인’으로 지칭할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 모두가 공존하는 공간이 존재하는지 의문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