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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에 도그빌(Dogville) - 영화의 낯설음 - 한국시문화회관 - 문예도서관 - 문예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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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예술에 대한 지식, 정보, 중요한 자료들을 편집자들이 집필해 놓은 공간입니다.

트리에 도그빌(Dogville) - 영화의 낯설음

문예창작과 김민지

 

로키산맥에 자리한 조그만 마을 도그빌에 낯선 여자가 찾아들어온다. 여자의 이름은 그레이시’. 갱스터에게 쫒기고 있는 자신을 숨겨달라는 말에 마을 주민들은 도와주기로 하고, 그 대가로 여자에게 일을 시키기 시작한다. 여자는 보기에도 고급스런 옷을 차려입었고 손엔 굳은 살 하나 배기지 않은 고풍스런 모습이다. 외모도 아름다운 그녀는 마음씨도 고와 자신을 숨겨준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하지만 여자를 찾는 사람들이 한 두 번 마을로 들어오고 그녀의 현상수배전단지가 붙자 마을사람들은 점차 변하기 시작한다. 그레이스에게 더 많은 일을 안겨주면서 일당을 줄여버린다. 남자들은 그녀를 강제로 안기 시작한다. 더 이상의 수모를 당할 수 없던 그레이스는 도망치려하지만 실패하고 도망칠 수 없게 구속당한다.

끝내 마을사람들은 그레이스를 갱스터들에게 넘긴다. 반전은 갱스터의 보스가 그레이스의 아버지였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마을사람들을 용서하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오만임을 깨닫고 모두 죽여 버리며 영화는 끝난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영화의 플롯이 아니다. 영화의 배경, 인물들의 행동연기, 조명, 나레이션까지. 평소에 생각하던 영화의 틀을 깬 영화다. 우리는 영화를 실제가 아닌 것으로 인지하면서도 사실감 넘치고 현실과 헷갈리는 영화를 바란다. 영화의 배경은 사실적이어야 되며 행동은 자연스러워야 한다. 플롯에 맞는 발견급전또한 필요하다. 더군다나 영화로 하여금 관객들을 감응시켜야 되는 사명감을 갖는다.

영화는 시작부터 실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하이앵글에서 비춘 배경(세트장)은 마치 연극무대의 그것과도 같다. 폐광은 나무 받침대만 있고 사방이 뻥 뚫려 있으며, 식물과 벽은 모두 구분되어 있을 뿐이다. 바닥에 식물이나 벽을 인지할만한 그림을 그려놓는다. 그러면 영화 속 인물들은 마치 벽이 있는 것처럼, 식물이 자라난 것처럼 연기한다. 사방이 뚫려있지만 막혀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들은 벽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것처럼 행동한다. 인물들에게 필요한 소품들만이 배경에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조명이 밝고 어두움에 따라 낮과 밤이 구분되며, 효과음(풀을 뽑을 때라든지 문을 닫을 때)을 통해 좀 더 사실적으로 표현할 뿐이다.

이 영화를 이끌어 나가는 주체는 나레이션이다. 나레이션은 전지적 관찰자로서 인물들의 행동의 이유를 설명하고 인물들의 내면까지 밝혀준다. 인물들의 행동을 통해 추측해야만 하는 번거로움을 줄였다. 추측의 자유를 빼앗겼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관객은 나레이션의 대사를 통해 영화에서 벗어난다. 영화에 몰입을 방해하는 나레이션은 어느새 관객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아리스토텔레스

이 영화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희곡작법과는 거리가 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롯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그는 우수한 비극작품이 되기 위해선 플롯이 복잡한 구조여야 된다고 말한다. 공포와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행동을 모방해야 하며 그 인물로서는 덕과 정의에 있어 탁월하지는 않으나, 악덕과 비행 때문이 아니라 어떤 과실 때문에 불행을 당해야 된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주인공의 과실 때문에 비극으로 빠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한 가지 집고 넘어가고자 하는 것이 있다. ‘이 영화는 과연 비극인가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詩學)에서 비극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고전적인 정의를 내렸는데, “비극은 가치 있거나 진지하고 일정한 길이를 가지고 있는 완결된 행동의 모방이다. 쾌적한 장식을 한 언어를 사용하고, 각종 장식이 작품의 상이한 여러 부분에 삽입된다. 서술의 형식이 아니라 행동의 형식을 취한다. 또 연민과 공포를 통하여 감정을 정화시키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라고 정의하였다. 또한 비극의 목적을 지속적으로 억압당할 경우 언젠가는 위험하게 폭발될 수도 있는 감정을 안전하게, 관례적으로, 그리고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방출시켜 주는 도덕적 기능, 즉 카타르시스의 기능을 극에 부여하고 있다. 카타르시스를 통한 쾌감 산출이라 지적한다. 결국 카타르시스를 통한 감정 정화를 유도하고 있느냐는 얘기인데, 확실히 이 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연민과 공포를 느끼게 한다. 관객은 그레이스가 부당하게 착취당하고 유린당하는 모습에서 연민을 느끼며, 나또한 개보다 못한 본성을 갖고 있지 않을까 하는 공포를 느끼게 된다.

이 영화가 비극이라면 주인공의 운명은 행복에서 불행 쪽으로 바뀌어야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비극의 플롯에 마땅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것이 불분명하다. 마을로 들어온 그레이스가 마을사람과 교감을 나눌 때는 행복했지만 끝에 가서 그녀는 불행해졌다. 그러나 반전을 통해 그녀는 마을사람들을 처단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레이스는 결국 행복해진걸까. 그녀는 단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사람들을 없앨 뿐이다. 자신을 위해서가아닌 이타적인 마음에서의 결정은 그녀를 행복하게 만들었는지 불행하게 만들었는지 모호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드라마의 기본 요소로 대사를 제시했다. 희곡에서의 대사는 인물에 성격에 적합하며 극 진행의 속도를 살릴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적절한 때에 적절한 말을 함과 동작의 낭비를 피하고 표현이 빠르고 짧아야 한다고 말한다. 도그빌은 여기서도 그 틀을 깬다. 일단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극을 끌어나가지 않는다. 영화는 나레이션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그렇다고 필요한 요소들만을 말하지 않는다. 필요하지 않는, 영화의 쓸모없는 부분을 설명함으로써 오히려 극의 흐름을 방해한다.

 

거리두기<낯설게하기>

롤랑 바르트가 말한 푼크툼은 고정된 의미, 재현된 의미 밖에 있으며 새로운 의미화의 조건이 된다. 여기서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소격효과, 낯설게하기 의미와 들어맞는다.

<도그빌>에서 이 낯설게 하기는 내러티브적인 면에서든 영화편집상에서든 여러 가지 기법들을 사용하여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앞서 소개한 해설자, 즉 나레이터가 그렇다. 영화의 스토리는 배우의 대사를 통해서 전달되지 않고 내레이션의 입으로 설명된다. 공개적으로 드러나 있는 세트장에서 그저 움직이는 배우들이 만들어 내는 상황을 내레이션의 설명으로 이해해야 하는 작업은 이전의 영화들에 익숙한 관객들을 곤란하게 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또한 영화 <도그빌>은 연극의 처럼 아홉 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각각의 장마다 제목이 붙어서 자막으로 처리되며 이를 통해 그 장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고 그 자막은 연극의 막과 같은 역할을 한다. 간단하게 마을과 사람들의 소개가 끝나고 나면 1장이 시작이 된다. 이는 각 장을 분할한다는 점에서 연극의 의 개념과 유사하지만 도그빌의 이 화면은 그 장의 요약이 목적이라는 점에서는 연극의 그것과는 다르다. 그 장이 시작하기 전에 제시되는 이 화면을 통해서 관객은 이미 앞으로의 내용을 숙지하게 됨으로써 극의 결말보다는 구체적인 과정에 주목하게 한다. , 연극적으로 제시될 내용을 미리 이야기해 주는 내용설명이라는 서사적 기법은 연극적 사건에 대한 긴장을 해소시켜준다. 이렇게 될 때 관객의 관심은 '무엇?'보다는 '어떻게?'라는 진행에 대한 것에 쏠리게 된다. 이로써 관객은 보다 이성적인 객관적 시각으로 작품을 바라보게 된다.

또한 영화 편집을 통한 거리두기도 존재한다. 이 영화에서 종종 쓰이는 카메라 기법은 클로즈업이나 핸드 헬드 기법(들고 찍기), 점프 컷, 하이 앵글로 이러한 카메라의 기법들은 오로지 관객의 이성적인 접근을 위해 존재하며 인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무대를 최소화함으로써 인물들에게 초점을 맞추려 했다고 한다. 관객은 영화의 낯설음을 느낌과 동시에, 영화의 핵심인 인물에게 빠질 수밖에 없다. 그는 특별한 실험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해 뛰어난 영화적인 연기를 하는 배우들을 기용함으로써 관객이 자신의 실험에서 도망가는 것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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