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야 나는 얼마나 적으냐
김경민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王宮 대신에 王宮의 음탕 대신에
오백 원 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 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越南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二十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情堵로
가로놓여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14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아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 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위에는 서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二十원 때문에 十원 때문에 一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一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김수영作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전문-
나는 1984년 초여름 혜화동 로터리에 시원(詩園)이라는 문학공간을 마련했었다. 말하자면 지금 한국시문화회관의 전신이었던 셈이다. 한 1년쯤 버티다가 문을 닫았다. 아무나 끌려가서 고문을 당하거나 아무 책이나 읽을 수도 없고 자유로운 정지적 의사표현이 불가능했던 당시의 사회풍조 속에서 詩와 인생과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자는 의도로 마련된 문학공간이 오래 지속되기는 애당초 틀린 일이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시 시원에 모였던 젊은 의학도(시원은 당시 고대부속병원 옆에 있었다)들과 詩 애호가들은 정치적 억압과 어두운 사회의 꽉 막힌 벽의 시대에서야말로 문학이 구원과 위안의 조그만 틈새를 보여준다는 것에 이견이 없었다. 특히 당시 시원에 모였던 사람들의 대화중에 기억에 남는 주제는 어두운 시대의 문학의 사회적 역할에 관한 것이었다. 어떤 시대에서도 문학은 순수하고 아름다우며 영속적인 세계를 보여주는 것으로서 충분하다는 생각과 당대의 거울인 문학이 그 시대의 어둠과 불의를 타파하는데 앞장서야 한다는 논리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었음에도 대화의 끝엔 늘 만나는 주제였다.
어쨌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시원이 1년쯤 버티다가 문을 닫은 혜화동 로터리에 다시 1년쯤 지나서 시집도서실이란 카페가 생겼다. 어떤 글쓰는 사람이 시를 읽으면서 차도 한 잔 마시는 그런 카페를 차린 것이었다 나는 이 카페를 1987년 7월8일 인수해서 내부를 수리하고 한국시문화회관이란 문학 공간을 만들었다.
그 후로 만 8년이 흘렀다.
이제 새 회관의 독립 사옥을 마련하게 되었다. 회관으로서도, 아니면 우리나라의 시문화 운동에도 새로운 도약의 계기가 마련된 셈이다. 시낭송회와 문학강연회, 작가와의 대화, 문학캠프, 시문학 자료관, 문학동인의 모임방, 각종 문학행사장, 전화시 보급망, 시문예지 발간, 문화강좌, 여러 문화단체의 연락망, 출판운동 등 지금껏 해왔던 여러 활동에도 가속과 무게가 붙게 되었다. 한 마디로 새로운 힘을 얻게 된 것이다. 돈 때문도 아니고 큰 후원자가 생겨서도 아니고 어떤 정치적 배경 때문도 아닌 순전히 뚝심과 어거지로 버팀으로서 얻게된 힘이다.
하지만 십여 년 간을 버팀으로써 이제 얼마간의 결실을 얻게 된 반면, 나는 많은 것을 잃었다. 청춘의 중요한 한 때, 그 시간들과 건강과 가족 사이의 그런 것들을 비롯한 무엇인가 내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어떤 많은 것들이 내 곁을 떠났다는 상실감이 엄습한다. 어차피 무엇을 얻으면 또다른 무엇을 잃는 것이 삶이라는 건 유행가 가사처럼 익숙한 경구지만 내겐 고통스러운 것이다. 내가 잃은 그 많은 것들, 열정과 순수함과 관용의 미덕과 재능과 따스함 등이 내 겉을 떠나갔다. 삶과 대상에 대한 비판과 분노와 욕구불만은 내가 지녓던 너그러움과 인내와 침착함과 여유를 모두 치워버렸다. 잘못 눌러 모두 지워진 컴퓨터의 정보처럼 나는 빈 화면의 추억앞에 댕그러니 놓여있는 듯한 생각이 요새 문득 문득 들곤한다. 삶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럽고 질곡이 많았던 사람은 인격자의 온화한 미소보다는 불안한 표정과 분노의 외침 밖에 보여줄 수 없는가? 어차피 다른 사람은 알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너무나 오랜 현실의 고통이 나를 옹졸하게 만든 것일까? 그동안 나는 오직 자기 혐오와 분노와 오기로 살아왔다. 그렇게 살아서 여기까지 왔다. 이제 이렇게 어느 정도 보람도 얻고 희망을 얻고 깨달음도 얻었으니 나는 돌아갈 수 있을까? 쓸 데 없이 이 세상에 없는 길을 만들겠다고 혼자서 삶과 곡괭이를 들고 길을 닦다가 인가에서부터 너무 멀리 떨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돌아갈 수 있을까?
내 생각은 너무나 옹졸해서 생각이 없어진 내 생각은, 이제 아무데도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돌아갈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이제 이 삶이 내것이라는 것이다. 이것도 하나의 바둑이고 이길도 하나의 판짜기인 것이다. 우리나라, 아니면 전세계의 많은 사람 중에 어떤 한 사람만은 詩에 살고 시에 죽고 문학에 목숨 걸고 예술에 가족 걸고 문화에 땔감과 밥을 거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돌아갈 수 없다. 너무나 많은 것을 잃은 댓가로 얻은 분노와 오기와 옹졸함으로 세상에 딱 한사람이 되야겠다는 생각이다.
신춘문예니 무슨 상이니 당선해서 글보다는 이름만 남은 시 한 줄 쓰지 않는 시인과, 문법도 모르는 문인과, 글 보다는 정치적 수완만 능한 사람과, 제 작품의 수준을 무슨 학위로 만회하려는 사람과, 무슨 시선으로 제 시집이 나오거나 어떤 이의 평론을 받는 것이 소원이라는 얼빠진 사람들을 위해서도 나는 계속 옹졸해야겠다. 이제 옹졸이 아닌 다른 희망은 없다. 모래알이 바위가 되긴 틀렸다. 김수영의 위대함은 소시민적 일상 속에 갇혀 허덕이는 부끄러운 자신의 모습을 또다른 자아를 통해 냉정히 비추어보면 분석하는데 있다. 그의 "자기 자신 들추기"는 매우 정직한 듯 하면서도 냉소적이다. 어쨌든 우리 문학의 발전과 문화의 질 향상과 아름답고 정의로운 시의 향기를 온 세상에 전하기 위해서가 아닌 10여년간 내가 걸어온 길의 시간이 아깝고 나 밖에 갈 사람이 없기를 더욱 분노하고 더욱 옹졸한 오기로 계속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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