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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 우리작가 - 박상륭 (문예2000 - 1998년 여름호) - 한국시문화회관 - 문예도서관 - 작가와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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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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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예술에 대한 지식, 정보, 중요한 자료들을 편집자들이 집필해 놓은 공간입니다.

 오랜 구도의 순례자.

 - [문예2000 / 1998년 여름호 수록 / 12~23Pg] 

우리시대 대표작가[박상륭 소설가]

 

며칠 사이 반짝 스쳤던 꽃시샘의 냉기가 가시고 봄 기운이 흐틋하다. “계절이 바뀌고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의 기미를 안다면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정현종의 한 구절을 떠올리며, 선생과 약속을 한 밀다원 다방으로 들어섰다.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 거개가 나이 지긋한 중년이다. 카운터 가까이의 좌석에는 연극인 이진수씨가 물끄러미 창너머에 눈길을 주고 있었다. 밖은 젊음이 활보하는 대학로, 그 곁섭의 그늘에서 가느란 눈으로, 어느 기억자리라도 더듬고 있는 걸까. 당신들도 이 거리의 주역이었을 때가 있었을 터, 그러나 지금은 무대가 아닌, 객석에서, (장막) 뒤안에서 陽地(양지)의 화려한 연기를 보고 있다. 전혜린의 일기가 잦아들던, 황석영의 모노드라마. 이애주의 춤판이 흐드러지던 동숭동 거리를, 이제는 수줍어하며찾아듦은 그들에게 있어 거부할 수 없는 희귀본능같은 것이 아닐까. 灰心(회심)歸去來辭(귀거래사)와도 같은...

먼저 와 계시던 이문구 선생에게 인사를 드렸다. 선생 역시 창밖으로 시선을 두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유행이 되어버린 ‘IMF 인사’, <문예 2000> 봄호를, 어렵게 얻은 늦둥이 보듯 쓰다듬는다. “요즘 문예지 내기 힘들 텐데.”

근자의 네 번째 전집 발간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던 (), 입구를 좇던 선생의 눈가에 미소가 번진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단정한 初老(초로)의 신사. 나직하지만 칼칼한 목소리, 악수를 건네며 마주하는 눈에 깊이 갈무리 된 기운이 느껴진다. 박상륭 선생의 春秋(춘추), 낼 모래면 耳順(이순)이다. 필자라 初老(초로)’라 표현한 것은 백발과 잘 어우러진 형형한 안광 때문이다. 옴나위 못하게 잡아끄는 그 눈빛, 과연, 작품을 상상했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파이프 담배의 엑조틱한 향기가 오랜 구도의 방황을 끝낸 순례자가 픠워 올리는 향처럼 선생의 어깨에 머무른다.

 

문예 2000 : 外地(외지)에서 오래 머무르시다가 2개월 전 귀국하셨는데요,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이문구 선생님과는 자주 자리를 같이 하시는지요?

박상륭 : , 매일 술 먹고, 아는 사람 만나고, 이문구 선생님하고 싸움하고 그랬습니다(웃음). 술 먹고 와달쓰고, 하나는 일으키고, 하나는 잠재우고, 이 선생하고는 옛날부터 짝이었지요.

 

문예 2000 : 아직까지 일선에서 뛰시다니, 건강하시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되겠습니까?

박상륭 : 지금은 많이 못 해요. 새로 시작하고는 있... 아무래도 체력이 떨어지니까. 김원일이나 김주연이는 아직도 끊임없이 마시지만...

이문구 : 김원일이는 暴酒(폭주).

 

문예 2000 : 선생님과 同代(동대)의 작가분들에게 술이란 각별한 의미가 있지요.

박상륭 : 이문구 선생이 작가는 형벌에 처했다라는 말을 하는데, 중수업하고 작가수업하고는 달라요. 작가는 말을 얻으려 수업을 하고, 중은 말을 비우기 위해 수업을 하지요. 생각도 안하고, 읽지도 않고, 쓰지도 않고 할때는 중은 시간이 되어도 술을 마신다든지 그런 식의 트레이닝을 하는 건 아니죠. 헌데, 작가는 공백기간이나, 시간이 된다든지 하면 중모냥으로 면벽을 하는 것이 아니고,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하죠. 그래서 작가나 중은 수업을 하는 방법은 같을지 몰라도 주제가 달라요. 대개 예술하는 사람들이 술로 흘러가는 것은 그 이유죠.

 

문예 2000 : 귀국하시자마자 IMF니 뭐니 해서 고국의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위기가 근본적으로 정부의 문화행정 부재로 인한 국민의 정신적 공백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박상륭 : 전에 죽음의 한 연구란 졸작에 나름의 역사관을 피력한 부분이 있어요. 역사란 절대적인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유전하는 陰氣(음기)에 의해서, 말하자면 , , 의 단계로 연금술적으로 발전해 나아가다가, 이것이 어느 단계에서 역전할 수 있. 다시 의 상태로 돌아가게 되는데, 이 와해의 상태는 역설적으로 참으로 기름진 것입니다. 그때에 용렬한 사람이 왕 노릇 하면 상황은 더 나빠지고 탁월한 연금술사같은 지도자가 나타나서 잘 수습을 하면 발전을 하게 됩니다. ()에서 ()으로, ()에서 ()으로 나아가는 것은 賢者(현자)의 돌(Philosopher's stone)으로 화하는 연금의 단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상황은 으로 나아가는 길에 용렬한 왕을 만나 으로 떨어진 상태인데, 위험하고도 기운찬 시기라 할 수 있습니다. 국민들의 기운을 어떻게 연금하느냐에 달려있지요.

(선생은 펜을 들어, 하나 하나 짚어가며 설명하였다. 아래는 선생의 도식이다.)


(NIGREDO) ⇒ 質科(질과 : 재료)

        ][

(ALBEDO)  AMALGAN(아말감)

       ][

(RUBEDO)  (PHILOSOPHER'S STONE)

 

문예 2000 : 선생님 말씀은 陰陽五行(음양오행)의 순환사상과도 닿아있다고 생각됩니다.

박상륭 : 순환은 악순환을 어우르기도 합니다. 유전된 陰氣(음기)속에 우리의 현재 기운이 형성됩니다. 이러한 陰氣(음기)는 또한 다음 세대의 역사를 이루는 원동력이 됩니다. 이것이 제대로 꽃이 피게 되면 당대에 역사를 이루게 되고, 문화도 융성하게 되고 하는데, 현재의 陰氣(음기)는 전대의 파괴적인 요소를 유전받았는지도 모르죠. 그래서 이러한 상황이 생긴 것입니다. IMF가 와서 공백상태가 생겼는지는 모르겠으나, 그전에야 뭐 공백상태라 할 수 있습니까. 그저 돈 쓰러 다니고, 놀러 다니고 하는 것으로 거진 차 있었죠.

 

문예 2000 : 와해의 시대가 있다면, 융합의 시대도 있겠죠?

박상륭 : 현자의 돌을 처음 물었을 때, 그것이 죽은 상태를 Nigredo라고 합니다. 그것이 한 번 발전해서 아말감이 된 것을 Albedo라고 합니다. 한번 더 변전을 하면 Rubedo의 상태, ()이 되지요. 그런데 우리는 ()의 상태로 오다가 퇴화를 한 겁니다. 지도자나 지성인들이 이를 다시 잘 연금을 한다면 융합의 시대가 오겠죠.

 

문예 2000 : 선생님의 독자는 일정 정도의 매니아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일반인들에게는 선생님의 작품이 난해하게 다가오곤 합니다. 비평가들조차 텍스트를 분석하면서 암호해독이라는 말을 하는데, 독자들을 위해 작품에 접근하기 위한 조언을 해 주신다면,

박상륭 : 매니아란 말은 그냥 요즘 유행하는 단어죠. (제 작품이)얼마 정도의 독서를 요하기는 합니다. 재미있는 부분은 재미가 있습니다(웃음)... 많이 읽는 수밖에 없어요. 첫째, 한국문학의 진수를 맛보려면 이문구 선생의 작품을 읽어야하고... 언제인가 신인작가가 그러더군요. 이문구 선생의 문체에 박상륭의 사유가 결합된다면... 의미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비평에 대해선... 비평이란 창조가 아니잖아요. 비평가들이 오늘날 어느 정도의 영광을 누리기도 합니다만, 전 요즘에 비평가들을 만나면 두려움 없이 거짓말꾼이라고 합니다. 시가 한 편이 있다면, 여기서 요만큼 뜯어다가 붙이고, 저기서 뜯어다 붙이고, 그래서 사람을 하나 만들어내는데, 그게 시에 있는 것이 아니지요. 뭐 그런 점에서 제2의 창작이라고 할 지는 모르겠으나, 그게 정확하게 분석이 되는 것이 아니라, 뭐 거의 講壇用(강단용)이지요.

이문구 : 재미없는 분야지, .

박상륭 : 누군가가 누구를 비평했다면, 그 누구한테만 재미가 있겠지.

 

문예 2000 : 두 분이 활동하실 때는 김현 선생이나 김우창 선생같은 탁월한 비평가들이 계셨지 않습니까? 작가와 비평가들 간에 유기적 교류가 가능했다고 생각되는데요.

박상륭 : 60년대란, 어느 면에서는, 문학이나 예술에 있어 행운의 시기라고 해야겠죠. 지금도 좋은 비평의 눈을 가졌지만 침묵하고 있는 분들이 더러 있어요. 비평가가 없는 것은 아니에요. 작가가 없는 것이지. 언제까지 선배들 것만 자꾸 끌어다가 할 수 는 없는 노릇이고, 어른들 작품이야 설핏 손도 못 대고. 그런데 요즘에는 한 사람이 시도 쓰고, 소설도 하고, 비평도 하고 하는 것 같던데.

이문구 : 장르 개념이 많이 깨졌어, 딱히 그런 거 고수할 필요도 없는 것이고.

 

문예 2000 : 선생님의 작품 읽기에는 문학 외적인 관심도 상당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박상륭 : (제 작품의 이해에 관해서는)종교의 부분이겠죠.

 

문예 2000 : 이문구 선생님은 최근에 예전에 발표하셨던 작품들을 추려서 네 번째 전집까지 내시고 계신데, 선생님의 경우는 아겔다마를 후학인 김사인씨가 정리하여 발간하였고, 다른 작품들도 김현 선생을 통해 나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자가 생각하기에는 창작 외적인 활동에는 등한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박상륭 : 발표를 등한시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안 읽어주니까 출판사에서 출판하기를 꺼려해서 그렇죠. 돈이 좀 되어야 하는데, 제 소설로 돈 만들었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없어요. 그리고 사실 캐나다에 있을 때는 장사하는데 여념이 없었어요. 30년의 공백이 있었기 때문에 잘 모릅니다. 그 문제(출판)에 대해서는 이문구 선생의 인용구를 넣어 주시죠.

이문구 : 작가도 다 밥 먹고 살아야 하는데... 순수 문학을 하는 사람들한테는... 물론 독자는 정예화됩니다. 이게 위안이면 위안이고, 그것으로 자부심을 갖고 살 수밖에 없어요. 작가란 창작하는 것이 일이지, 발표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죠. 그런 중에서도 창작 의지를 꺾지 않는 것, 시재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 그게 가상한 거지요.

 

문예 2000 : 지금 출판계는 전례에 없는 공황상태입니다. 어떤 식으로든지 특단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데요.

박상륭 : 그게 어렵겠죠. 총체적인 지원이라는 것이.

이문구 : 정부가 나서서 해결될 일이 아니고, 또 바라지도 않아요.

 

문예 2000 : 캐나다에도 한인 문협이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압니다.

박상륭 : 있습니다. 그런데 전, 일년 삼백 예순 다섯 날 장사를, 책장사를 했습니다. 영어 책장사, 장사에 몰두하다 보니까 그런 데 나갈 수도 없고, 또 하도 안나가니까 사람들이 잊어버리기도 하고, 이민을 와서 잊고 지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저라는 사람이 있는 지도 모르고... 그런데 오히려 그게 편하더군요.

이문구 : 교포문학이란게 있기는 있어요. 그런데 거의 사분오열 되어있지요. 일본같은 경우 조총련에도 있고, 민단계도 있고...하지만 별의미가 없어요. 친목적인 도모밖에는, 문학적인 활동은 미비한 상태이지요.

박상륭 : 우선, 서로 외로우니까 만나는 거지. 외로우니까...

 

문예 2000 : 그런 의미에서 或者(혹자)는 선생님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토속적인 것에의 성찰이나, 무속, 우주적인 신화의 천착이 고국을 떠나있었기 때문에 심화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박상륭 : 그렇게도 볼 수가 있겠죠. 한 우물 속에 있...헌데 어차피 재주가 그쪽 뿐이니까...

 

문예 2000 : 전에 김현 선생이 박 선생님을 조이스나 프루스트에 비유한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조이스의 경우, 그의 말을 빌면 마비된 조국’, 아일랜드를 떠나지만, 그럼으로써 더욱 더 아이리쉬한 것에 들러붙을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는데요.

박상륭 : , 아무렇게나 봐주십시오(웃음). 김현 선생이 이야기 한 것은 내용적인 면이 아니라, 형식적이 것, 즉 문체적 측면일 겁니다.

 

문예 2000 : 문체적인 면에서는 호흡을 중요시한다고 할까요. 장편의 ()를 읽는 듯한 느낌도 들고, 古語體(고어체)의 탄력적인 분절을 볼 수 있는데, 특별히 의도하셨습니까?

박상륭 : . 운율을 좀 넣었습니다. 그래서 시인들이 좋아하고 많이 읽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순수한 산문 쪽으로는 이문구 선생한테 물어 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은데요.

 

문예 2000 : 선생님 작품에서 나타나는 삶과 죽음에 대한 문제들은 성(sex)을 통해 형상화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구원의 길을 제시함에 있어 중층적인 비유를 끌어들여 복잡한 순환구조를 이루고 있는데요, 선생님 문학에서의 성과 죽음의 의미란 어떠한 것입니까?

박상륭 : 성에 관해서는 陰陽(음양)사상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발전하여 상사나 니르바나(Nirvana), 色界(색계), 空界(공계)로 나아갑니다. 그것이 종교에 입각하여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 탄트라입니다. 제가 이야기하는 성은 탄트라적인 성입니다. 육신의 쾌락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것은 아니고, 말하자면 상사나 니르바나가 하나다, 즉 일원화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세계관은 서구의 이원론이지요. 그러나 이원론은 많은 정신적인 장애를 야기시켜 왔습니다. 그렇다면 이를 극복하고 어떻게 일원론이 가능한가. 그것을 보이기 위해 성의 형태로 나타낸 것입니다. 죽음, 구원, 재생, 순환은 새삼스럽게 이야기 할 것이 아니고, 책에 나와 있습니다.

 

문예 2000 : 그래도 그 죽음의 양태란 것이 너무 파격적이라서...

박상륭 : 시간이 좀 걸렸죠. 한 열 번씩 고쳐쓴 것 같습니다. 죽음을 다룬 것은 죽음의 한 연구까지이고, 그 이후에는 우주적인 실다움의 노래, 우주적인 사색을 추구한 것이 칠조어론입니다.

 

문예 2000 : 외람된 질문입니다만, 문학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박상륭 :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종교고, 인간을 풍부하게 하는 것은 예술 아니겠습니까? 제 생각엔 문학으로는 구원이 안 됩니다. 구원은 종교적인 문제라서, 그런데도 문학을 하는 사람들 중에 그런 야심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종교를 문학 속에 끌어들이는데, 문학처럼 좋은 수레가 없거든요. 문학은 종교처럼 읽기가 팍팍하지 않죠. 예를 들면 도스토예프스키나 괴테같은 사람들처럼 종교적인 자기 구원의 진리를 담는 수레로써 문학을 택하는 수가 있습니다. 허나, 문학 자체가 구원을 하는 것은 아니죠. 영혼의 구원은 어떤 종류든, 이를테면 무속이든, 아니미즘이든 뭐든, 종교의 형식을 취할 때 이루어집니다.

 

문예 2000 : 선생님 작품 속에 드러나는 人神化(인신화)로 이해해도 될까요?

박상륭 : ......하하...

이문구 : 난 그런 질문은 한 마디로 딱 잘라서 얘기하지 문학은 해결사가 아니다”(일동 웃음)

박상륭 : 오늘날 문학을 읽는다면, 대부분의 문학은 우리를 풍부하게 하기는커녕, 정신을 저하시키고 타락하게 합니다. 문화에 비유해서 가령 노래방이라는 것은, 어느 면에 있어서는 교회와도 맞먹고 기도와도 맞먹는 것인데요, 쌓인 것이 있으면 거기 가서 풀어요. 노래방은 제가 생각하기에는 굉장한 교회당입니다. 그것은 어느 정도 해소의 역할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정신을 저하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어야 된다, 있어야 된다는 것 보다는, 한편에서 대중의 ()를 떨어뜨린다면 다른 한 쪽에서는 고양시키는 것이 있어야 할 텐데, 문학이나 예술이 그 역할을 못하고 있지요. 결국은 저하되다가 어디까지 이르게 될지 모를 정도가 되지요. 황금만능주의, 쾌락만능주의, 그렇게 흐르다가 어디로 갈지 모르죠. 축생도까지 떨어져 내리겠죠. 이제 거의 문전까지 내려간 것처럼도 보이니까. 그래서 이 시대를 향해서 義人(의인)이 몇이나 있느냐 묻는다면, 다섯만 있어도 내가 세상을 멸하지 않으리라는 그 말이 주어져야 합니다.

 

문예 2000 :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종교가 규범화된 종교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박상륭 : 종교란 박상륭이 써 놓은 것을 누군가가 규범화시키면 종교가 됩니다. 예수도 종교를 만들려고 한 것이 아니고, 석가모니도 그저 가르침을 주려고 했던 것인데, 누군가 그것을 규범화 한 것이죠.

 

문예 2000 : 작품마다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변화를 추가한다 함은 상당히 어렵다고 생각하는데요.

박상륭 : 하나의 진리를 추구하다 보니까, 열 편을 쓰더라도 그저 한편이죠. 소설은 한편만 썼다고 이야기 합니다. 관촌 수필이 여러 편이지만 결국은 한 편이듯이.

 

문예 2000 : 선생님의 화두가 어떻게 심화되어 나아갈지 궁금합니다.

박상륭 : 이젠 더 심화될 것도 없어요. 또 다른 종교적인 천재가 나오기 전까지는 거기까지(칠조어론)가 끝일 겁니다.

 

문예 2000 : 그 말씀은 앞으로의 소설 창작은...

박상륭 : 소설은 아니죠. 소설에 관해서는 우리 이문구 선생한테 물어보세요.

이문구 : , 이래저래 잡다한 것을 많이 써도, 종국에 남는 것은 하나지요. 60평생 썼다한들, 다 남기를 바라느냐, 그건 아니에요. 한편, 좋은 작품 하나 쓰려고 다른 것은 다 연습하는 거지.

 

문예 2000 : 그렇다면 이후에 작품으로 박 선생님을 만나 뵙기는 어렵다는 말씀이신가요?

박상륭 : 글쎄 뭐, 머릿 속에 글이 없어요. 아무리 흔들어 봐도 글자가 떨그럭거리는 소리가 없어... 잡소리를 써야 되는 경우가 있ᅌᅳᆯ지는 모르겠지만...이젠 야심도 배포도 없습니다.

이문구 : 작가는 놀아도 노는 게 아니지. 작가는 쓰든지, 읽든지 하는 것 중에 하나에요.

박상륭 : 소설이란 우주보다도 그럿이 더 커요. 뭐든지 다 만들어 냅니다. 의학, 물리학, 천문학, 거기 안 들어가는 게 없습니다. 시는 그릇이 작아서, 담을 수 있는 것이 낙엽 한 장, 도토리 몇 개 담으면 꽉 차버린다고.

이문구 : 그거 시인들이 들으면 펄쩍 뛰겠네.(웃음)그네들은 시 한구절에 우주가 있다 하는데.

 

문예 2000 : 90년대 소설에 대한 논쟁은 21세기를 목전에 둔 오늘날까지 의견이 분분한 것은 사실입니다. 선생께서는 요즘 소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상륭 : 말씀드렸듯이 전 30여년의 세월을 공백으로 보냈고, 한국에서 시집은 많이 보내줘서 읽었습니다만, 소설은 접할 기회가 별로 없었어요. 그 점은 한국문학을 위해 평생을 노력해 온 우리 이문구 선생이 얘기를 해줬으면 좋겠어요.

이문구 : 세상이 변하니까 소설도 변해야지. 매일 같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런데 전처럼 많이 읽히지는 않아요. 그리고 너무 컴퓨터에 의지하려고 해요. 난 컴퓨터는 쓰지 않는데, 컴퓨터를 사용하는 사람의 얘기는 무언가 계속 써야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 해요. 보고 있으면 깜빡거리니까.(웃음) 원고지에 쓰면 숙고를 하고 쓰고 또 고쳐 쓰고 하는데...아마 능률은 있을 겁니다. 많이 쓸 수 있으니까. 그런데 우리 같은 사람들은 재미없지. 싱겁고...또 사이버 소설에 대해 많이 거론을 하는데, 대부분의 90년대 작가들은 실체험보다는 그저 책상 위에서 컴퓨터로 짜내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박상륭 : 그러니까 그 얘기는 나쁘게 말하면 가짜배기란 이야기겠구먼.

이문구 : 하나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보다, 작품마다 경향이 달라지는 작가들이 있어요. 자신의 체험보다는 그것을 독자를 찾아서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작가들이 광고 모델이 된다든가, 먹고 사는 자체는 뭘 해도 상관없지만, 글쓰기 만큼은 진중해야 될 필요가 있어요.

박상륭 : 그거 좋은 얘긴데, 좋은 얘기야.

이문구 : 평론가가 아닌, 같은 동업자의 입장에서 젊은 세대의 작가들은 이러쿵 저러쿵 말하기는 아직 이르지요. 실체험이라고 하는 것은 어디 가서 억지로 의도를 하라는 것이 아니에요. 허나, 요즘 세대들은 삶 자체가 단순해요. 옛날엔 동숭동이면 밀다원 같은 데서 서로 만나 차도 마시고 했는데, 이젠 단절되어서 왕래도 없고, 어쩌다가 사람들 잔뜩 모인 곳에서 언뜻 언뜻 보기만으로는 서로 얘기도 안 되는 것이고.

박상륭 : 그래, 요즘엔 만나서는 적당히들 하고, 우리 60년대식으로 멱살 잡고 그런 것은 없다며.

이문구 : 서로 무엇으로 고민하는지 알 수가 없지. 젊은 세대는 구세대를 이해 못 하고, 또 당신네들이 전에 해먹을 것 다 해먹었기 때문에 우리는 쓸 것이 없다는 말도 듣는데, 그건 딴 얘기죠.(웃음) 그렇다면 그 말은 결국 작가가 나올 수 없다는 얘기지. 어쨌든 체험의 내용은 다를 터인데...

박상륭 : 그 말은, 아마도 그들이 문학적인 장르에서 새로운 독특한 것을 창의하려고 할 때에 모든 면에서 벽에 부딪힌다는 뜻일 겁니다.

 

이문구 : 자기 세계를 갖지 않은 사람들의 얘기지. 독자들도 그래요. 워낙 독자층이라는 게 허무맹랑하고 불안하다 보니까, 예를 들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가 베스트셀러가 되면, 과연 그게 작품에 대한 진정한 보상이냐 하는 것이지. 우리가 문학공부 할 때하고 지금 하고는 다릅니다. 물론 어느 시대, 나라나 대중문학은 있지만, 너무 통속적인 것에만 관심을 갖다 보니 순수문학을 추구하는 3,40대 중견들의 작품이 잠자고 있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이건 큰 문제지. 문학적 실험이란 것도 제 배운대로만 글 쓰면 되는데, 머릿 속의 용량은 한계가 있으니, 같은 걸 되풀이할 수는 없고, 그래서 방법만 좀 다르게 꼰다든지 해서, 말은 실험이라고들 하지만 실은 별 실험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독자들도 곧 식상해하지. 예를 들어, 80년대후반, 90년대초의 노동문학이다, 이념문학이다 하는 것이 실은 도식적으로 판에 박힌 거다 이거에요. 투쟁이다, 노동자가 주인인 세상을 만들자, 그거 하나로만 여러 사람들을 붙든다는 것은...그런 작품은 한, 두편만 읽으면 되는 거에요. 결국 지금에 와서 자연스럽게 와해되어 버리잖아요. 젊은 세대의 문학도 그런 때가 올지도 몰라. 박상륭이나 이문구같이 까다롭다, 어렵다하는 것만 독자들에게 외면받는 것이 아니고, 쉽게 읽힌다고 독자들에게 갔던 것들이 어느 날 외면받게 될 지도 모릅니다.

박상륭 : 좋은 얘기야.

 

문예 2000 : 후학들과는 자주 만나십니까?후학들을 보시면서 느끼시는 바가 있다면?

박상륭 : 장작을 태우면 숯이 되는데, 지금 불을 한번 붙여야 합니다. 재가 된 것은 아직은 아니고, 후배들을 만나면 소리를 치는 것이 어떤 식으로든 불이 한번 붙어야 되는데...우리 60년대처럼 결렬한 때가 없었어요. 요즘은 적당히 만나고, 얘기하고, 헤어지고, 그게 다 숯들이 하는 짓입니다. 거기에 불을 붙이려면 어찌해야 되는 건가? ()이 없어요. 사회적인 여건이 변해야 되는 건가...

이문구 : 사람이 많이들 변했어. 체질이 변하고...

박상륭 : 조금은 책임감을 느껴야 합니다. 책을 많이 팔고, 자가용 타고,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니고, 자기가 살고 있는 당대에 대해서 크게 짐을 지려면 그릇이 커야되고...자기 그릇만큼은 책임을 져야 해요. 과연 자기가 지나감으로 해서 흙발자국만 남기느냐, 어느 한 구석에 떨어진 휴지라도 주워내느냐, 그 만큼의 책임을 져야 되겠죠. 작가들이 할 일은 첫째, 국민들의 의식을 끌어 올려야 해요. 그런데 그런 작가들이 많지 않아요. 그런 작가들은 참으로 대국적인 의미에서 선지자입니다. 그런 걸출한 인물들이 자꾸 나와야 합니다.

이문구 : 작가들은 형벌에 처한 거야. 평생 공부를 해야 해.

 

문예 2000 : , 두 분의 말씀, 金科玉條(금과옥조)로 새겨 듣겠습니다. 장시간의 인터뷰에 시간을 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모쪼록 건강하시고, 오랫동안 건필하여서 문단에 많은 가르침을 주십시오. 고맙습니다.

 

인터뷰 後期(후기)

 

문단의 두 奇人(기인), 박상륭 선생과 이문구 선생을 만나뵙기까지 적잖은 마음의 부담을 가졌던 것이 사실이다. 필자도 문학관계의 일을 하고 있지만 , 말석에도 끼지 못하는 不敢(불감)의 입장이 그렇거니와, 궁박한 글읽기의 短見(단견)으로, 행여 취재 도중 ()가 되는 질문을 하지 않을까 노심초사 했었다. 다행히 성의껏 답변해 주신 덕택에 인터뷰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始終(시종)하였으나, 好事(호사)好事(호사)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필자의 미욱함은 식사를 같이 하자는 두 분의 손길을 뒤로 하고, 허위 돌아나올 수 밖에 없었다. 이점, 결례를 범한 것 같아 지면을 빌어 사과드린다.

박상륭 선생은 다시 벤쿠버로 떠났다가 여름이 되어 귀국할 예정이다. 다시 뵙게 된다면 선생의 심원한 작품 세계를 한번 더 기웃거릴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물론 세대론에 언사를 높이시던 이문구 선생의 가르침을, 이제는 거한 지청구로 들을 각오도 해 본다.

 

두 분의 건강을 기원한다.

 

- 戊寅年(무인년) 盛春(성춘) 사무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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