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들은 ‘박철수’하면 영화 <301, 302>부터 떠올린다. 그리곤 <산부인과>, <학생부군신위>, 최근엔 <성철>이 박철수 감독의 영화계보로 으레 따라 나온다. 하지만 박철수 감독은 78년 데뷔 이후 줄곧 방송과 스크린을 오가며 쉬임 없이 작품을 만들어 내왔던, 경력 20년의 중견감독이다. 그가 중견감독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레 충격으로 와 닿는 이유는 한국영화 제작 시스템이 만들어 낸 고질적인 악순환의 관행에서 비롯된다. 90년대 들어 한국영화는 소위 말하는 영화의 르네상스를 맞이했다. 그 르네상스라는 것이 만들어낸 유행은 새롭고 감각적인 것을 요구하며 끊임없이 신인감독들을 데뷔시켜 놓고는 이내 사용 폐기해 버리는 것이었다. 흥행에 실패하였거나 그들의 새로움이 현실에 부적합하다고 판정되는 순간 그들은 폐기처분되는 것이다. 반면에 중견 감독들은 그들이 가진 연륜과 경험은 오래되고 낡은 것으로 치부되어 그들 환경으로부터 밀어내버림이 당연시 돼왔다. 이와 같은 한국영화의 고질적 풍토 속에서 박철수는 제 2의 전성기를 누리며 꿋꿋이 버티고 선 몇 안되는 한국의 중견감독인 것이다. 그가 자신의 독특한 영화문법을 내세우며 새로이 영화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스스로 포기와 체념이 빠릅니다. 40대에 들어섰을 때 나에게도 위기가 있었습니다. 방송국으로 돌아가느냐, 학교선생을 하느냐. 그러나 나에게 주어지는 억압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환경으로부터 밀어내기와 스스로 포기하는 갈등의 순간에 그때 영화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죠. 때를 기다리다가는 창작 주체자 개인은 소멸하고 맙니다. 때는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자기 스스로 환경의 변화를 이끌어 내겠다는 의식의 자각만이 필요할 뿐이죠.”
한국에서 40이라는 나이는 환경으로부터 밀어냄과 동시에 스스로도 새로운 무엇인가를 하기보다는 체념과 포기가 더 빠른 나이다. 이때 박철수 감독은 주어진 환경과 조건에 적응하기 보다 변화를 이끌어 내겠다는 도전의식이 앞섰다. 기존의 제작 시스템에서 뛰쳐나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형식의 영화언어와 소재로 박철수의 영화를 시작한 것이다. 이때 박감독의 시선을 잡은 것은 ‘일상의 탐구와 접근’이었다. 그간 많은 TV드라마와 영화 사이를 오가며 그는 스토리텔링에 지쳐있었다. 거짓말에 거짓말만을 만들어내는 스토리 대신, 카메라의 앵글을 ‘일상’으로 착목했다. 섬세하게 더듬어가는 일상 속에서 사람의 모습을 찾고 싶었던 것이다.
“이전에는 주제노출의 시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데올로기가 무너진 90년대 현실은 더 이상 소설가의 상상력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강한 주제를 네러티브 구조에 담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우리의 일상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거기서 관객이 영화에 투영된 자신의 일상을 보고 어떤 느낌을 얻어간다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한번보고 잊어버리는 영화보다 끈끈한 무엇인가를 느껴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영화에 담긴 일상은 관객 개인의 일상이 되며, 자신의 삶을 투영시켜봄으로써, 자기보기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영화는 일상을 과장하지 않고, 차분히 관찰하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 삶은 무척이나 아름다우며 따뜻할 수도 있다는 식의 지나친 감성적인 시선은 피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냉소적인 웃음을 머금고 그의 카메라는 일상 곳곳을 파고든다. <301, 302>에서는 육체와 욕망의 문제를 여성과 사회에 내던졌으며, <산부인과>에서는 생명의 탄생이라는 막연한 신비감에 감춰진 이면을 샅샅이 들추어 내었다. <학생부군신위>는 죽음을 매개로 벌어지는 장례식 현장에서 좌충우돌하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현재 박철수는 삶과 죽음을 아우르는 종교적 물음에 서 있다. 20세기와 21세기의 길목에서, 20세기의 탐욕과 물질, 이데올로기를 정리할 수 있는 영화, 바로 <성철>이다.
“영화 <성철>은 단지 일대기를 그리고자 한 것은 아닙니다. 지금에 와서 일대기는 의미가 없죠. 한국불교의 특징인 ‘선’사상을 영상화 하는 작업은 꽤 힘들었습니다만, ‘선’사상을 통해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휴식의 시간을 지구촌 모든 사람들이 갖기를 기대합니다.
그는 한국불교의 ‘선’사상을 세계시장 진출이라는 야심찬 의도를 가지고 캐릭터하여 상품화 시켰다.
이미 박철수의 영화는 일본 시장에서 인정을 받았다. 이를 기반으로 한 다음 영화 <가족시네마>는 한일 문화교류의 첨병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가족시네마>는 일본배우 출연문제로 일본문화 개방논쟁과 맞물려 있는 상태다.
“일본문화 개방이냐, 아니냐의 논란은 무용합니다. ‘이것은 안 된다’와 같은 금지문화가 있어서는 안 되죠. 문화와 문화는 충돌하면서 자국 국민들 스스로에게 판단의 권리가 주어져야 합니다. 한일 문제 역시 열린 사고로 바라봐야죠. 한국은 여전히 과거 시점에 머물러 있는데, 이것은 근시안적 사고입니다. 이에 반해 일본은 한국과의 문화교류를 위한 완벽한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특히 한국시장에 대해 매우 의미 있게 매력적으로 다가서고 있습니다. 우리의 시장 이익을 위해서라도 일본의 문화개방에 찬성합니다. 그들의 고급문화부터 단계적으로 선별해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그는 한일 문제를 푸는 열쇠로 일본이라는 나라를 미래지향적인 동반자 관계로 바라보는 의식의 전환과 사고의 열림을 주장한다. 그것이 한국영화를 세계화 하는 첫 출발점이 될 것임을 그는 자신 있게 말한다.
“한국의 영화시장은 고착화되어 있습니다. 다양하지 못한 장르, 한정된 영화시장. 한국영화는 가치없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문화피해 의식도 팽배해 있습니다. 한국의 영화감독들은 처음부터 한국관객만을 대상으로 영화를 만들죠. 이것부터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협소한 시각은 버려야 합니다. 일방적으로 사오는 Buy Marketing에서 이젠 Sell Marketing을 할 때인거죠. 그러기 위해서는 창작주체자의 의식의 전환과 세계적 영화담론, 글로벌 랭귀지화 시켜야 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박철수는 한국을 대표하는 야심만만한 제1의 작가주의 감독이라 할 수 있겠다. 작가론은 감독을 영화사업의 종속물로 보지 않고, 영화의 작품성을 책임지며, 더 나아가서 영화 속에 자신의 생각을 담아내는 ‘창조자’로서 감독을 보는 관점이다. 그런데 대개 실험영화의 작가들은 현실의 땅 위에 서있지 않고 자신의 내면세계에 함몰된 도피적인 개인이기 쉬웠다. 이것은 그들에게 대중성의 실패를 가져왔다. 그러나 박철수는 보기 좋게 실험성과 함께 흥행에도 성공했다.
“영화는 파괴성의 미학입니다. 기존의 보편성을 전적으로 무시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요즈음 신인감독의 영화는 실험성에 앞서 눈치보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가지고선 그들의 작품엔 새로움보다 계절에 따라 옷을 갈아입듯 유행만이 있을 뿐이죠. 기존의 질서를 깨뜨리고 공격할 때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대중과의 고립을 두려워해서도 안 되죠. 창작 주체자가 대중의 무리 속에서 같이 꽹과리, 장구를 치고 놀아서는 발전이 없습니다. 예술가의 위치는 새로운 질서를 제시하며 대중과 사회를 선도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박철수 감독에게 “영화를 왜 만드는가?”하는 질문은 의외로 한참이나 그를 머뭇거리게 했다.
“인간은 영원한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 종교를 가집니다. 문화 역시 보다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 권리를 누리기 위해 존재합니다. 나 자신에게 영화 창작은 끊임없는 고통의 길입니다. 목적과 도달점이 보이지 않는 길이죠. 그 고통을 딛고 일어서면 쾌락은 잠시 뿐이고 또다시 탐험과 도전이 기다립니다. 여기서 벌어지는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 자체에 매력이 느껴집니다.”
결국 그는 “영화 만들기가 재밌다.”는 말 한마디로 자신에게 있어서 ‘영화’라는 존재의의를 정리해 버렸다. 박철수 감독에게 고통은 절망이 아니라 도약의 발판이다. 주어진 조건과 환경에 단순히 적응하기보다 끊임없이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며, 알지 못하는 부분에 대한 자기성찰의 노력은 박철수를 한국의 영화감독에서 세계의 영화감독으로 위치지어줄 것이다. 비좁고 진부한 일체의 것으로부터 자유를 꿈꾸는 박철수식의 영화미학이 세계인의 공감 속에 자리잡는 날을 기대한다.
- 김 윤경(본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