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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 속에서의 Eroticism ( 표현과 그 한계 ) 하 - ( 문예2000 - 1998년 여름호 ) - 한국시문화회관 - 문예도서관 - 작가와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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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예술에 대한 지식, 정보, 중요한 자료들을 편집자들이 집필해 놓은 공간입니다.

한국 문학 속에서의 Eroticism ( 표현과 그 한계 ) 하 - ( 문예2000 - 1998년 여름호 ) 

 

 

허혜정 : 민선생님께서 여성의 성과 언어에 대해 말씀해주셨는데, 여성은 멀티플하고 내향지향적인 반면, 남성육체는 힘 있고 외부 지향적이며 추상화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맥락으로 해석됩니다. 저는 부분적으로 동의할 수 없습니다. 여성적 글쓰기를 바라볼 때 여성의 육체를 고정된 틀 속에 넣고 그런 방식으로 여성적 글쓰기의 전형인 양 오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성과 남성은 서로 포개지는 부분이 많고 양성성이 존재합니다. 육체적 의미의 양성성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문학에서 이런 부분이 복합적으로 나타나죠. 그럼에도 남성비평가든 여성비평가든 일면적으로만 해석하는 비평은 잘못되었습니다. 페미니즘 진영에서도 여성바디를 학대하고 모욕하는 위악적 진술들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실제로도 지금까지의 여성성 찾기는 탈 남근의 지향이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여성성을 얘기하려면 여성들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남성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되는 권력욕, 논리력, 치밀함과 같은 능력이 여성에게도 있습니다. 이것을 과소평가하고 새롭게 성을 연다는 구실로 또 다른 기름을 만들지 않나 싶어요. 박남철 선생님 얘기에 많은 부분 동의합니다. 성의 자유주의와 급진주의에서 세대가 역전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젊은 세대들이 새로운 금욕주의가 반작용으로 나오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성이 과도하게 자유 방만해지고 흘러 다닐 때 또 하나의 억압과 공포가 될 수 있겠죠. 생활에서 받아들이는 성은 방만함의 규제가 어느정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민용태: 남성중심적 문화는 제도권 문화였습니다. 남성이 지배한 사회에서 여성에게도 남성문화는 투명했었습니다. 여성만의 금남의 문화는 있는 반면에 말입니다. 쾌락의 상징성, 주제의식은 남성의 중심적 글쓰기 영역이라 한다면 감성적이고 멀티플함은 여성만이 가지고 있는 점이라 할 수 있죠. 이런 의미에서 여성적 글쓰기는 존재필요를 가집니다. 물론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은 문화적 가치에 의해서 형성되었고 양성성은 다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말이죠.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담론이 제일 먼저 밖으로 나왔으며, 성이 자유롭게 해방되면서 미주화가 시작되었음을 외국의 사례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끝없이 자유의 영역을 넓혀왔으며 역사적으로 가장 많이 억압되었던 성과 음란의 영역이 민주화의 역사였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검열은 한다면 이런 방법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청소년과 성인오락물의 레벨제를 도입해 선택의 자유가 주어지는 형태로 말입니다. 문학에서 가장 필요한 자양분인 자유로운 상상력을 규제해서는 안 되죠. 이것은 가장 무서운 독재입니다.

 

사회(고두현): 에로티시즘의 역사를 훑어보자면 고전주의는 정상적인 섹스관계로, 낭만주의는 구강과 항문, 모더니즘은 레즈비언과 게이, 포스트모더니즘은 에이즈로 교차시켜서 인식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김별아, 배수아, 백민석, 우승제와 같은 작가들의 소설속에 나타나는 성의 이미지들은 시니컬하고 뒤틀려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는 가부장제도의 반항의 의도로 또는 바깥의 과녁대신 내면의 침전한 형식으로도 볼 수 있죠. 왜 이러한 표현들이 요즈음에 특히 많이 등장하고 젊은 작가들이 집착하느냐의 문제로 논의해봤으면 합니다.

 

박남철: 제가 젊었던 시절에도 젊음의 열기로 씹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지금도 꽤나 많이 하고 있는 셈입니다만.) 그러나 저희가 젊었던 시절에는 그 생각 이상으로 다른 생각도 더 많이 했었기 때문에 지금의 새로운 세대들이 저희 락은 세대들이 가진 씹생각이외의 제한된 소재들에 대하여 무조건 비판만 하셔서도 곤란한 일일 것입니다.

 

민용태: 우리문학에는 지나친 리얼리즘 위주의 편견이 소설에 젖어 있습니다. 우리문학의 가장 큰 헛점인 지나친 리얼리즘은 우리문학을 황폐화 시켰으며 우리 문학에서의 자유로운 성의 표현을 좁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위주의 상상력의 제한은 성의 표현을 협소화 했습니다.

 

홍영철: 나는 개인적으로 작품 속에서 의 표현문제로 제재를 받거나 한 적은 없으므로 인사이드적 입장은 아니지만 관심은 많이 갖고 있습니다. 최근 표현을 접했을 때, 왜 이렇게 많이 나오는가 하는 문제에서는 이렇게 생각해봅니다. 그것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진 사회적 분위기에서 비롯된 문예사조의 한 과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성의 분배원칙에서 물질을 많이 가진 사람이 역시나 을 많이 향유한다. 능력이 있는 사람이 많이 취하는 것이 성의 분배법칙에서도 적용된다고 볼 수 있겠죠. 우리 나라 역시 70년대 이후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면서 의 표현이 넘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문학 속에서 왜 이처럼 많이 얘기되는가 부분에서는, 문학을 하는 행위를 자아의 본질을 찾아가는 행위라 볼 때, 성 역시 자아를 찾아가는 행위의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기하급수적으로 복잡해지고 다변화되는 현대사회에서 진정한 자아를 찾기란 굉장히 힘든 작업입니다. 그런 현상속에 하나가 문학작품 속에서 성을 다루고 있는 방식입니다. 여기에서 반성의 지점은 삶의 성찰없이 문학작품 속에서 인강의 을 다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삶의 진지한 성찰이 담겨 있는가. 이 부분은 짚어봐야 할 것입니다. 삶의 성찰없는 성의 묘사는 포르노와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민용태: 도덕과 삶은 이중적입니다. 사회제도는 윤리적인 것 같은데 실제로는 음란한 구석이 생활속에 많이 있습니다. 이처럼 지행합일 언행일치가 이루어지지 않는 상시키는 예술의 진솔성을 찾아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박남철: 아침에 일어나 무슨 일을 하든, 어디를 가든 반드시 한 가지 이상의 깨달음이나 배움을 얻을 수 있는 삶을 살 수만 있다면 더 없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저는 좀 전의 우리 홍 형의 말씀에도 또 한가지의 문학사적인 큰 배움을 확인합니다. 최영미씨의 시집 잔치......를 저도 좀 봤는데, 좀 번역투라서 그렇지 시 참 잘 쓰셨더라구요. 여성 시인으로서는 가장 먼저 씹얘기를 정면으로 하신 셈이며 가히 문학사적인 일이라 평가될 만도 하겠더군요. 그리고 좀 전에 페미니즘 얘기가 나왔었는데, ‘여성적 글쓰기의 문제에 대해서 좀 말씀드려보자면, 어느 시대건 그 시대가 문명적인, 문화적인 시대였다면 여성은 늘 찬양받는, 찬양받은, 찬양받아 마땅한 존재였다고 봅니다. 진정 가치 있는 문학은 우리의 저 위대한 여성을 결코 무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성들 스스로의 열등 의식이나 피해 의식의 문제에 대해서 좀 생각해보시라고 권유드리고 싶군요. 우리의 최승자 같은 시인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황지우나 김정환 같은 시인들보다 못한 시인이라고 그 누구도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구십년대의 최대의 시인으로 허수경만한 시인이 과연 있을까 여러 차례 혼자서 생각해보고 있기도 합니다. 어쩌면 우선적으로 페미니즘 운동은 여성들 스스로의 열등 의식부터 먼저 해결해야할 일이 될지도 모릅니다. 좀 전에 우리 홍 형께서도 말씀하셨듯이 []의 탐구는 자기 또는 자아 찾기와도 관계있는 문제일 것입니다. 우리 문학에서 이를 문학적으로, 문학사적으로 가장 진지하게 천착해 들어가 계신 분이 저는 죽음의 한 연구를 쓰신 박상륭 선생이시라고 봅니다. 또한 저 인도의 고대 사원들의 탑신에 부조되어 있는 수많은 남녀교합상들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우리는 세계의 고전적인 종교에서까지도 남녀간의 자연스런 씹하기를 무조건 금기시만 한 건 아니라는 사실을 흔쾌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허혜정: 논제에 오해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페미니즘 비평가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습니다. 페미니즘은 미학인데 정치학적으로 말해지고 있습니다. 상실감이나 회복에 대한 강박관념이 열등감으로 표현되는 거 같습니다. 그럼에도 페미니스트 앞에서 반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 남자는 없습니다. 그런 남자는 죽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코드로서 젠더가 아닌 문학에서 나타나는 여성성은 남성들이 생각하지 모하는 잔혹함과 폭발력이 있습니다. 남성성 역시 정확히 규정되지 않은 만큼 여성성 자체도 역동적인 면이 있는 것입니다. 문학을 비평할 때 언어에 관한 논의를 중심으로 끌고 들어오지만 언어는 남성만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봅니다. 페미니즘을 매도하는 분위기도 있고 페미니즘에 경도된 분위기도 있는데 이것이 문학을 하는데 아름다움과 창조력을 보강해 주는데는 도움이 되는 관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박남철: ‘그런 남자는 죽었다와 같은 단정적인 표현은 되도록 이런 자리에서는 피해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저는 들기도 합니다. 물론 저 같은 사람들의 글[]에서도 오히려 아니마 anima'쪽으로 더 강하게 읽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조차 잘 알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건 그렇게 보는 사람들의, 더 정확히 얘기해서 그렇게 보고 싶은 사람들의 문제이지 저 같은 사람들의 문제는 아니라는 사실까지 잘 알고 있기도 하지요. 두 사람이 있는데, 유독 한 쪽에서만 아아, 나는 짓밟히고 있다. 나는 시방 억압받고 있다. 고 필요 이상의 말들이 많이 나온다면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사실상 힘이 없어서 짓밟히고 억압받고 있는 상황을 표현해주는 일이 되기는 하겠지만, 스스로 자신을 지키지 못한 부끄러움에 대해서는 아무런 자각도 없는 사람임을 그 역으로 드러내주고 있는 일이 될지도 모를 일일 테니까요.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열등감 대신 우선 자신감부터 키워나가야 될 일이라고 봅니다. 특히 이 아이엠에프 [I am F] 시대에 있어서는.

 

사회(고두현): 오늘 이 자리는 우리 문학에서 성을 주제로 나타나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를 이해하는 데 의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최영미 시집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시에 대해 한 서점에서 설문조사를 했는데 사람들은 컴퓨터와 씹하고 싶다를 가장 많이 꼽았습니다. 왜 그러냐 했더니, 대리만족을 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읽을 것인가로 정리하면서 이 자리를 접었으면 합니다.

 

민용태: 컴퓨터는 기계인 동시에 글이며, 글쓰기입니다. 이 때 나는 숨 쉬고 있는 사람입니다. 컴퓨터와 섹스 한다는 것은, 생명성과 글 사이를 접합시키고자 한 의도로 봅니다. 그리고 이 때 말해지는 대리만족이라 함은 반미학적 용어이며, 예술을 쓸모없게 만듭니다. 카타르시스는 관장입니다. 관장이라는 것은 장을 순화시키는 것이지 대리가 아니죠. 장을 씻어내는 것은 자기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지나치게 문학을 제도나 윤리적 문제로 몰아치거나 통제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대화와 과오장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더욱더 다양하고 풍요롭게 얘기될 수 있을 상상의 자유만이 세계의 확장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기에 에로티시즘을 무조건 규제하고 금기해야 할 만한 사항은 아닌 것입니다. 오늘의 좌담이 참 즐거웠던 것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되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박남철: 허혜정씨께 여쭙고 싶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구사되었던 언어도 결국 남성의 언어였습니까?

 

허혜정: 한 페미니스트가 말하기를 여성이 파워를 가졌으면 여성의 언어를 만들어 냈을 꺼고, 그 언어는 다른 문화도 만들었을 것이다라고 했었지만 저는 그렇게 까진 생각하진 않습니다. 여성이 파워를 가진다고 해도 언어는 마찬가지였을 거라 생각합니다. 언어로 인한 억압은 남자 예술가도 마찬기지일겁니다. 남근적 언어와 힘에 복속하지 않고 의미를 이루어 낼 수 있는 문명의 위대한 발명품이 바로 문학이기 때문이죠.

 

박남철: 허혜정씨께 다시 여쭙고 싶습니다. 오늘 우리의 이 담론이 만약 너무 남성적인 것이었다면 여성적인 언어를 평소에 잘 구사하고 있다고 판단되시는 작가 분들을 몇 분만 들어주실 수는 있으시겠습니까?

 

허혜정: 남진우 시인, 채호기 시인과 같은 남성시인과 여성시인으로는 김은희 시인을 천거하고 싶습니다. 이들 작가들의 작품은 페미니즘에 접근하지 않더라도 섹슈얼리티적 시각에서 분석할 수 있습니다.

 

박남철: 대구, 부산 지역은 여성 언어가 특히 발달되어 있는데, 이것은 그 지역[]의 거칠고 투박한 남성 언어에 대한 여성들의 진정한 힘의 현실화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해보곤 합니다.

 

허혜정: 여성진영 내부에서도 논쟁을 거쳐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여성의 문화가 반드시 무대의 뒷면에 있느냐는 문제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보자면 불교에서는 미륵보다 관음이 훨씬 대중적이지요. 가장 무의식에 가까운 문화의 위치에서 왕권과 제도를 넘어서 문화는 또 다른 강한 힘을 가지고 흐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학에서 이러한 흐름을 다같이 바라보지 않고 한가지 제도 속에서 상실감과 열등감만을 주장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박남철: 원시 모계사회 이후 인류사에서 전통적으로 여성들이 억압되고 수탈되어왔던 것은 엄연한 사실일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 사회도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엄청 더 좋아져갈 것이 확실하고요. 제 자신의, 교직에만 오래 종사해보았던 경험에만 비추어서 말해볼 때, 때로는, 같은 봉금을 받으면서도,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학교의 모든 힘든 일에서 소외아닌 열외를 당하는(?), 그리하여 그렇게 열외를 당하는 사실을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여기는 여선생님들이 더러 얄미울 때도 있었습니다.

 

허혜정: 여성은 충동적이고 비일관적이며 비논리적이다라는 여성언어에 대한 고정관념에 대해서는 공격할 점이 많습니다. 그만큼 여성은 제도 내에서 교육적기회가 부여되지 못하고 박탈되었기 때문입니다.

 

사회(고두현): 페미니즘은 따로 자리를 마련하여 본격적으로 논의해봐야 될 것 같습니다. 아쉽지만 다음 논제로 돌렸으면 합니다.

 

홍영철: 에로티시즘 논의를 하면서 자연스레 페미니즘이 나온 것은 당연한 것 같습니다. 어째든 결론을 말하자면, 성 역시도 하나의 문학적 도구로 봅니다. 문학작품은 삶을 성찰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을 다루되, 다루는 것 자체는 어떻게 다루든 자유로워야 하며 규제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예술의 정신 또한 목적과 수단이 동일시 될 수 있을 때 좋은 작품을 만나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박남철: 좋은 말씀들 많이 듣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민용태 선생님의 현대적 의미로서의 성”, 홍영철 형의 자아 찾기로써의 성”, 허혜정씨의 페미니즘과 여성성의 문제가 수반된 성에 대한 논의들이 오늘의 이 자리를 매우 뜻 깊게 만들어주신 듯합니다. 결론은 결국 사회적인 제도나 공권력이 문학이라는 문화적인 양식을 함부로 칼질하려 들어서는 결코 안 되며, “장작의 자유는 결단코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 등을 들 수 있겠군요. 그리하여 이젠 우리나라도 포르노 비디오테이프 파는 가게 정도는 하루 빨리 양성화하여 가격 조정을 알맞게 잘 해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해보게 됩니다.(일동 웃음)

 

민용태: 인간의 자유를 향한 추구를 막아서는 안 됩니다. 창작자의 자유를 보장해줘야 할 것입니다. 현대성의 의미는 쾌락의 범주가 넓어진 만큼 확장시켜줘야 할 것입니다. 본심을 거역하고 환경을 거역하는 것은 동양인의 윤리의식으로도 성의 표현을 막는 것은 편견이며 현대성을 거스르는 것이죠.

 

사회(고두현): 참으로 다양하게 논의되었던 자리였습니다. 오늘 논의의 의미는 우리 사회의 성을 주제로 이루어지는 스펙트럼을 관찰하고 관심의 폭을 넓히는 데에 두겠습니다. 참석하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오늘 이 자리를 접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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