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시의 미학 - 정진규 선생님을 추모하며
흔히 시의 형식은 크게 운문시와 산문시로 나뉘어진다. 기존의 행갈음이 되어 있는 시 형식이 운문시라면, 마치 산문의 배열처럼 줄글로 이루어진 시를 우리는 산문시라고 부른다. 2000년대가 도래하기 전 시인들의 시 경향은 산문시보다는 운문시가 그 대부분을 차지했는데, 이는 산문시와 산문을 구분하기 위하여 율격과 리듬, 그리고 산문 특유의 풀어짐을 제약할 수 있는 시어의 어감에 대한 신중한 선택 등의 요소를 충족하지 않으면 산문시로 볼 수 없다는 일종의 관습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많은 습작생들, 특히 소설이나 기타 산문의 장르를 쓰다가 시를 써온 사람이 가장 많이 듣게 되는 지적이 시의 산문화 경향이라고 할만큼, 시의 산문성은 다른 면에서 보면 시작법에서 가장 경계해야만 하는 요소가 되기도 했다.
위와 같은 지적은 2000년대 이후의 시 경향을 비판적인 논조로 제기하는 많은 연구물들에서도 나타난다. 시의 사변성, 요설성, 그리고 절제되지 않은 산문성이 주로 호명되는 요소들이다. 시적 언어는 '서사'라는 일정한 규칙과 전제 조건을 반드시 충족해야하는 소설과는 달리, 문법의 파괴와 상황의 비약을 자유로 넘나드는 것이 허락된 장르이다. 그러나 그것은 근본적으로 독자와의 소통 및 대화적 속성을 염두해야 하며, 기존의 발화 양식과 차별성을 내포하는 동시에 독자가 시인의 의도를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허락되는 것이다. 따라서 자폐적인 시는 대화적 성격을 갖지 못한 공허한 메아리가 될 수밖에 없다. 2000년대 이후 시 경향에서 전경화되고 있는 산문성 역시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도입되었다. 언어의 통사는 로만 야콥슨(Roman Jackobson)이 논문 『실어증의 두 양상』에서 지적했듯이 단어를 선택하고 이를 결합하여 궁극적으로 배열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데, 행을 구분하지 않고 주어와 서술어가 늘 하나의 궤적 상에 위치되는 산문의 특성은 곧 시의 고전적인 규율처럼 여겨졌던 시어의 절약성에 과감하게 도전하게 된다. 2000년대 이후 시의 산문성을 진단하는 많은 논자들이 지적하고 있는 부분은 바로 이 '과감성'을 통한 실험정신의 전가보도성, 즉 무릇 시인이란 기존에 정해진 관습적 질서를 모두 타파하고 끊임없이 거부 및 저항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특성(숙명)과 거칠게 결부되어, 실험성을 가진 시라면 작품의 질에 개의치 않고 모두 새로운 시의 나침반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종의 손쉬운 도피성에 있다. 시를 논하고 강하는 전문적인 장field 안에서 제기될 수 있는 필연적인 문제를 손쉬운 일반론으로 대처하는 것만큼 자기도피적인 것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 경향에 대한 산문성을 비판적으로 제기하는 과정에서 줄곧 호명되었던 사람은 시인 정진규이다. 올해 명절 연휴가 시작되기 직전 별세한 그의 시 작업은 지금까지 산문성의 미학을 성실하게 시에 도입하여, 운문시보다 더욱 까다로운 염결성을 가지고 산문시의 지평을 넓혔다는 업적으로 결정될 수 있다. 요컨대 현대 시단에서, 정진규를 제외한 산문시는 사실상 손쉬운 자기도피적인 기교에 지나지 않는다는 무언의 약속 같은 것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단언하기란 곤란하며, 운문시를 주로 쓰는 시인들 중에서도 탁월한 산문시를 써낸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시인 개개인의 시적 자질을 논하지 않고, 전반적인 '경향'에서 시의 산문성이 갖는 우수성을 논할 때, 대부분의 산문시가 시의 영역으로 옮겨오기 전의 날것 그대로인 산문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다. 필자가 유심히 관찰한 정진규의 미학적인 산문성은 그것의 구술성에 있다. 산문은 글쓰기writing이고 구술은 말하기speaking이며, 문자와 음성이 한 곳에 유려하게 포개지는 숭고한 시의 에크리튀르가 생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밥>을 보라.
이런 말씀이 다른 나라에도 있을까
이젠 겨우 밥이나 좀 먹게 되었다는 말씀, 그 겸허, 실은 쓸쓸한 安分, 그 밥, 우리나란 아직도 밥이다. 밥을 먹는 게 살아가는 일의 모두, 조금 슬프다 돌아가신 나의 어머니, 어머니께서도 길떠난 나를 위해 돌아오지 않는 나를 위해 언제나 한 그릇 나의 밥을 나의 밥그릇을 채워놓고 계셨다 기다리셨다 저승에서도 그렇게 하고 계실 것이다 우리나란 사랑도 밥이다 이토록 밥이다 하얀 쌀밥이면 더욱 좋다 나도 이젠 밥이나 좀 먹게 되었다 어머니 제삿날이면 하얀 쌀밥 한 그릇 지어올린다 오늘은 나의 사랑하는 부처님과 예수님께 나의 밥을 나누어드리고 싶다 부처님과 예수님이 겸상으로 밥을 드시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분들은 자주 밥알을 흘리실 것 같다 숫가락질이 젓가락질이 서투르실 것 같다 다 내어주시고 그분들의 쌀독은 늘 비어있을 터이니까 늘 시장하였을 터이니까 밥을 드신지가 한참 되셨을 터이니까
<밥>
언제였던가 구한말 선교사였던 호머 헐버트Homer Hulbert는 한국인의 전통 음악에 대해서 깊이있게 연구하다가, 이런 말을 남긴 적이 있다. "아리랑은 밥이다. 나머지 노래들은 그저 반찬에 불과하다." 헤어진 님을 그리워하는 사모곡이 되기도 하고 타인과 나의 유대를 돈독히 하여 일종의 노동요로까지도 불렸으며 가사의 의미와 상관없이 그저 멜로디만 따서 흥얼거리곤 하는 사람들을 보고 나서 든 통찰로 보인다. 더 나아가 귀족이나 지배 계급이 만든 노래가 아니라 소시민들의 부락들에서 구전되어오던 노래라는 민중성이 그가 주목한 부분이다. 아리랑의 이야기를 하려고 헐버트의 일화를 인용해온 것은 아니고 '밥'이라는 시어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이다. 헐버트가 '아리랑'을 '밥'으로, 다른 노래들을 반찬으로 비유한 것은 또한 '밥'이 한국인의 주식이라는 것, 더 나아가 한국인의 민족성 내지 민족지학을 따져보았을 때 벼를 재배-수확-탈곡-정미 등을 거쳐 모든 사람들의 가정집 상 위에 오른다는 것에서 착안했을 것이다. 그만큼 한국인과 밥은 민족지학적인 관점에서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한국 사회에서 '밥'은 그저 음식의 기호가 아닌 민족 전체의 기호가 되며, 마치 쌀알들이 서로 내밀하게 달라붙어 입 속으로 들어가 한 사람의 인체를 움직이는 영양분이 되듯이, 삶의 연장과 소모의 영원한 순환 작용을 촉진하는 기호인 것이다. 시 <밥>에서, 밥을 먹는 것이 살아가는 일 자체가 되었다는 그 당연한 사실에서 오히려 슬픔을 느끼는 화자는 죽은 어머니를 호명하고 산 자가 먹는 밥을 죽은 자도 같이 먹는다는 발상, 그리고 부처님과 예수님이 한 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 상상을 통해 삶과 죽음, 범속한 자와 성스러운 자가 '겸상'이라는 공동체를 이루고 숟가락질과 젓가락질이라는 상이한 행위들이 결국 한 끼를 넘기는 부지런한 과정에 복무한다는 것을 활달한 글쓰기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 '밥'이 내포하고 있는 것은 초반부에서 언술되고 있는 '말씀'과 '겸허', '안분(분수에 맞게 편안한 경지)' 등이다.
'말씀'이란 범속한 개인의 언어가 아닌 세계의 절대성을 떠받치고 있는 신의 언어로서, 영어에서는 전자가 word라면 후자는 반드시 The Word로 표기하도록 되어 있다. 한 명의 인간이 살기 위하여 밥을 먹는 행위가 세계의 지고한 절대성과 사실상 한 몸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은 곧 word와 The Word의 결합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개인이 희구하는 이미지가 세계의 절대상과 일치하는 고전주의적 미학의 그 결을 내보이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슬픔'을 느낌으로써 화자는 '밥을 먹는 일의 괴로움'을 일정 부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모친을 여읜 화자에게 '밥'은 제사상이라는 지표 위에 기호로 도입되었을 때 산 자와 죽은 자가 상상적으로 조우케 하는 매개물이 되기 때문이다. 죽은 자를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결핍은 개인에게 있어 당연한 것이고, 오히려 상실 대상을 지속적으로 그리워하는, 그러나 일반적인 밥 먹기와 제사라는 제의를 통하여 망자와 밥을 먹는 행위의 구분을 통해, 우울증의 병리성을 극복하고 건강한 슬픔을 지속할 수 있는 신체성을 확보하게 된다. 따라서 이 결핍이야말로 삶과 죽음을 잇는 순환의 기호가 내포하고 있는 '말씀' 그 자체의 절대성인 것이다. 밥 먹기의 행위가 산 자와 죽은 자를 '먹기의 장' 속으로 오롯이 데려온다. 자식을 위해 자신의 삶의 기호를 아낌없이 증여하는 어머니는 분명 예수님이고 부처님이다. 이 '비어있다(虛)'의 시학은 정진규 시인의 다른 시편들에서도 종종 등장하며, 육체적인 공복이 아니고 살아있는 동안 끊임없이 투여해야하는 '걱정하는 어머니'의 상, 그 샘이 수납되어 있는 정신적이고 오히려 건강한 공복이다. 정진규의 시는 산문적 형식을 도입하면서 삶에서 죽음으로의 필연적인 귀처 의식에 머무르지 않고 자식을 위하여, 남겨진 자들을 위하여, 읽는 자를 위하여 아낌없이 증여되는 아가페적인 도정을 보여주어 왔다. 그가 별세한 지 보름이 지나고서야 이 글을 쓴다. 명복을 빈다.
김민구 (서강대 국문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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