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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송 시인, 시집 『내 귓속에는 누군가의 애인이 산다』 출간 - 한국시문화회관 - 문단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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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찬송 시인, 시집 『내 귓속에는 누군가의 애인이 산다』 출간 - 내 귓속에는 누군가의 애인이 산다.jpg

   한국시문화회관 목요창작반 회원인 박찬송 시인이 2021년 5월 신간 시집 『내 귓속에는 누군가의 애인이 산다』(문학의전당)를 출간했다. 박찬송 시인은 충남 천안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2005년 【월간문학】신인상을 수상했다. 현재 《미래시》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평】: 순수의 시대를 그리워하는 현대인의 자화상

2005년 《월간문학》으로 등단한 박찬송 시인의 첫 시집 『내 귓속에는 누군가의 애인이 산다』가 문학의전당 시인선 340으로 출간되었다. 등단 이후 16년 만에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박찬송 시인의 이 시집은 물질문명 속의 개인, 제도나 사회 구조와 같은 시대의 메커니즘 속에서 순수한 세계를 잃어버린 고통스런 현대인의 모습과 그러한 일상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오롯이 담겨져 있다. 이 시집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자아성찰의 시간을 제공해 줄 것이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해설】: 그리움의 겹무늬 (일부) - 김경민(시인·한국시문화회관 대표)

    레비스트로스는 그의 저서 슬픈 열대(박옥줄 , 한길사)에서 샤토브리앙의 말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고 있다.

  “사람들은 각기 그가 보고 사랑했던 모든 것으로 구성된 하나의 세계를 자기 안에 지니고 있으며 이질적인 세계 속에서 돌아다니는 듯 보일 때조차도 항상 자기 세계로 돌아오고 있다.”

  박찬송 시인은 불문학을 전공한 후 잠시 직장생활을 한 다음에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회생활에서 멀어져 있었다. 가정에 전념하며 지방에서 생활하면서 철학이나 종교적인 것에 관심을 가졌고 이것과 관련된 독서에 몰두하며 지내왔다. 대도시의 생활에서 멀어진, 일상과 사회생활과의 거리는 상념의 깊이와 상상의 진폭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다가 이십 년 전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 등단 후 이제 첫 시집을 상재하게 되었다. 이 시집의 시편들은 이러한 경험과 사색을 바탕으로 쓰인 노작(勞作)이자 노작(路作)이다.

  내러티브(narrative)가 중심 언술인 이 시집의 시편들은 다음의 세 가지 시선들이 주조를 이루고 있는 듯 보인다. 하나는 중산층이나 소시민의 삶을 이루는 현실 곳곳에 놓인 투명한 덫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식과 다른 하나는 중년의 삶이 부딪히게 되는 허위와 일상의 뒷모습, 마지막으로 기억의 터널 속으로 뒷걸음질 치는 시간의 차창에 그려지는 유년의 상처와 그리움의 겹무늬이다. 이런 인식과 경험과 상념들이 현실의 표층 뒤에 잠재되어 있는 이미지의 연상을 통해 우울하며 날카로운 감성을 통해 그려진다. 부조리한 현실, 벗어날 수 없는 추억의 굴레, 매 순간 발견되는 삶의 의미들을 부드럽고 담백한 어조로 그려내고 있다. 낮지만 예사롭지 않은 응시의 목소리는 시집 전반을 단단하고 힘 있게 떠받치고 있다

 

  예쁜 아이들이 태어난다 하지만 이내 아이들이 사라진다 무슨 잘못을 했기에 모든 아이를 빼앗기는가. 케이지가 좁아지고 모이를 쫄 때마다 목덜미의 털이 뒤집힌다 현기증 같은 울음이 천장을 돌리고 먼지의 왁자함이 흐릿한 조명등을 흔든다

  오염된 계란이 배달되었다 사랑 없는 부화가 문제다 살충제 범벅인 알을 쓰레기통에 버린다 불신의 알끈이 손가락에서 미끈거린다 닭장 안에서 닭이 알을 낳으며 울고 주인이 그걸 주우며 운다 폐기될 희망과 거대한 슬픔, 포만의 행복이 불안의 농도를 높인다

  내 작은 창에 아파트가 쌓인다 A4 용지만 하게 허공에 떠 있는 집들, 실내등이 사람들을 창밖으로 꺼낸다 계란 상자 같은 집에 틀어박힌 이들이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아이들은 입도 눈도 뜨지 않는다 내 삶이 오염된 신호다 지워진 발자국을 쪼아 먹는 밤하늘만 나의 퇴화된 날개를 비틀어 공중에 펼쳐놓는다

-위험한 닭장전문

 

  문명은 잔인하다. 생명은 인위적인 메커니즘에 의해 탄생되고 소거된다. 겉으로는 안온한 일상이 계속되지만 도처에 위험은 잠복해 있다. 이것은 현실이 사랑보다는 효용성에, 신뢰와 소통보다는 이윤이나 부가가치에 우선하는 오염된 자본주의의 근저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케이지에 갇혀 사육되는 닭을 통해서 시인은 무언가에 구속되어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한다. 닭장 같은 아파트에서 시대의 불안을 느끼는 시인의 인식이 날카롭다.

 

어느 날 좌측에서 우측으로 보행 방향이 바뀌었다

아버지 제사에 가는 날, 우측통행에 서툰 내 발이

고개 숙인 휴대폰에 짓밟힌다

전동차 안에서 머리 허연 남자가

임산부 배지를 단 여자에게 삿대질을 한다

모멸을 견디지 못한 젊은 여자

슈퍼문의 배를 안고

지하철 밖으로 뛰쳐나갔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손이 그 자리에 앉는다

우측통행을 하는 흰 머리와

노란 리본을 달고 좌측통행을 하는 촛불

요란한 함성이 내 귓바퀴를 돌린다

내겐 어린 날의 아버지에게 가는 길이 급한데

모든 길이 막혔다

보이지 않는 방망이가 나를 한쪽으로 몬다

침범할 수 없는 중앙선조차 사라져

헉헉대는 계단이 나를 지하로 끌고 간다

험한 구호를 피해 땅 밑으로 내려간 내 발은

통통하게 부었다

환승에 환승을 거듭하는 지하철 노선 여기저기

낡은 상수관의 물줄기처럼 사람들을 쏟아놓는 열차

시청 역에서, 외선 순환열차를 타야 할지

내선 순환선을 타야 할지 갈등할 때

성수행과 신도림행 열차가 동시에 들어온다

아무리 직진을 해도 같은 길만 돌아가는 순환선

그 길을 법이라고 믿으며

같은 노선의 사람들만 태우는 전동차

서로 반대쪽을 향해

끝도 없이 속도를 낸다

-우측통행전문

 

  어느 날 좌측통행에서 우측통행으로 통행 방식이 바뀌었다. 아무렇게나, 아무 방향이나 걷고 싶은 데로 걷는 것이 아닌 사회적 규약이나 누군가의 계도에 의해 이런 개인의 보행 방식이 결정된다. 대개 수많은 개인들은 그 방식을 충실히 이행한다. 그러나 가끔 누군가는 그 사회의 분위기나 여론이나 규범 때문에 낭패를 겪게 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개인의 자유의지가 사회 구조와 규범의 모순 때문에 겪는 고난을 풍자적이면서도 다소 우울하게 그려낸 수작이다. 물론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이나 의무를 소홀히 하자는 의미가 아닌, 어느 때나 어느 곳에서나 현실의 부조리함을 온전히 감내해야 하는 것은 개인이라는 씁쓸한 진실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또한 구조적인 현실에 쉬이 적응하지 못하는 이방인의 난처함도 흥미롭게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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