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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 대표작가 - 김승옥 (문예2000 - 2000년 8월호) - 한국시문화회관 - 문예도서관 - 작가와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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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도서관

문예도서관

문학과 예술에 대한 지식, 정보, 중요한 자료들을 편집자들이 집필해 놓은 공간입니다.

약력

  • 1941. 12. 일본 오오사카 출생
  • 1960. 서울대 문리대 불문과 입학
  • 1962. 단편 ‘생명연습’이 한국문예 신춘문예 당선
  • 1964. 단편 ‘무진기행’ 발표
  • 1965. 단편 ‘서울 1964년 겨울’로 제10회 동인 문학상 수상
  • 1967. 김동인의 단편 ‘감자’를 감독하여 영화화함
  • 1977. 중편 ‘서울의 달빛 0장’으로 제1회 이상문학상 수상
  • 현재 세종대학교 국문과 교수

 

서울 2000년 여름- 작가 김승옥 선생님을 뵙다 [문예2000 - 이천년 8월호] 

....선술집, 염색한 군용잠바, 화신백화점,카바이드등, 일원짜리 동전, 돌덩이처럼 나뒹구는 거지들...60년대 내가 태어나지도, 살아보지도 않았던 한 시대를 김승옥 선생님의 소설을 통해 조우하게 되면서 나는, 소설 작품이 작가나 독자에게서 완전하게 독립된 '하나의 개체'임에도 불구하고 선생님과의 만남이 마치 60년대 소설 속 주인공들과의 실질적인 대면과도 같이 여겨져 그 흥분을 감추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비를 머금은 바람이 간간이 부는 평화로운 일요일 오전 아침 예배를 마치고 나오신 김승옥 선생님과 세종대학교 부근 C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고 앉았을 때 시간은 다시 2000년 7월로 돌아와 조용히 흐르기 시작했다. 
 
문예2000 : 조금 전에 학교를 둘러봤는데 건물이 참 고풍스러운 것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 학교 (세종대학교)내에 교회가 있나요? 
김승옥 : 네. 세종선교회라고 있는데 '머릿돌'이라는 계간지 (복음선교지)도 발행하고 있죠. 그나저나 나는 예배 끝나고 빵하고 우유를 좀 먹었는데 오
랜만에 맥주나 한 번 마셔볼까요? 얘기도 술술 잘 나오게 말이죠. (웃음) 

문예2000 : 국문과 학생들 중에 소설을 쓰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많은가요? (선생님께선 작년 봄부터 국어국문학과 교수님으로 재직중이셨다.) 
김승옥 : 글쎄, 별로 없는 것 같은데, 한 두명쯤 소설을 써오긴 해요. 

문예 2000 : 선생님께 가장 먼저 드리고 싶은 질문이 있는데요. 선생님께서 처음 문학을 접하게 되신 때가 언제였나요? 
김승옥 : 그러니까 내가 문학과 친해지게 된 건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였을 거예요. 학교 수업이라는 것도 그다지 어려울 것이 없었고 육이오 직후여서 분위기도 무척 어수선했었죠. 그 나이에 이해는 제대로 하고 읽었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무척 많은 소설을 읽었어요. 이기영과 같은 월북작가들의 소설도 접하면서 나름대로 소설을 평가하는 능력이나 문학적 상식이 생기기 시작했죠.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셨지만 중고등학교때까지는 집안이 넉넉해서 책을 사서 보는 데는 구애를 받지 않았던 걸로 기억해요.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교지 편집도 하고 꽁트를 써내기도 했었죠. 


문예2000 : 선생님께서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먹게 되신 직접적인 계기가 궁금해집니다. 60년대적 시대 상황과 무관하지 않았으리라 여겨지는데요. 
김승옥 : 그때 나는 서울대 문리대 학생회에서 발간하는 '새세대'라고 격주간으로 발행하는 신문의 편집기자였는데 사실 그 당시만 해도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어떤 직접접인 계기라고 한다면 그 당시 신구문화사에서 출판된 세계전후문학작품전집인가 그 전집 한 질을 읽게 된 것이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먹게 된 이유였어요. 4.19 직후 한국의 젊은 비평가들에 의해 2차 대전 패전 이후의 일본의 새로운 세대의 작가들이 써낸 일본 소설들이 번역되기 시작했는데 천황 중심의 정치체제가 무너지고 민주주의가 자리잡기 시작하는 실상이 다름아닌 우리들 얘기라는 데 문화적인 충격을 받았던 거죠. 전통과 기존질서가 파괴된 아픈 시대를 꿰뚫어보는 일본작가들의 정직하고 진지한 문학적 시각이 나로 하여금 문학에 대한 존중심을 일깨웠던 것 같아요. 아, 문학이야말로 시대를 정확히 짚어내는 중요한 수단이로구나, 나도 우리 얘기를 써 봐야겠다, 생각한 거죠. 

문예2000 : 50년대 일본식 교육을 받고 전쟁을 직접 몸으로 체험한 세대와는 또다른 의식이 문학을 통해 구현되지 않았나, 싶은데요. 
김승옥 : 그렇죠. 서기원, 이호철, 장용학 문학의 세대는 자신이 육이오 전쟁에 나가서 죽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나는 십 년이라는 짧은 시대적 차이를 통해 조금은 더 객관적인, 덜 초조한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볼 수 있었던 겁니다. 60년대 나는 대학생이었죠. 그 당시 서울대학교는 대학로에 있었어요. 그 근처가 바로 종로 3가, 사창가였죠. 그 옆에 동대문 시장이 있었구, 거기도 지금과는 달라서 피난민들이 모여 허름하고 낡아빠진 물건들을 내다 팔고 있는 형편이었어요.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사회였었죠. 남자들은 모두 도둑질이나 사기로, 여자들은 몸을 팔아서 생존해 나가야 하는 그런 지옥 같은 상황에서 전쟁 직후의 이 나라가 어떤 길로 나아갈 것이냐, 소박하나마 그런 걱정도 했었어요. 최소한의 윤리가 바로 서고 민족의 동질성 회복이 이루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문학이라는 작업을 통해 아픔을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한 거죠. 

문예2000 : 선생님의 첫 작품은 1962년에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생명연습이었지요? 
김승옥 : 생명연습이라는 작품은 61년도 여름방학에 쓰기 시작한 건데 육이오를 체험한 한 가족의 이야기에 국가에 대한 개념을 응축시켜서 상징적으로 쓴 작품이죠. 가정, 질서의 파괴와 무너진 윤리의 회복에 대해 말하고자 한 건데 생명이란 다름아닌 개인과 국가의 생명을 지칭하는 겁니다. 군대 가기 전에 글재주나 한 번 시험해본다고 소설이라고는 난생 처음 써서 보냈는데 어떻게 당선이 돼서 상금으로 학교 등록금을 냈죠. 그때 나랑 같이 신춘문예에 도전했던 이청준은 동아일보에 냈다가 떨어져서 군대에 가고 (웃음) 

문예2000 : 그 당신에 산문시대라는 동인활동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김승옥 : 그때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나서 명색이 작가라고 세상이 이름을 붙여준 격이 됐는데 습작 소설이 전혀 없다보니 기성 문단에 나가 작품활동 한다는 게 너무 부담스럽고, 겁이 났었어요. 지금도 느끼는 거지만 습작시기를 충분히 거치고 습작한 글이 많은 작가들이 작가로서의 생명력을 길게 갖는다고 봐요. 그때 나에게도 습작시기가 절실히 필요했었던 거죠. 김현,김치수,김성일,염무웅외 여러 사람들하고 같이 5권까지 냈었죠. 기성문단이 아닌 동인지 활동이라 무엇보다 작가로서의 책임감으로부터도 자유로웠고 언어적 실험도 가능했기 때문에 오히려 생생한 개성을 표출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사실 그 당시 쓴 단편들이 오늘날 작품집에 묶인 그 단편들입니다. 

문예2000 : 선생님께선 개인적으로 '차나 한잔'이라는 단편에 가장 애착을 갖고 있다는 얘길 들었는데요. 
김승옥 : 작가가 자신이 쓴 작품 중에 애정이 안 가는 작품이란 있을 수 없겠죠. 
차나 한잔은 64년에 내가 대학졸업을 못한 상황에서 두 군데 잡지사로터 동시에 청탁을 받아 무진기행하고 같이 쓴 작품이었는데 마감기한이 같아서 낮에는 차나한잔을 쓰고 밤에는 무진기행을 썼어요. 무진기행은 비교적 쉽게 쓸 수가 있었는데 차나한잔은 애를 좀 먹었죠. 읽어봤다면 알겠지만 한 만화가의 고독감과 외국문화 속에서의 한국문화의 위치 뭐, 그런 얘기인데 내가 대학 다닐 때 집안이 갑자기 가난해지는 바람에 서울경제신문에 연재만화를 그린 경험을 토대로 쓴 거라 유난한 애정을 갖고 있다는 정도예요. 어찌됐든 그 소설이 그래도 가장 정석에 가까운 소설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입니다. 

문예2000 : 제가 태어나던 해 선생님께선 시나리오 작업에 주력하셨는데요, 시나리오를 쓰시게 된 동기에 대해서 말씀해주시겠어요? 
김승옥 : 동기라 한다면 무엇보다도 소설만 써 가지고서는 생계를 유지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예요. 그 일 또한 지극히 불안정한 건 마찬가지였지만 수입은 퍽 많은 편에 속했죠. 장군의 수염 각색으로 대종영화상 각본상도 받고 무진기행을 안개라는 제목으로 각색해서 흥행에 성공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김동인의 원작소설 감자를 감독한 것이 스위스 르카르노 영화제에서 상당한 평가를 받아 르몽드 신문에 크게 소개되기도 해서 영화 쪽에 상당한 의욕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느날 영화제작현장에 나와 본 아내가 끝까지 만류하는 바람에 겨울여자,영자의 전성시대 같은 시나리오 쓰는 일만 하게 됐죠. 그 당신 신혼초여서 아내가 보기엔 까딱하면 내가 바람이라도 날 것 같아 불안했었나봐요. (웃음) 그 후 월간 잡지 샘터사의 편집부장으로 들어가 밤새면서 일에만 매달렸었는데 가정은 그런대로 안정이 되더라구. 

문예2000 : 1977년 서울의 달빛0장이 이상문학상 수상을 한 이후로 드러난 작품활동이 없으셨는데요. 어떤 시대적 상황이 연유가 되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만... 
김승옥 : 대학 동창이자 나하고는 가까운 사이였던 시인 김지하가 오적이라는 풍자시로 인해 공산주의자로 몰려서 감옥살이를 하게 됐죠. 들어가면서 나한테 와서는 구명 운동을 해 달라고 부탁을 했지. 내가 변호사측 증인으로 법정에 나가 증언하기도 했는데 박대통령이 시해되고나서도 김지하는 십 년 째 옥살이를 하고 있었어요. 
1980년 초에 민주화의 진행을 보면서 동아일보에 연재 소설을 쓰게 됐는데 그 때 광주민주항쟁이 일어난 거예요. 온 국민이 분노했듯이 나 역시 얌전하게 소설만 쓰고 앉아 있을 수는 없었죠. 결국 연재 15회만에 연재를 중단해버렸어요. 그 이후로 정신적인 방황이 계속된 거죠. 절대가치란 과연 있는가 지금껏 내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가치관에 의구심이 생기고 인생에 있어 보편적 진리란 과연 무엇인가, 총체적인 회의에 빠진 거죠. 결국 어떤 글도 제대로 쓸 수가 없었지... 

문예2000 : 선생님의 작품활동에 있어 새로운 전환기라 할 수 있는 극적체험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러한 종교적 체험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 있다면요? 
김승옥 : 1981년 어느날 아침에 내 의식이 머리통 전체를 통해서 몸 밖으로 빠르게 빠져나가는 걸 경험했어요. 이게 바로 인간의 영혼과 육체가 나누어지는 현상. 바로 죽음이라는 것을 실감했죠. 그 경험을 통해 내 아버지의 죽음, 여동생의 죽음에서 절실히 느끼기 시작했던 죽음에 대한 실제적 해답을 얻은 것 같아요. 하느님을 알고나서부터 판단기준이 명확해지면서 표현에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하더군요.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거죠. 내 안에 종교적인 가치가 곧 나를 일으켜 세우는 의지가 됐어요. 

문예2000 : 새천년을 맞아 앞으로의 문학의 위치는 어떤 변동을 겪게 되리라고 보시는지요? 
김승옥 : 사실 시간이 갈수록 문학이 차지하는 영토는 점점 줄어들고 위상은 불안해질 겁니다. 어느덧 문학이 소수의 문학이자 기호품이 되어가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보편적인 진리라는 것이 있잖아요? 인간을 표현하는 다시 말해 인간의 관념과 내면을 표출해낼 수 있는 것은 문학 밖에는 없죠. 물론 그런 내용을 담는 형식, 형태는 발전하거나 변화할 수 있겠죠. 예를 들어 컴퓨터의 활용도나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는 요즘 출판문화에 있어서도 획기적인 발전이 온다거나 할 수는 있겠지만 내면은, 안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영원불변의 보편적인 진리가 있듯이 소설은 어떻게든 살아남을 것입니다. 

문예2000 : 소설가가 되기를 희망하는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들려주시겠어요? 

김승옥 : 문학을 선택한다는 것은 문학 활동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의미이지 문학적인 삶을 산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소설가도 직업이므로 투철한 직업의식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사람마다 누구에게든 살면서 아프게 맺혀 있는 부분이 있을 겁니다. 바로 그 아픈 부분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면서 진정 자신이 어떤 얘기를 세상에 대고 말하고 싶어하는지 자기만의 감수성으로 찬찬히 귀기울이는 작업이 절실히 필요하겠지요. 섣불리 달려들 것이 아니라 사회와 시대를 짚어내는 안목을 기르는데 게을리하지 않으면서 일상의 한순간, 생각의 한 모퉁이를 꼼꼼히 메모해 놓는 습관을 갖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문예2000 : 긴 시간 뜻깊은 말씀을 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께서 최근에 계획하고 계신 일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겠어요? 
김승옥 : 장편 소설의 신문연재계획을 갖고 있어요. '서울의 달빛' 완성을 보는 게 지금 나의 계획입니다. 나도 이제 소설을 써야지요. 
 
급격한 경제 성장, 월남 파병 등 70년대의 도덕적 붕괴를 언어로 포착해내기 위해 그토록 광포하고 치열한 문체로 쓰여진 서울의 달빛 0장이 2000년 여름, 시대와 사회를 놓치지 않는 작가, 김승옥 선생님을 통해 어떤 얼굴로 재출발하게 될지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가슴이 뛰지 않을 수 없다. 사람과 시대와 나아가 한 나라의 부조리함을 예민하게 포착해내던 60년대의 젊은 청년이 세월과 더불어 원숙해진 모습으로 새 천년 여름, 하느님을 통해 배운 보다 깊고 따뜻한 시선으로 그리게 될 장편 소설을 기대하며 첨예한 감수성으로 개인의 안으로만 침잠하려드는 요즘 젊은 작가들에게서도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에 대한 연민을 품을 줄 아는 보다 넓은 도량이 발견된다면 한국문학을 사랑하는 많은 한국인들에게 큰 힘이 되어줄 거라는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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