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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속을 질주하는 키치 - - 한국시문화회관 - 문화칼럼 - 김민구의 문학 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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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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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속을 질주하는 키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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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속을 질주하는 키치 - <김사량>

(이 글은 2017년 서강대학교 【서유강론】에 게재된 본인의 논문을 자유로운 형식으로 개작한 것임을 밝힘)

 

1931년 겨울, 평양고등보통학교를 다니던 한 소년이 부산의 어느 해변에서 수평선 너머로 아득히 어른거리는 섬을 보고 있다. 그는 혹시라도 누군가 쫓아오지는 않는지, 분명 혼자라는 사실을 자각하면서도 불안하게 뒤를 돌아본다. 그는 열일곱 살의 눈으로 끊임없이 밀려오는 바다를 바라보며 빨리 이 땅을 떠나는 게 상책이라고 스스로를 독려한다. 소년은 1929년 11월 광주 일학생운동 2주기를 기념하여 열린 시위의 주모자로 몰려 퇴학 처분을 당하고, 일경의 추격을 피해 일본 본토로 밀항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교토제대 법학부에서 수학하던 형의 도움으로 도시샤대학의 학생증과 교복을 얻어 마침내 소년은 밀항에 성공한다. 그 형은 후에 고등문관시험을 통과하여 조선인 신분으로 조선총독부 국장이라는 고위 관료가 된다. 사실상 조선인 신분으로 올라갈 수 있는 최고위직이라 해도 무방하다. 소년은 규슈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후 동경제대 독문과에 입학하였고 그곳에서 습작기를 보내다 이런저런 일에 휘말려 옥고를 치르기도 한다. 그는 1940년 「빛 속에서」라는 단편소설로, 비록 수상은 불발되었지만 조선인으로는 유례없이 아쿠타카와상 후보에 오른다. 

 

청년이 된 작가는 1941년 「천마」라는 소설을 쓴다. 여기엔 제국의 내선일치 사상에 찬동하면서 조선인들에게 일본인만의 민족적 고유감정인 야마토다마시이를 주입해야한다고 너스레를 떠는 소설가 현룡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내선일체 사상을 찬동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을 가라데 유단자라고 소개하거나, 자신을 흠모하는 얼빠진 여성에게 유식한 척 독일어를 쓰거나, 직업을 묻는 순사에게 "문사 현룡"이라고 자랑스레 대답하는 등의 과대망상증을 보인다. 그는 술집에서 여급을 칼로 베어 죽인 후 투옥될 뻔 하다가, 그를 후원하는 오무라 덕택에 절에 입산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다. 현룡은 자신이 조선 최고의 문사라는 착각 속에서 살아가며, 유명 일본인 소설가인 다나카와가 조선을 방문하자 자기 대신 오무라에게 탄원해줄 것을 부탁한다. 그러나 이는 모두 무위로 돌아가고, 그는 실의에 빠져 거리의 일본인 참배 행렬을 보고 무언가 두려운듯 달아나다가 경성 거주 일본인의 거리인 "혼마치"로 진입하지 못하고 도랑의 개구리들이 울어대는 소리를 "요보(鮮人)"라고 하는 것처럼 듣는 강박증에 휩싸여 빗속을 질주한다. 현룡은 빗속을 달리며 이렇게 소리친다. "아니야! 난 요보가 아니야! 이 내지인을 들여보내줘! 난 류노스케다! 겐노가미 류노스케(玄の上龍之介)다!" 빗속을 달리는 그의 절규는 애처롭기까지 하다. 

 

작가는 후에 이 소설에 대해서, 이렇게 친일적인 작가들이 식민지 조선의 경성 거리를 활보하고 다녔다는 사실에 분개하여 현룡과 같은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았다고 말한 바 있다. 현룡은 결국 창씨개명까지 하면서 내지인(일본인)이 되고자 하지만 그는 일본인 태생의 내지인들과 함께 교류하지 못하고 그들의 무리에서 배제된다. 내지인들에게 그는 경멸과 조롱의 대상에 불과하다. 이런 인물이 경성에 있었다는 사실에 대한 작가 본인의 분개 외에도, 현룡의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자신이 요보라는 사실, 즉 조선인의 자의식을 계속하여 환기시키는 양심이라는 사실은 주목해볼만 하다. 단지 식민지인-제국인의 간단한 이분법으로 처리될 수만은 없는 문제가 여기에 있는 게 아닐까. 식민지인, 비국민에서 동아시아를 지배하는 제국의 신민이 되고 싶지만 동시에 자신을 다시 잡아 끌어내리는 어떤 검열관의 힘이 작동하고 있다. 마치 자신이 유식하고 고급 문화를 창출하는 문사인 양, 작가연하는 이 키치적 인물이 , 자신의 환상이 얼마나 공소한 것이었는지를 자각하게 되는 그 순간, 키치는 빗속을 질주하면서 자신의 과대망상으로부터 치료를 거부하고 병자가 된다. 그는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호명하지만, 그러나 아무도 그 이름을 들어주는 이 없는 투명한 입막음에 매몰된다. 분명 작가 자신의 분개로 인해 탄생된 인물임에도, 그의 정신적 몰락에는 일정 부분의 연민의 분위기가 감돌며, 이 연민의 뒷면에는 일본 유학 체험을 지닌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서도 언뜻 나타나듯이, 일정 부분 작가의 자조도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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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정 아래에서도 전매청장의 직을 유지했던 형과는 달리, 해방이 되자 북한으로 올라가 예술가 관리를 지낸다. 그가 북한으로 올라가지만 않았더라면, 조선인 최초의 아쿠타카와상 후보로 올랐음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분명 더 많은 작품을 남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고향이 북쪽이었기에 불가피한 일이었으리라 짐작된다. 그가 북한으로 올라가 북조선예총의 주요 일원이 된 까닭에, 종전 후로도 그는 문학사에서 곧잘 호명되지 못한다.  「빛 속에서」, 「천마」, 「덤불 헤치기」, 「무궁일가」, 「노마만리」 등 다수의 작품을 남겼고, 조선어와 일본어로 동시 창작된 까닭에 이중언어의 글쓰기를 수행한 작가 중 대표적인 인물로 거론된 것은 비교적 근래의 일이다. 일본 근대문학을 열었던 나쓰메 소세키의 제자이면서 후에 「설국」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젊은 조선인 청년의 아쿠타카와상 심사를 회상하며, 일본의 어느 소읍 소학교의 조선인 교사가 주인공인 이 소설을 감명 깊게 읽었지만, "조선인의 감정을 다루어서 1등을 주지 못했다"는 점을 고백한다. 그의 이름은 김사량이며,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조선인민군의 종군작가가 되었다가 원주에서 실종된다. 정확한 최후는 전하지 않는다. 

 

김민구. (서강대 국문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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