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호킹 박사의 '시간(時間)의 역사(歷史)'에 보면 상대성 이론에서는 절대적 시간이 없다고 한다. 어느 별 위에 있는 사람의 시간과 그 별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의 시간은 별의 중력장 때문에 서로 다르다고 한다. 어느 붕괴하는 별 위에 있는 사람이 신호로 보내오는 1초의 시간이 그 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이 느끼기에는 영원처럼 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영원처럼 긴 1초는 아니더라도 한시간 길이쯤의 1초를 원하는 사람들은 많으리라. 교훈적인 동화책에서나 읽던 "시간은 네가 사용하기 나름이기에 그 사용되는 시간의 질에 따라 길어지기도 하고 짧아지기도 한다"는 말이 이제 내겐 과학적인 논리를 갖춘 상징이 된다.
조지 포먼은 그 주먹이 주는 느낌과는 달리 부드럽고 겸허한 신앙인 이다. 알리에게 져서 링을 떠났다가 다시 복귀한 이유가 전도생활에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서라고 한다. 손주까지 둔 50을 바라보는 나이에 한참 힘 좋은 젊은 복서를 누이고 다시 세계 챔피언이 되었다. 한물 간 살찐 할아버지 복서가 그를 우습게 보던 혈기방장한 젊은 선수들을 KO시키는 것이다. 그의 시계의 지침은 그가 가장 왕성한 청춘의 한 때에서 고정된 것일까?
가끔 작품으로만 알고 있던 시인들을 만나다 보면 비교적 젊은 분인 줄 알고 있던 시인들이 뜻밖에도 연배가 상당히 위인 경우를 경험하게 된다. 이런 시인들은 작품이 젊고 신선한 패기를 늘 지니고 있기 때문에 독자들을 그가 젊은 사람일 거라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나는 창작, 창작 중에서 문학, 문학 중에서 특히 시(詩) 작품은 젊음의 산물이라는 생각을 해왔다. 새로움에 대한 도전과 젊은 패기와 때묻지 않은 순수함과 불같은 정열과 타협하지 않는 정의감은 모두 젊음이 지닌 것들이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지금 내 주변의 젊은 시인들은 일찍 노쇠하였다. 신춘문예니 신인상이니 해서 몇 번 들썩이다가 직장과 가정과 사회의 한 구석으로 침잠해 버리는 것이다. 이제 문예지나 새로운 시집에서 나를 일깨우는 시편들은 4.50대의 중견 시인들의 검은 눈망울들이다. 그들의 맑은 눈들은 그들의 시대에서 어렵게 택한 시인의 길을 놓치지 않고 지금도 가열찬 열망을 드러내는 것이다.
지미 카터가 시집을 냈다고 한다. 땅콩 농사를 짓다가 주지사가 되었다가 대통령이 되었다가 목수가 되었다가 민간 외교관이 되었다가 이제 인생을 되돌아보는 나이 70에 시인이 된 모양이다. 순수함도 정열도 정의도 비젼도 모든 것이 아슴푸레하게 사라진 시대에 미국 사회의 한 원로는 시인의 길로 자신의 남은 생애를 마무리하겠다는 것일까? 이런 생각도 너무 작의적이고 순수하지 못한가? 사람에게 자신의 움직이는 시간의 바늘을 고정시킬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붕괴되어 가는 詩의 별에서 추억이 보내오는 신호는 영원만큼이나 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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