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적이었던 책 한권
김민구
<강산무진 江山無盡> / 김훈 作 / 문학동네
고등학교 3학년이 될 준비를 하던 2007년 가을에 나는 김훈의 <강산무진>을 서점에서 구입했다. 책의 표지였던 하드보드지는 단단한 게 무슨 마른 나무껍질 같았고 김훈의 육필로 보이는 문장이 원고지 안에 씌어있는 모습으로 새겨져 있었다. 처음엔 작가의 약력을 써놓은 얇은 종이로 된 겉표지가 책을 감싸고 있었지만 계절이 지나가는 와중에 분실하여 지금은 무척 오래되고 황폐한 나무 등걸처럼 책상의 한쪽 벽에 기대어 서 있다. 그 얇은 겉표지는 책의 표제작이기도 한 조선시대의 화가였던 이인문의 <강산무진도> 일부분이 작게 펼쳐져 있었다. 대학에서 미술사 수업을 들으며 알 수 있었던 내용이지만, 이인문의 강산무진도는 현존하는 화폭 중 제일 길이가 길며 섬세함이 이루 말할 수 없는 걸작이었다. 동시대의 걸출한 화가였던 김홍도의 위상에 눌려 사람들은 이인문보다는 김홍도의 이름과 작품을 더 경탄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기억하지만, <강산무진>을 완성한 이인문은 김홍도와 어깨를 견줄 만큼 뛰어난 화가였다. 작지만 은은한 한 폭의 진경산수화를 표지로 사용한 <강산무진도>를 샀던 고등학교 2학년때까지만 해도 소설을 완전하게 이루는 것이란 무겁고 진중한 철학이 아니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믿던 선입관이 있었는데, <강산무진> 속의 단편 여덟 작품을 읽어가면서 나는 소설의 이야기를 이루는 문장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기껏해야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 중 소수만을 읽은 게 현대 소설 독서량의 전부였던 나에게 김훈의 담담하고도 느릿느릿한 문장은 마치 오래된 서적을 읽는 듯이 진지하면서 고아한 분위기까지 전해주는 것이었다. 이야기의 전개가 느린 대신 문장은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에 있어서 무척 확실하고도 단호한 어투로 이어지고 있었다. 요새 젊은 작가들의 소설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재기발랄하거나 감정표현에 충실한 문장에 맞서, 김훈의 것은 그들이 구현해내지 못한 삶의 섬세한 면을 드러내며 독자로 하여금 ‘생각’을 게을리 하지 않도록 돕는다.
김훈이 갖고 있는 문장 구성의 특색 덕분에 그의 소설은 내부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감정에 호소하듯 전달하는 것 이상의 효과를 거둔다. 단편 <배웅>에서는 IMF 이후 직장을 잃고 택시를 운전하며 도시를 떠도는 실직자의 쓸쓸함을 느끼고, <화장>에서는 아내의 죽음 이후 반려자의 빈자리를 아쉬워하면서도 직장의 부하직원이었던 어느 젊은 여인의 모습을 섬세하게 회상하는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출토된 어느 뼛조각에 대해 논문을 구상하다 땅이 갖고 있는 내력과 시간의 기록을 아름답지만 슬프게 진술하듯 이어지는 <뼈>의 문장이나, 비행기 사고로 남편을 잃은 언니가 차를 타고 가던 중 옆에서 생리를 할 때 문득 슬퍼지는 화자의 처지를 달래듯 움직이는 문장들, 사회의 압제에 폭력으로 맞서다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된 스승의 옛 제자가 스승께 돌아와 서로 문답하는 선(禪)적인 이야기들은 나이가 젊은 작가들이 미처 탐구하지 못한 주제를 시적이고도 명징한 문장으로 풀어내고 있었다. 어떤 경험을 해야 이토록 확연하고도 소설이란 모습에 걸맞는 글을 쓸 수 있을까 생각하던 나는 김훈에 대해 알고 있던 단편적인 내용 그 이상을 원하게 되었다.
김훈은 신문기자 생활을 오래 했다. 상황을 객관과 직관의 눈으로 바라보고 중립적인 위치에 서서 구독자들로 하여금 사건에 대한 쉬운 이해를 하도록 기사를 작성해야 했기에, 그의 문장은 끈질긴 취재 이후 터득했을 삶의 지식처럼 전문성을 갖고 있었다. 기사문은 사실만을 앞세워 전달하는 논조를 갖고 있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예술적인 문장으로 태어나기엔 무리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강산무진>을 통해서 그것은 얼마든지 섬세한 표현으로 이루어지거나 말하고자 하는 상황에서 제일 적합한 단어를 선택하도록 하는 경험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강산무진>은 김훈의 작품 중 내가 제일 처음 접한 것이다. 서점에서 이 책을 찾을 당시 <강산무진>보다는 <칼의 노래>가 전국 서점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었던 때였다. 그러나 이미 알고 있는 성웅(聖雄)에 대한 이야기보단 가급적 오늘날의 세태를 담아냈다고 평가받는 그의 단편집을 읽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되어 <칼의 노래>를 사는 것을 잠시 미뤄두었다. (그러나 <강산무진> 이후 김훈이라는 작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어 그의 저작 대부분을 구매했다.)
어느 한 작가의 소설을 평가하는 구도는 평론가마다 모두 다르다. 그 중에는 이야기보다 삶의 진면(眞面)과 주제를 이루는 데에 더 공을 들이는 김훈의 작법(作法)을 비판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의 <공무도하>나 <내 젊은 날의 숲>의 경우 다소 지루한 감이 없지는 않다. 김훈이 자신의 글을 컴퓨터의 키보드가 아닌 원고지와 연필을 깎아 써내려가듯 전개가 느리지만 그토록 명징한 문장도 없겠다. 그의 작품 대부분은 특정한 결말을 내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클라이막스, 즉 절정부분을 거치지 않고 부드럽게 이어지다 끝난다. 절정은 이야기 자체가 클라이막스이고 문장이 다들 절창이다. 단편집 <강산무진>. 나는 한 폭의, 그러나 끝나지 않고 길게 이어지는 진경산수화를 읽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