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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스완, 우아한 몸짓과 치명적 욕망에 대하여 - 한국시문화회관 - 문예도서관 - 문예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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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예술에 대한 지식, 정보, 중요한 자료들을 편집자들이 집필해 놓은 공간입니다.

블랙 스완, 우아한 몸짓과 치명적 욕망에 대하여 
김민구 

  암전된 무대에서 까맣게 드리워진 막이 열리고 부드럽지만 장중한 음악과 함께 한 소녀가 춤추듯 들어와 한 발로 땅을 딛으며 회전한다. 흰 드레스가 천장에서 내려온 조명의 불빛을 온몸으로 흩뿌리며 펄럭인다. 소녀의 발은 수면 위 백조(白鳥)의 날갯짓처럼 미끄러지듯 무대를 가로지르다 돌연 무대 뒤로 모습을 감춘다. 박수 갈채와 함께 다시 돌아온 소녀의 몸엔 흑조(黑鳥)의 까만 깃털이 자라나 육체를 뒤덮고 있으며, 상대를 유혹하기 위해 관능적인 표정을 관객에게 지어보이며 양팔을 펄럭인다. 자신을 마법에서 구한 왕자가 자기와 닮은 흑조와 사랑을 나누는 걸 본 백조는 스스로 높은 곳에서 무너지듯 추락한다. 지금도 어린아이들에게 널리 들려지는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를 기존의 발레극에서 보다 비극적이되 중후한 분위기로 변주한 영화 <블랙 스완>의 줄거리이다. 본래의 발레극을 이루고 있는 내용은 마법에서 풀려난 백조와 그녀를 구하러 간 왕자가 서로 사랑하여 여생을 보내는 것으로 마무리되지만, 올해 데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이 제작하여 개봉한 <블랙 스완>은 그 제목에서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백조와 대비되는 이미지와 성격을 가진 흑조를 등장시켜 백조를 종래엔 죽음을 선택하도록 만든다. 

  <블랙 스완>은 자기가 맡은 배역에 대해 강한 열망과 우수한 자질을 갖춘 젊은 발레리나가 공연감독으로부터 <백조의 호수>의 주인공 배역에 대한 오디션을 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극중 주인공이자 발레리나인 니나(나탈리 포트만 분)는 우아한 몸짓 속에 담겨진 연약하고 슬픈 발레를 연기하여 누군가 구원하러 와주길 기원하는 백조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표현한다. 그러나 곧 공연될 <백조의 호수>는 한 사람이 흑조와 백조의 캐릭터 모두를 표현하도록 변주된, 말하자면 1인 2역의 발레극이므로, 공연 감독은 니나에게 백조가 아닌 흑조를 연습하도록 주문한다. 백조가 소극적이고 내면적인 연기의 승화라면, 흑조는 사심(邪心)을 품고 상대를 유혹하기 위한 관능적인 몸짓의 결정체로 볼 수 있는데, 니나는 스스로의 천성적인 연약함과 외부적 요구로서 작용하는 강렬하고 격정적인 캐릭터를 모두 소화하고 공존시키기 위해 연습에 매진하다 결국 서로 상반된 두 세계의 이질적인 불화와 충돌 때문에 심리적으로 무척 불안하고 초조한 처지에 놓인다. 게다가 전직 발레리나이자 딸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엄격한 규칙과 지나친 간섭의 표현으로 믿고 있는 어머니로부터의 탈출 심리가 동료 발레리나에게서 받은 각성제로 인해 일탈과 동성애로 변모되고, 이젠 동료에게 자신이 맡은 배역을 빼앗길까봐 노심초사한 탓에 항상 주변에서 자신을 조여오는 환시와 환청에 시달린다. 자신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모든 일들에 병을 얻어 침대에 누워 있던 니나는 <백조의 호수> 공연 당일, 생명이 시들어가는 자신을 만류하는 어머니를 뿌리치고 공연장으로 달려가지만 이미 자신을 대체할 릴리(자신의 경쟁자, 밀라 쿠니스 분)를 준비시키고 있는 상태. 니나는 분장실에서 극도의 차분함을 보여주며 스스로를 백조로 분장시키고 공연을 시작한다. 백조의 퍼포먼스를 마치고 흑조로 변신하기 위해 분장실에 돌아온 그녀는 자신의 경쟁자인 릴리와 배역을 다투다 우발적으로 깨진 거울의 파편을 들어 그녀를 찔러 죽이고 만다.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는 강박 상태에 놓여있던 니나였으나 피를 흘리며 쓰러진 릴리를 화장실에 숨기고 무대로 돌아와 매혹적인 흑조를 완벽히 연기하고 갈채에 화답할 틈 없이 분장실로 돌아오는데, 깨진 거울의 파편 앞에서 망연해하다 문득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화장실 문틈을 수건으로 막아 살해 현장을 숨기고 문을 열자 분명 아까 싸우다 찔러 죽인 릴리가 활짝 웃으며 자신을 압도했다며 연기력을 추켜세워준다. 그렇다면 니나는 지금까지 환시를 본 것인가? 갑작스러운 사태에 니나는 화장실 틈을 가렸던 수건을 들추지만 피는 보이지 않고, 화장실에도 릴리의 시체는 없다. 그녀는 릴리와 싸우고 그녀의 심장에 유리조각을 찌른 일이 하나의 환시였다는 것을 한 줄기 섬광처럼 깨달으며 자신의 복부를 내려다본다. 놀랍게도 붉은 피가 드레스 앞섶을 서서히 물들여가며 번지고 있다. 당황한 니나는 서둘러 마지막 클라이막스를 연기하기 위해 무대로 돌아가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백조의 춤을 춘 뒤 무대 장치로 마련된 높은 계단을 올라간다. 그리고 한 번 무대 옆 공연감독을 보고, 다시 관객을 보고 나서, 그녀는 허물어지듯 옆으로 떨어지며 공연을 마무리한다. 관객들은 기립박수로 화답하고 공연감독과 다른 무희들이 달려가 그녀를 안으려는데, 그들은 니나의 배에서 이젠 확연히 번져오르는 피를 보고 아연해 한다. 니나는 그저 '완벽하고 싶었으며, 이제 나는 완벽하다'라는 말을 하고 눈을 감아 영화는 끝난다. 

  두 개의 상반된 캐릭터의 속성을 관객에게 보여주기 위해 몰입하다가 마침내 감정의 기복이 심해져 착란과 죽음의 결말로까지 치닫게 하는 니나에 대한 욕망의 기록을 살펴보자. 발레는 공연예술의 한 장르임이 당연하지만, 연극이나 뮤지컬, 영화와는 다르게 배우가 말을 함으로써 내용을 전달하는 형식이 아니라 몸짓과 무용의 동작을 보여주면서 육체에 대한 시각적 황홀감과 매력을 느끼도록 만드는 독특한 예술이다. 이야기의 주를 이루는 발레리나(女)와 발레리노(男)들은 말을 포기하는 대신 섬세하고도 아름다우며 인상적인 잔상을 남기기 위해 극중 캐릭터를 몸짓으로 최대한 표현하게 된다. 타인에게 보여줄 목적을 가진 모든 작품이 그러하듯이, 배우는 극중 캐릭터를 따라하기보다는 캐릭터 자체가 되기 위한 노력을 하고, 몰입도가 심한 경우 현실과 극중을 분간하지 못해 감정이 격화되는 조울증을 경험하기도 한다. <블랙 스완>은 그러한 발레리노의 강박에 대한 기록이다. 주인공 니나는 연약한 천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 덕분에 백조의 퍼포먼스는 완벽하게 소화해낼 수 있는 실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백조와 정반대의 인격을 갖춘 흑조를 연기하기 위해선 선과 악, 유와 강을 자신의 몸짓에 거처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남들에겐 우아하면서도 자신에겐 극도의 치명성을 가진다. 영화 중반부부터 니나는 백조를 위한 흑조가 아닌 서로 완전히 다른 연기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어쩌면 니나의 그것은 뭇 예술가들이라면 모두 가지고 있을 완벽주의적인 욕망과 동일할 것이다. 때론 그러한 걸작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건강이 시들어가는 것을 모르고 지나가기도 한다. 니나는 공연 전 연습실에서 흑조를 연기하다 감독으로부터 '시체처럼 뻣뻣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시체는 죽음과 경직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것은 언뜻 백조가 갖고 있는 유순하고도 가녀린 속성과 반대선상에 있으니 흑조의 것이 맞다고 오해할 수 있으나, 백조가 안으로 제 마음을 억누르고 모아둔다고 하면 흑조는 거리낌없이 자기 모두를 상대에게 내던져야 한다는 것이 극중 공연감독의 지론인 것이다. 니나는 자신의 몸을 허공으로 힘주어 밀어내지 못한다. 공연감독은 그녀 속에 잠재된 관능성과 맹렬함을 끌어올리기 위해 강제로 입맞춤을 하기도 하고 일부러라도 수음을 해볼 것을 권유하기도 한다. 그러나 순수하고도 처녀적인 연약함이 관능적인 동시에 환상적이기까지한 강렬함을 몸속에 담아두지 못해 결국 그녀는 환시와 착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완벽을 추구하고 배역과 동화되려는 그녀의 눈물겨운 노력은 양날의 칼처럼 스스로의 가슴을 찌르는 비극으로 돌아온다. 

  니나의 불안함을 증폭시키는 사건은 비단 공연감독의 1인 2역에 대한 주문만이 아니다. 흑조와 백조 모두를 연기해야한다는 결정은 니나 자신의 문제이자 그녀가 내내 소망해마지 않았던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니나의 불안한 의식 세계의 대부분을 채우고 있는 것은 두 가지 배역에 대한 불화이겠지만, 그 밖에도 견고한 규칙의 아성이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어머니의 지나친 사랑과 집착으로부터의 갈등과, 동료이자 실력이 출중한 발레리나인 릴리로부터 공연의 주인공 배역을 고수하기 위한 방어본능이라 할 것이다. 흑조와 백조를 모두 자기 안에 불러들이려는 예술가적 목표의식에 감독의 다소 무리하다 싶을 정도의 완벽주의적 주문이 점철되어 아름다운 무희가 아니라 정말로 다른 두 마리의 새의 이미지로 분리되어 우리를 영화에 몰입하게 하는 것일 터, 이와 더불어 우리는 전직 발레리나였던 니나의 어머니가 구축해놓은 철저한 집착을 목격한다. 이미 다 자라 성숙한 딸을 항상 깨우러 방에 들어오고, 항상 딸이 연습장으로 갈 채비를 손수 거들어주며, 흑조와 백조의 배역을 맡게 된 딸을 진심으로 축하해주다가도 속이 안 좋다는 딸의 말에 실망하여 준비한 케이크를 단숨에 쓰레기로 치워버릴만큼 기복이 심한 여성이다. 과도하다 싶은 어머니의 집착에 니나는 지금까지 억눌러왔던 백조적인 온순함에서 흑조적인 야성으로 변해 술과 각성제를 먹고 생면부지의 사내들과 관계를 맺는 등 어머니의 성채 바깥으로 벗어나려는 욕망을 받아들인다. 아마 천천히 흑조의 내면을 수용해나가는 과정에서 각성제의 외부 효과가 더해져 어머니를 거역하는 일탈을 저지른 것이리라. 지금까지 유지되어왔던 조신한 삶의 리듬이 갑작스레 변화되어 뒤집힐 때 니나는 너무도 쉽게 흑조가 가진 관능성을 체득하게 된다. 단순한 체득을 넘어 니나의 사고는 어머니와 주위의 모든 것들을 적으로 인식한다. 어머니의 손을 다치게 하거나 평화로운 음률이 흘러나오는 장식품을 부숴버리는 장면에서 니나는 자기 개인 외 모든 방해 요소를 맞아 싸우려는 의지를 갖는다. 예전의 니나가 자신을 방해하거나 지적하는 요소에 쉽게 상처받고 자괴할만큼 가녀린 영혼이었던 걸 반추해보면 괄목할만한 변모다. 어머니에 대한 거역의 밤이 지난 후 그녀는 늦잠을 자 공연장에 지각하는데, 경쟁자 릴리가 자신의 배역을 연기하고 있는 것에 충격을 받아 또 다른 수렁에 빠진다. 

  니나가 맡은 배역은 흑조와 백조 모두를 아우르는 독보적인 주인공 자리에 다름 아니다. 관객의 이목을 모두 한 곳으로 모을 수 있는 배역임과 동시에 자신의 발레 실력을 명확하고도 아름답게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자리인 것이다. 모든 조명, 스포트라이트가 자신의 위치로 집중된다. 공연감독은 백조의 율동과 몸짓에 국한되어있는 니나의 재능을 흑조의 영역으로 보다 확장시키기 위해 불현듯 그녀에게 기습적으로 입을 맞췄고, 니나는 당혹스러워하며 감독의 입술을 물어 곤경에서 벗어나는 장면이 나온다. 니나의 얼굴에서 감독은 흑조를 연기할 수 있는 자질을 확신하고 그녀를 주인공으로 간택했던 것이다. 소망해마지 않던 자리를 손에 넣은 니나는 행복의 극을 만끽했겠으나 그것은 자신의 배역을 누군가 찬탈할 수도 있을 거라는 깊은 불안감으로 그녀를 밀어넣었다. 인간은 필멸과 유한의 존재라 늘 불안을 지닐 수밖에 없다는 키에르케고르의 말을 빌려오지 않더라도, 인간, 그 중에서도 예술가, 다시 육체의 몸짓을 강렬하게 피워내는 데 온 힘을 다하는 발레리나인 니나에게 있어 '여왕 백조'의 배역은 스스로의 유한성과 나약함을 부정하며 더 강하고 당당하게 극복하려는 인간 군상의 본성과 맞물려 자기 외엔 아무도 자신에게 주어진 행운과 열망을 빼앗아가지 못하도록 겹겹이 자신을 방어하려는 욕망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리라. 니나는 지각한 자신을 대신하여 춤을 추고 있는 릴리를 본 이후 그녀가 자신의 여왕 백조 배역을 넘보다가 끝내 빼앗을지도 모른다는 착각에 시달린다. 그것은 단순한 착각을 넘어서 질긴 사슬처럼 니나의 정신을 옥죈다. 니나에게 약속된 배역의 취소는 부단한 노력과 연습의 결과에 대한 하나의 실망감을 넘어서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발레리나로서의 나날들에 대한 상실감에 다름 아니다. 흑조와 백조 사이 오도가도 못하는 혼란은 그녀의 존재 자체를 허물어뜨릴 수 있는 커다란 상처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니나의 불안은 환시와 착란으로 이어져 어머니가 켄트지에 그린 얼굴들이 자신을 보고 입을 벌리는 광경을 보고 격분하여 마구 찢어버리는 정신이상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자신의 배역을 탈취하기 위해 달려드는 릴리의 환상을 보고 싸우다가 충동적으로 깨진 유리 파편을 집어 상대를 찔러 죽이는 살해의 순간을 경험하므로써 착란의 극한에 다다른다. 자신의 갈망을 위해 무슨 짓이든 다 하고 보겠다는 의지는 그녀가 흑조를 완벽히 연기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마저 갖게 한다. 하지만 그것은 결론적으로 자기 살해였으며 이제껏 자신을 옥죄던 것은 모두 환상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그녀가 미리 준비된 매트리스 위에 안정적으로 떨어져 죽음을 맞이하려는 순간 그녀는 자기 스스로가 완벽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니나의 이름을 부르며 기립한 관객들의 갈채를 배경으로 그녀의 눈에 비치는 화면은 서서히 페이드아웃(fade out) 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형상의 숲에 놓여진다. 우리는 서로 다른 얼굴을 하되 단일성을 갖고, 공통적인 심성을 갖되 다면화되고 개성적인 표정과 삶을 지닌다. 이쪽과 저쪽을 살펴보며 우리는 서로를 향해 날갯짓하고 싶은 생각을 자주 한다. 무대 위 니나의 백조는 부드러운 춤사위처럼 우리를 향해 날아와 옆에 내려앉는다. 우연히 찾아온 행운처럼 그윽한 편안함에 몸을 누일 때 문득 옆에 있던 백조는 까만 흑조처럼 다시 날아올라 허공에서 둥글게 춤을 춘다. 한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두 마리의 새는 다시 무대로 돌아가 여자의 품속에 스며들고, 하얀지 까만지 문득 알 수 없는 여인의 육체는 무대 저편으로 서서히 무너진다. 흑조 속에서 백조가 태어나고 다시 그 속에서 흑조는 까만 깃털을 뿌리며 날아오를 것이다. 우아한 몸짓과 치명적 욕망 속에서 예술이라는 아름다운 새가 태어나는지도 모른다. 누군가 제 껍질을 벗어나 커다란 빛처럼 날갯짓한다. 문득 너무도 눈부신 섬광에 잠시 눈을 가린다. 형상의 숲에서 우리는 허공을 비행하며 사랑을 만나고 다시 지상에 내려앉아 또다른 얼굴로 살아간다. 흑조와 백조 사이, 무대와 객석 사이 <블랙 스완>을 본 우리는 순간적으로 어느 완전한 형상을 마주한다. 한 번의 절정이 썰물처럼 저리로 흩어질 때, 우리는 또 하나의 완전무결한 어느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형상의 무대를 배회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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