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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흠 「광어」 (『귀뚜라미가 온다』 백가흠 소설 / 문학동네 2005년 출간) - 한국시문화회관 - 문예도서관 - 문예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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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예술에 대한 지식, 정보, 중요한 자료들을 편집자들이 집필해 놓은 공간입니다.

  소설 읽고 스토리 + 의미론 쓰기 1
문예창작연구회 김민구 

  ▩  백가흠 「광어」(『귀뚜라미가 온다』백가흠 소설 / 문학동네 2005년 출간)

  ※ 작품 줄거리 

  「광어」는 소설가 백가흠의 200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광어를 주로 다루는 춘천의 한 횟집에 기간제 아르바이트로 일하고 있는 주인공 ‘나’는 ‘미스 정’과 사랑하는 사이다. 그녀는 주인공이 일하고 있는 횟집 사장의 부인이 경영하고 있는 룸살롱에 고용된 여자다. ‘나’는 ‘미스 정’을 룸살롱에서 팔백만 원을 치르고 데려오기로 마음먹는다. 주인공에겐 지금까지 횟집에서 일하면서 벌어놓은 삼백만 원이 있고, 남은 오백만 원은 미스 정과 룸살롱에서 관계를 가진 자들 중 도청에서 일하는 공무원에게 반 협박조로 뜯어내려하지만 결국 받은 돈은 이백만 원뿐. ‘나’는 남은 금액을 사장과 사모에게 부탁하여 남은 삼백만 원을 받아냄으로써 몸값을 지불하겠다고 결심한다. 산부인과에서 퇴원한 지 얼마 안 된 미스 정에게 죽을 끓여주며 자신의 계획을 말하고 그날 밤 같이 잠자리에 든다. 깜깜한 방 안에서, 갑자기 미스 정이 일어나 잠든 체하고 있는 ‘나’를 바라보더니 오백만 원이 들어 있는 통장을 들고 바깥으로 나간다. ‘나’는 그녀를 잡지도 않고 가만히 누운 채 어머니가 자신을 버리고 떠나던 날을 불현 듯 회상한다. 얼굴 없는 어머니가 불쑥 들어올 것 같은 문을 바라보며, 쓰레기통에 처박은 광어를 꺼내 씹기 시작한다. 

  ※ 작품에 대한 의미 분석 

  작가는 문단 사이사이에 광어의 명줄을 끊을 커다란 회칼을 들고 광어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주인공 ‘나’의 심리를 몹시 세밀하게 표현한다. 수족관 안에서 헤엄치고 있는 광어나 우럭을 보며 어느 놈을 잡아 주방에서 족쳐 손님들의 식탁에 올릴 것인지 고민한다. 칼이 몸을 가르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도록 단번에 살을 갈라 토막내어 회를 친다. 횟집 아르바이트생이 출근하여 수족관에서 생선을 고르고 그것을 도마에 가져간 후 어떤 과정을 거쳐 식탁으로 내어주는지에 대한 과정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백가흠 소설가는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강의에서 나를 포함한 신입생들을 불러놓고 자신의 등단작을 설명해주며 그 작품이 태어나기까지의 배경을 우리에게 고백하듯 말한 바 있다. 자신은 항상 태생적인 고독과 우울, 그리고 어디를 가서도 몸 붙일 곳 없으리라는 두려움 같은 방랑자적 기질을 갖고 있었으며, 어느 날 몹시 우울하여 휴학계도 내지 않고 명지대를 도망쳐 춘천에 가서 친구네 집에 얹혀 살며 글을 썼다는 것이다. 그러다 돈이라도 벌자 싶어 취직한 곳이 바로 횟집이었고 계속 칼질을 하다 보니 무언가 깨달음이 일어 「광어」를 썼다고 말했다. 작품 속에는 20대 초반의 백가흠이 가지고 있었던 내면이 얼마나 고독했는가를 볼 수 있는 대목들이 많다. “당신과 몸을 섞은 날 이후로 내 몸에도 그 바람이 지지 않는다.(P.10)”, “당신은 광어와 같다. 죽은 척, 모른 척 배를 깔고 엎드려 있는(P.16).”, “얼굴 없는 어머니가 불쑥 들어올 것 같다.(P.30)”과 같은 문장들에서 백가흠은 살아가는 내내 마주할 수밖에 없는 고독과, 결코 치유될 수 없고 그저 감내하거나 버틸 수밖에 없는 태생적인 고통을 독자들에게 암시하고 있다. 수족관 앞에서는 오늘 어떤 놈을 잡아볼까 하는 강자로 군림하지만 그는 결국에는 돈 없어 춘천으로 온 한 가난한 청년일 뿐이며, 사랑하는 사람을 룸살롱에서 구해오기 위해 다른 사람의 약점을 쥐고 크게 부풀리려는 듯 협박하여 돈을 뜯어내곤 하는 초라한 남자이자, 그런 여자를 구하기 위해 모아놓은 돈을 다른 사람도 아닌 그 당사자가 몰래 갖고 떠나는 것을 붙잡지도 않고 가만히 침잠하고 있는 한 외로운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도마에 광어를 올려놓고 손잡이로 대가리를 쳐 기절시키고 순식간에 살과 뼈를 발라 초밥을 만들어내면서도, 한편으론 칼이 광어의 몸을 가르며 그 절명의 숨소리 같은 바람을 느끼는 고독한 내면을 작품이 끝나는 때까지 고요하게 지키고 있다. 
  
  어쩌면 작가는 글을 쓰는 자신이기도 했던 주인공의 처지가 마치 도마에 놓여 죽음을 맞게 될 운명인 광어들보다 더할 것도 못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앞길이 정해져있지 않은 불확실성의 미래로 향하는 길 어디쯤에 홀로 남겨져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곁에 존재하는 것은 갈 곳을 잃고 같은 자리에서 헤맬 수밖에 없는 고독이 전부일 것이다. 회칼의 손잡이에 일격을 당하고 기절하여 도마 위에 널브러진 광어, 수족관의 물을 갈아주지 않으면 제일 먼저 죽어 배를 내밀고 떠오르는 우럭, 서투른 칼질 때문에 몸속을 가르고 들어온 칼날을 느끼며 입으로 바람소리를 내는 광어, 비늘이 다 벗겨진 채 레몬즙이 양껏 뿌려져 곧 주문이 들어온 손님의 테이블로 배달되기 직전의 광어, 모두 죽음이 예견되어있거나 이미 죽음을 당한 존재들이다. 그리고 갈수록 외로움을 치유하지 못하게 되는 작가, 광어와 횟집 아르바이트생(작가) 사이에는 작품 속에서 아무런 경계도 없다. 어쩌면 계속된 고독과 절망 끝에 죽어야만 하는 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열렬히 사랑했던 미스 정이, 자신이 모아놓은 전 재산이 예금된 통장을 들고 떠남으로써, 주인공은 다시금 백지 상태로 돌아온다. 갖고 있던 것을 모두 내줌으로써 다시 새로 채울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한 것이다. 그 지점에서는 미스 정에 대한 배신감도 없고 도마 위 혹은 수조 안에 들어있던 광어와 우럭에 대한 동정심도 없다. 다만 잊고 산 지 오래였던 어머니의 모습이 다시 떠오르는 것이다. 자신을 버리고 떠난 미스 정이 어머니가 되고, 사랑하는 여자로부터 버림받은 그는 쓰레기통에 처박았던 광어회 한 접시를 꺼내 우물우물 씹어 먹는다. 

  작품을 읽으면서 백가흠의 문체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고요하면서도 슬픈 여성성이다. 살아있는 광어를 먹기 좋게 회를 쳐서 손질하는 동안의 묘사가 그러하다. 분명 생선을 제일 처음 토막낼 때는 피가 튈 것이고, 뻐끔뻐끔 벌려지는 아가미가 서서히 움직임을 멈춤으로써 비로소 한 마리가 완전히 죽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알다시피 모든 횟집의 주방은 테이블이며 도마며 바닥이며 심지어 물청소를 할 때에도 모든 곳에서 생선 비린내와 붉은 피가 흥건하다. 그러나 작품 속 그 살육의 현장에선 주인공이 더할 나위 없이 경건한 마음과 여자를 그리워하는 일념으로 계속 나아가고 있다. 게다가 미스 정이 잠들어있는 방을 들어가면서 주인공은 아무것도 자신을 방해하지 않았던 어머니의 자궁을 생각하고, 미스 정이 통장을 들고 떠났을 땐 다시 어머니가 자신을 버리고 떠났던 날을 회상한다. 광어-어머니-미스 정으로 삼립하고 있는 양상이다. 그러나 어떠한 배신감도 실망감도 저 양상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끝없는 그리움뿐이고 그리움은 설령 어머니와 미스 정 모두 곁에 있다 하더라도 태생적인 것이었으므로 별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원래부터 고독을 이고 태어난 사람은 욕망이 모두 충족되어도 황폐한 사막의 모래언덕처럼 속이 사랑과 낭만의 비로 젖지 않는 법이다. 그리하여 「광어」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고독의 여로에서 그저 하나의 지점처럼 박혀 있을 한 사람에 대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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